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승화된 문자, 문자도

문자도文字圖란 이름 그대로 문자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문자가 담고 있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조형적 상징물과 결합되어 그 기법과 종류 또한 매우 풍부하고 다양하다. 이번호에서는 전통적인 유교적 윤리관
이 반영된 효제문자도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문자도의 역사와 종류 그리고 변화상에 대해 알아본다.


문자도文字圖란 문자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조선시대 민간에서는 꽃글씨, 그림글씨, 서화도書畫圖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조선 숙종과 영조 연간에 발생하여 20세기에 이르러 민화와 함께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서체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지만 점차 문자가 담고 있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조형적 상징물과 결합되면서 그 표현이 풍부하고 다양해졌다. 글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은 문자도라는 그림을 통해 인간의 기본 윤리를 배우고 실천하게 되었다. 문자도는 한자문화권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조형예술인데, 이렇듯 의사소통과 기록의 주요 수단이었던 문자를 작품화하여 장식과 감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이 문文을 숭상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교훈적 내용 담고 있는 효제문자도

문자도는 상징적인 소재에 따라 유교적 윤리관이 반영된 ‘효제충신 예의염치孝弟忠信 禮義廉恥’ 여덟 글자를 그린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와 수복강녕壽福康寧, 부귀다남富貴多男 등의 글자를 이용한 길상 문자도가 있다. 그밖에도 구름과 용으로 꾸민 운룡문자도, 바람과 호랑이로 꾸민 풍호문자도, 용·잉어·대합·새우 등을 문자와 결합시켜 어변성룡魚變成龍과 하합상하蝦蛤相賀의 뜻을 나타낸 충자도忠字圖 등이 있다. 이 가운데서도 문자도로 가장 자주 일컬어지는 것은 효제문자도다.
효제문자도는 유교철학의 기본 윤리를 집약한 것으로 군자가 행해야 할 행동지침 여덟 가지 덕목을 가리키는 글자에 이와 관련된 설화나 고사 등을 동·식물이나 상징적인 기물들과 결합시켜 도식화한 우리 민화의 한 종류로 효제도孝悌圖 또는 팔자도八字圖라 부르기도 한다.
여덟 글자를 풀이하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좋고 나라에 충성하며 신의를 잊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예의바르며 의로움을 지키고 청렴한 마음을 가지며 항상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효제문자도는 교훈적 내용을 담고 있어 백성들을 교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렇다면 각 글자 속에는 어떤 상징적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지 살펴보자.

설화나 고사, 상징을 형상화한 문자도

우선 효孝자 그림을 보면 효행과 관련된 설화나 고사를 형상화 했다. 진나라 사람인 왕상이 계모의 병환을 낫게 하기 위해 한겨울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봉양했다는 내용과 오나라 때 맹종이라는 사람이 노모를 위해 눈물로 죽순을 돋게 했다는 고사 등의 효행고사에 따라 잉어, 죽순이 그려졌다. 베개와 부채를 그린 것은 한나라 때 사람 황향이 여름에는 부모의 베개에 부채질을 해서 시원하게 하고 겨울에는 이부자리에 먼저 들어가 잠자리를 따뜻하게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순임금이 부모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연주했다는 거문고가 그려지기도 했다.
제悌자 그림에는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활짝 핀 산앵두나무 꽃과 형제의 위급함을 돕는다는 할미새가 그려져 있다. 또 매梅·죽竹·송松 등의 세한삼우歲寒三友와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관우·장비가 도원결의하는 모습을 그려 넣기도 한다. 여기에서 산앵두나무 꽃은 많은 형제를 의미하고, 할미새는 머리가 하얗다 해서 백두조白頭鳥라고도 하는데 이는 머리가 백발이 될 때까지 장수하기를 기원함과 동시에 할미새가 날면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모습을 형제들에게 다급함을 알려주는 상황과 연결시켜 형제간의 우애를 의미한다.
충忠자 그림에는 용·잉어·대합·새우가 그려져 있다. 잉어와 용龍은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가 나라에 충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새우나 조개, 거북은 껍질이 두껍고 딱딱하다 하여 충성스러운 신하의 굳은 절개를 상징한다. 특히 새우와 조개 그림은 군신의 화합을 뜻하는데 이는 새우 하蝦의 발음이 화和의 발음과 비슷하고 조개 합蛤의 발음이 합合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나무로는 충절을 상징하는 대나무가 그려져 있다.

때로는 고사故事의 일화가 등장하기도…

신信은 사람 사이의 믿음을 의미하는 글자로 신信자 그림에는 편지를 입에 물고 있는 파랑새[靑鳥]와 흰기러기가 그려져 있다. 여기에서 파랑새는 요지연에 살면서 선계仙界를 관장하는 서왕모의 사자使者로 사람의 얼굴을 한 가릉빈가를 말한다. 한무고사漢武故事에 의하면 7월 7일 편지를 물고 파랑새가 한무제의 궁전에 날아들자 동방삭東方朔이 이를 가리켜 ‘서왕모가 온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함이다’라고 말했다 하여 이때부터 파랑새는 서왕모의 왕림을 알리는 믿음을 상징하는 새가 되었다.
예禮자 그림에는 예에 관하여 강론하고 있는 공자의 모습이나 책을 등에 진 거북이가 그려져 있다. 여기에서 거북이가 등에 지고 있는 책은 복희씨가 만들었다는 우주만물의 이치를 밝히는 책 《하도河圖》와 물을 다스린 하나라의 임금 하우씨가 만들어 천하를 다스리는 수리대법인 《낙서洛書》를 옮겼다는 《하도낙서河圖洛書》이다. 의義자 그림에는 삼국지 도원결의에 나오는 복숭아나무를 그리거나 할미새 또는 집비둘기 한 쌍을 그려 형제간의 우애와 의리를 표현한다. 염廉자 그림에는 요임금 때 속세를 떠나 산 속에 은거했다는 소보와 허유의 모습을 그리기도 하지만 봉황을 가장 많이 그린다. 수천리를 날아가며 아무리 배가 고파도 조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고 죽실만 먹으며 주변의 풀까지도 헤치지 않고 조용히 거하는 봉황의 성품이 염廉을 상징한다 여겼기 때문이다. 한편 염廉자 중 한 획을 게를 그려 완성하는 예가 있는데 이는 게의 뒷걸음치는 모습이 군자가 스스로 물러날 줄 아는 것에 비유한데서 나온 것이다. 이외에 괴석, 소나무, 국화 등을 그려 넣기도 한다. 치恥자 그림에는 백이·숙제의 고사를 담은 그림이 그려졌다. 왕위를 물려주고 수양산에 들어가 세상을 등지고 고사리를 캐먹고 살다가 죽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백이·숙제의 춘추청절春秋淸節 수양매월 首陽梅月을 형상화했다는 매화와 월상도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을 기리는 제각과 위패가 그려지고 백이와 숙제의 비라는 의미로 ‘백세청풍이제지비百世淸風夷第之卑’ 라는 명문을 써 넣기도 한다.

의복, 가구, 장식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된 백수백복도

효제문자도 다음으로 많이 그려지고 장식되었던 것이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이다. 백수백복도는 수壽자와 복福자를 전서篆書 형식의 여러 가지 서체로 행과 열을 맞추어가며 반복하여 화면 가득 쓴 것이다. 백수백복에서 백百의 의미는 ‘많다’, ‘가득 차다’, ‘가득해서 족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한 폭의 화면 안에 수복壽福 글자를 여러 가지 도안으로 그리거나 다양하게 배색하여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다채롭게 구성하였으며 가리개나 10폭 병풍으로 제작되었다. 표현 방식도 자수로 만든 것, 인문印文·금문金文처럼 판으로 찍은 것, 먹으로만 쓴 것, 수복을 상징하는 동·식물이나 기물을 결합하여 도안화시킨 것 등 다양하다.
이외에도 수복강녕壽福康寧·부귀다남富貴多男 등의 길상문자가 각기 다른 그림들과 결합된 문자도들이 있는데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 백자도와 결합된 문자도, 장수를 기원하는 신선도와 결합된 문자도, 모란도와 연화도 등과 결합된 문자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길상 문자도들은 회화뿐 아니라 의복, 가구, 베개, 각종 공예나 장신구, 건축물의 장식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자연환경과 문화권에 따라 지역색이 강했던 문자도

문자도에는 각 지역의 자연과 문화 환경에 따라 지방색을 나타낸다. 관동지역 문자도를 보면 문자도의 상단 혹은 하단에 산수, 화조, 책거리 등을 표현하는 2단 구조를 보이고 있는데 특히 산수의 경우 강원도의 수려한 자연 경관을 그린 금강산도, 관동팔경 등을 주제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안동 지역 문자도는 문인화풍의 그림 뒷면에 그리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제주도의 경우 문자도를 3단 구조로 하여 상·하단에는 제사를 모시는 일과 관계된 것을 주제로 표현하였다.
중국에서 들여온 한자를 소재로 중국과는 다른 독특한 우리나라만의 문자도를 탄생시켜 당대의 사회규범과 윤리, 그리고 사람들의 솔직한 희망이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 문자도는 오래 살고, 복 많이 받고 아무 탈 없이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생각이 기발하고 재미있는 형태로 표현된 역사적 산물이다. 또한 어려웠던 시대, 민초들에게 삶의 기본을 제시하고 교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지침서이기도 했다.

문자도의 끝없는 변신

인사동 거리를 걷다보면 종종 캘리그라피 전시를 볼 수 있다.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캘리그라피와 문자도를 접목시킨 문자도 캘리그라피, 또는 문자만으로 새로운 형태의 신문자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한자라는 문자를 매개체로 하여 문자도를 그렸다면 요즘은 한글이나 영문 등을 가리지 않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문자와 어울리는 독특한 문자도를 만들어낸다. 하나의 소재가 이토록 다양하게 변신을 할 수 있는 그림도 없을 것이다. 문자에서 시작되었으나 문자에 종속되지 않고 문자그림으로 독립한 문자도의 끝없는 변신은 문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될 것이다. 아니, 문자가 없어져서 다시 선사시대로 되돌아간다 해도 상형문자는 또 그려질 것이다. 뜻을 전달하던 문자·문체·문양·기호에 조형성을 더해 문자도의 영역을 확장시킨 대표적 화가로는 남관 김기창, 이응노, 서세옥, 이종상, 장우성 작가 등이 있다.


글 금광복 (대한민국민화전승문화재, (사)한국민화협회 상임고문)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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