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곡 박미향, 시대에 맞는 역할과 방향 논할 큰 밑그림 필요

박미향
영곡 박미향

멈춤은 때로 새로 나아가는 동력이 된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말처럼, 가진 것을 정비하고 길을 살피다 보면 지름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한창 바쁘게 달리던 순간, 의도치 않게 멈추게 되었지만, 장애물이 오히려 디딤돌이 된 거 같아 감사함을 느낀다는 박미향 작가. 덕분에 한 발 멀리서 민화계를 바라보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고. 3년의 휴지기休止期를 갖고 더욱 단단하게 돌아온 그녀를 영곡헌에서 만났다.

세월 가는 줄 몰랐던 12년의 발자취

4년 전, 충청도 미술계 곳곳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박미향 작가가 불현듯 잠적하듯 모든 것을 정리하고 두문불출했다. 그동안 스스로 그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던 그녀가 지난 2014년부터 다시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눈치챈 사람들도 있었지만, 워낙 갑작스럽게 내려오게 돼서…. 그저 좀 쉬어야겠다고 말했죠. 서운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던가 봐요. 그동안 제가 좀 아팠어요. 덕분에 3년간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 생긴 거죠.”
민화를 가르치는 일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다는 그녀. 딱 10년만 일하고 그 후에는 전업작가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계획보다 2년이 더 늘어나 모두 합해 12년 동안 분주히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지역에 민화의 터전을 마련하는 일에 전념해왔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부족하고 아쉬웠던 일들이 더 많이 떠올랐다고.
“에밀레 박물관이 충북 보은에 있었던 것에 착안해서 지역에서 조자용 선생을 기리는 축제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어요. 활동을 쉬기 직전에도 여기저기 조언을 구했었는데, 더 진행을 못 시켰네요. 제가 처음 시작할 때는 충청도에는 전혀 없다 싶었던 민화단체가 여러 곳에서 결성돼, 움직이고 있어요. 지금은 누구라도 나서서 이런 일을 진행할 기반이 조성되고 있는 것 같아요.”
아쉬움이 더욱 많다는 그녀지만, 정작 활동한 12년의 기록을 살펴보면 과연 처음 사회생활을 한 사람의 성과가 맞나 싶을 정도로 지역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민화라는 개념이 알려지지 않아 이발소 그림보다도 대접을 못 받던 시절, 일반인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청주와 충주, 제천, 보은 등 충북의 주요 도시에서 민화를 가르치고, 교직원 직무연수, 민화 체험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에 알음알음 민화를 선보였다. 본격적으로 민화를 알리기 위해서는 연합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러다 보니 단체장을 맡는 경우도 생겼다. 충북민화협회를 설립하고 2001년 청주, 충주, 제천, 보은에서 창립기념 순회전을 열었다. 진보적인 문예운동연합회인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에서 충주지부장을 지내고 민족미술인협회 충주지부에서도 활동했다.
정병모 경주대학교 교수는 2009년 박미향 작가의 개인전 개최를 축하하며 이렇게 평한 바 있다.
“박미향 선생은 충북 현대민화의 초석을 마련한 작가이다. 이곳에서 창작 활동을 활발하게 할 뿐만 아니라 제자 양성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충북민화협회도 박 선생이 결성한 단체이다. 충북이 서울 다음으로 민화작가가 많고 전시회가 빈번하게 열리는 지역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박 선생의 역할 덕분이다. 한 작가의 노력이 지역 문화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을 볼 수 있다.”

박미향 作
박미향 作
눈앞의 이익보다 파이를 키우는 게 우선

잠시 민화계를 떠나있었던 만큼 그사이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크게 느낀다는 그녀. 인터뷰 내내 박 작가는 순간의 이익,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민화가 더욱 큰 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대목을 거듭 강조하고, 나아가 민화의 범주를 넘어선 문화예술계 전반에 대한 인식확장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단체의 결집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정부의 관련 기금이나 예산을 요구하려면 여러 가지 요건들이 있겠지만, 지금 민화 인구가 함께 결집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판이 커지면 개인이 가져갈 수 있는 몫이 더 많아지는 거니까. 지금 당장 손해 볼까 두려워하기보다는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고 서로 양보해나가면 좋겠어요.”
실제로 박 작가는 단체장을 맡고 있었을 때, 관官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남들이 어려울 것이라고 공언했던 사업을 곧잘 진행한 적이 있다. 그중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 가운데 하나는 작업여건이 어려운 작가들을 위한 창작 스튜디오를 설립하도록 청주시를 설득하고 추진했던 일이다.
“지방은 서울보다 비교적 작가들의 작업할 공간도, 지원도 미진한 부분이 있어요. 후배들에게 마음 놓고 작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싶었어요. ‘민화 하는 사람들은 민화밖에 모른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는 게 싫기도 했고…. 민화인들도 민화라는 장르에서만 활동하기보다 문화예술 전반에 몸담고 있다는 인식으로 전체적인 환경개선을 도모하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고 봐요.”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세계

박미향“민화는 분명한 회화 장르죠. 하지만 저는 민화가 병풍이나 액자처럼 지면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는 게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자란 집에서는 곳곳에서 민화적 요소들이 보였거든요. 민화는 생활에 밀접한 기물器物에 그려지기도 하고 그랬잖아요. 민화 본연의 형태로 돌려놓고 싶다는 생각으로 부채나 목가구, 천에도 작업을 해왔죠.”
이제는 작품과 창작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그녀의 작품세계는 독특하다. 다양한 오브제를 함께 사용해 입체적인 작품을 완성한다. 박 작가가 멘토라고 칭하는 이철수 판화가는 그녀의 작품을 “민화의 창의성과 작품성을 높여 회화 장르의 적자로 서게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시도”이며, “전통민화의 미덕이라고 할 뛰어난 장식성과 다양한 공간에 어울리는 적응력을 바탕으로, 현대적 미감에 다양한 소재와 현대의 철학적 주제를 더할 수 있다”고 평했다.
본인을 ‘민화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시골 아줌마’라고 말하는 그녀가 앞으로 선보이고 싶은 작품은 의외로 소박하다. 그저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그녀가 준비하는 과정은 고집스럽다.
“이제는 경력을 쌓기 위한 전시보다는 진짜 관객과 소통하고 평론가의 평을 들을 수 있는 전시를 하고 싶어요. 그래야 할 때인 것 같기도 하고요. 외국의 갤러리도 직접 방문하고 현지의 큐레이터와 평론가들에게 작품을 선보인 다음에 의견을 조율해서 전시하는 쪽으로 추진 중이에요. 아직은 기획단계라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세계인들이 공통으로 좋아하는 요소가 있다는 게 흥미롭기도 하고 희망적이더라고요.”
민화를 세계인들에게 선보이고 예상보다 더 큰 호응을 마주하는 경험은 비단 그녀 혼자만의 것은 아니다. 이미 조선시대 민화와 현대 민화작가들이 전통을 모사한 작품, 자신의 개성이 묻어난 창작민화 등을 소개해 좋은 반응을 얻은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박미향 작가의 구상처럼 명망 있는 현지평론가의 작품해설을 곁들인다면, 그야말로 지피지기知彼知己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생물학에서는 세포가 분열하지 않는 기간을 간기 또는 휴지기 등으로 부른다. 이 기간에는 DNA 복제라는 중요한 과정이 일어난다. 박미향 작가가 잠시 멈춰 섰던 지난 3년이 어떤 의미일지는 앞으로의 행보가 증명할 것이다.

 

글 : 윤나래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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