옛 건축의 장엄한 마무리, 단청의 조율사 월천(月泉) 양용호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1호 단청장 월천(月泉) 양용호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1호 단청장 월천(月泉) 양용호

사람다운 삶을 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의식주(衣食住)라고 한다. 시시각각 바뀌는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옷을 마련하고, 거처를 정하는 일이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건축에 옷을 입혀 수명을 연장하고 우주의 섭리를 담아내는 사람이 있다. 단청장 양용호 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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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은 외부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계절이 변하는 곳에서는 뜨거운 햇살과 지루한 장마, 건조한 대기와 만물을 얼리는 혹한 등 치명적인 요인이 끊임없이 건축물의 한계를 시험한다. 건축의 마지막 단계이자 관리의 첫걸음으로 단청이 빠질 수 없다. 단청은 오방색으로 벽이나 공포, 기둥과 같은 건축요소에 여러 무늬와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을 말한다. 기능적으로 목재의 틈을 메우고 곰팡이가 피거나 썩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건축물이 들어서는 공간과 재료의 성질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본디 단청은 건물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것으로, 미적인 치장을 하는 동시에 선조들이 축적해온 오행 사상과 종교적인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단초가 된다. 기술적인 실력을 갖추고 문양과 색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만이 제대로 단청을 베풀 수 있다. 조선시대 궁궐이 모두 모여 있는 서울특별시의 무형문화재 제31호 단청장은 양용호 씨가 지정되어 있다. 주요 궁궐의 전각들과 전국의 사찰, 사원, 누각 등 단청이 필요한 곳곳을 누비며 실력으로 신뢰를 얻은 이름이다.

회화적 성격의 단청, 끊임없는 모색 필요

단청에서 민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을 찾으라면, 바로 별화(또는 별지화)다. 사찰에서는 석가모니의 본생담, 팔상도, 용, 사천왕, 주악비천, 반야용선, 보살과 같은 종교적인 도상들이 주를 이루기는 했지만, 사군자, 화초, 난, 포도, 산수와 같은 화목이나, 전통악기, 풍속도를 그려 당시 생활상을 짐작케 하는 그림이 남아있기도 하다. 수원 팔달사의 담배 피는 호랑이는 민화작가들에게 재창조되고 있는 익숙한 그림이다.
별화가 아닌 대부분의 면적은 문양으로 단청을 한다. 기하학적인 도형이나 비단무늬라고 하는 금문, 색깔 띠의 연속인 휘 등 다양한 문양이 사용된다. 별화가 아닌 일반적인 단청에는 회화적인 성격이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용하는 색 자체에 음양오행 사상이 다 담겨 있어요. 단순한 칠이 아닌, 각각의 색이 상징하는 바를 표현해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단청입니다. 문양 역시 그냥 그려진 것이 없어요. 전통을 공부하고 현대에 맞는 것을 모색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라고는 흔히들 말하지만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고민 끝에 그는 ‘금박고분장구머리초’라는 자신만의 문양을 고안해냈다. 과거 단청에 금박이 사용된 적이 있었다는 것에 착안해 현대인의 풍요로운 생활상을 담은 단청을 만든 것이다. 정밀한 기교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이 문양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간의 단청도 화려하다고 여겨왔지만, 거기에 한발 더 나아가 건물의 격을 최대한으로 높여줄 수 있는 문양이다.
요즘은 단청의 채도를 낮추고 보색대비 효과를 강하지 않게 조정해 작업을 한다. 누가 보아도 거부감 없는 색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차분한 색감의 고려시대 단청을 연구하기도 했다.

1천여 점의 문화재와 함께한 세월

양용호 단청장은 2003년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되었다. 어린 나이에 상경해 오로지 먹고 사는 걱정을 덜고자 안 해본 일이 없던 20살, 우연히 인도(引導) 이인호 선생의 작업을 보고 단청이 좋아 보여 입문한 지 40년이 훌쩍 넘었다.
“그땐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답답한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게 천성에 안 맞기도 했고.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을 두루 떠돌아다니며 일할 수 있다는 게 딱 마음에 들었죠. 산속 암자를 찾아다니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체력관리는 필수입니다. 지금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어요. 마음 같아서는 술만 좀 줄이면 100세까지도 거뜬할 것 같아요.”
깊은 산속 암자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며 체력관리를 한다. 그렇게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해온 문화재 단청작업이 천여 점이 넘는다. 2000년대에 들어 작업한 대표적인 단청만 꼽아도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법주사 대웅보전(2005년), 쌍계사 대웅전(2006년), 조계사 대웅전, 일주문(2006년), 광화문(2010년), 삼화사(2012년), 남한산성 하궐(2012년), 등명락가사(2012년), 창덕궁 선인문(2012년), 제주 관음사 일주문(2013년), 울산 태화루(2013년), 경복궁 소주방 복원(2014년) 등 일일이 열거하기 벅찰 정도.
“이 일을 한 지가 워낙 오래돼서 헤아리자면 천 번도 넘게 문화재들을 만나고 작업을 했겠지요. 하지만 세월이 흘러 돌이켜 생각해보니 실력을 못 갖추고 뛰어들었던 게 부끄러움으로 느껴져서, 요새는 몇 백 개라고만 합니다.”

민족의 유산을 다룬다는 사명감으로

겸손한 말과 달리 그의 손길이 닿은 작업마다 좋은 소식이 들리고 있다. 지역과 국가의 자부심을 갖게 하는 솜씨다. 최근 많은 화제가 되었던 울산의 태화루는 영남의 3대 누각으로 불렸던 고려시대의 건축물이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복원했다. 특히 그가 책임 지휘한 단청이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2011년에 그가 작업했던 남한산성은 지난 6월 22일 오후(카타르 현지시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재됐다. 월천단청연구소를 설립하여 운영하는 그는 후학을 키우는 일에도 열심이다. 대학에 강의를 나가기도 한다.
“현대인들의 취향에 맞는 단청을 찾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동시에 전통을 올바르게 계승하는 일도 소홀할 수 없는 부분이니만큼 균형을 잘 잡아야겠지요. 요새 단청을 하는 젊은 친구들 중에는 마음이 급해서인지 기본적인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있어요. 저도 젊었을 때는 멋모르고 현장을 다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만……. 기초적인 부분을 확실히 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야겠더라고요. 문화재를 다루는 일이지 않습니까. 우리민족의 얼굴, 문화의 저력을 보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치밀하게 완성해야 합니다.”

“장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이 바로 선 사람이 문화재 보수·재현을 맡아야 하는데, 실력을 가르치는 것보다 인성을 가르치는 것이 더 어렵더라고요. 아름답고 찬란한 우리 단청의 맥이 끊이지 않도록 후계자를 키우는 일을 마지막 소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양용호 profile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1호 단청장
*문화재수리 단청기술자 제220호
*문화재수리 화공기능자 제413호
*문화재수리 도금기능자 제536호
*서울특별시 (전) 문화재 위원
*단청기술자 협회 부회장
*문화재 수리 기술자 협회 이사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협회 이사
*월천단청연구소 운영
*일섭문도회 이사

 

글 : 윤나래 기자
자료제공 : 월천단청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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