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유어(蓮花遊魚), 풍요롭고 여유로운 평생을 기원합니다

연화유어(蓮花遊魚)

연꽃이 우리미술에 인기 있는 소재로 등장한 것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연꽃이 태양과 생명, 우주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었음을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표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연꽃은 선비의 고고함이나 풍요, 다산(多産)과 같은 길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도자기 및 서화 등에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연꽃은 민화에 등장하는 식물 소재 중에서 모란, 국화, 매화와 함께 대표적인 소재이다. 연꽃은 부용(芙蓉) 또는 하화(荷花)라고도 불리는데, 인도가 원산지이며 고대 인도의 토속신앙에서 빛과 생명 그리고 탄생과 회생의 상징이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나지만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고 항상 맑은 본성을 간직하고 있는 생태적 특징으로 청결함, 무구함, 순수함 등을 상징하게 되었다. 연꽃은 군자의 꽃으로 일컬어지며, 불교의 꽃으로 대자대비(大慈大悲), 깨달음과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상징하고 있다.
조선후기 민화에도 연꽃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연꽃 아래 수면 아래에서 노니는 물고기와 함께 그려진 그림인 연화유어도(蓮花遊魚圖)가 많이 그려졌다. 중국에서는 세화(歲畵)로 연꽃과 물고기를 함께 있는 도상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연(蓮)’은 ‘연(連)’, ‘어(魚)’는 ‘여(余)’와 동음이라는 점에서 길상을 의미하는 화제인 ‘연년유어(連年有余)’가 확립되기 때문이다. ‘연년유어’란 매년 여유 있는 생활이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연화유어도는 이러한 의미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연화 만발한 여름날의 연못

가회민화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연화유어도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 연화유어도는 연꽃이 만발한 여름의 한적한 연못을 표현한 그림이다. 8폭 병풍으로 각 폭의 화면은 상단에는 화사하게 꽃을 피운 연꽃으로, 하단에는 자유롭게 노닐고 있는 물고기들로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채색하지 않고 선으로만 그려진 연꽃과 대조적으로 연밥과 연잎은 밝은 녹색과 청색으로 채색되어 있고 연꽃 줄기는 점점이 태점(苔點)을 찍어 질감을 나타내었다. 연잎의 잎맥은 채색이 된 경우에는 먹으로 그려 넣었으며, 채색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연녹색으로 죽죽 그어 표현하였다. 연꽃 뒤로는 풀잎을 자유분방하게 한 필치로 그려 풍성한 풀숲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연꽃 잎 위에는 재복을 상징하는 개구리가 앉아 있고 연꽃 주위로는 여름새인 물총새가 날아다니며 수면 위에는 천둥오리가 연꽃 사이를 유유적적하게 노닐고 있다. 물총새는 또한 연밥을 쪼고 있는데 이는 연자(連子)와 연과(連科)의 의미로 그려진 것이다. 연밥은 연꽃의 열매로 연실(蓮實) 또는 연자(蓮子)라고 부른다. 바로 이 연자(蓮子)라는 이름과 동음인 연자(連子), 즉 ‘연속해서 자식을 얻음’이 연밥이 상징하는 의미가 되었다. 또한 연밥의 씨앗 하나를 연과(蓮顆)라 부르는데 이로 인해 연밥이 연과(連科), 즉 ‘연속해서 과거에 급제’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오리 역시 과거급제와 연관되는데 이것은 오리를 뜻하는 ‘압(鴨)’자를 파자하면 ‘甲’과 ‘鳥’가 되고, ‘甲’은 일등을 뜻하므로 곧 장원급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연화유어도 8폭병풍,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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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무쌍한 게의 위풍당당한 자태

이어서 하단의 수중 풍경을 살펴보겠다. 물가에는 게가 노닐고 있고 물속에는 조개와 암석 주위로 붕어, 쏘가리, 송사리 등 다양한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다. 게는 쌍으로 그려져 수풀을 쥐고 있는데 이는 갈대를 쥐고 있는 이갑전려(二甲傳臚)의 도상에서 가져 온 것으로 보인다. 게의 등껍질인 ‘갑(甲)’은 과거 급제에서 일등 혹은 최고 성적을 받은 사람을 의미하는데, 한 마리의 게는 일갑일명(一甲一名), 두 마리의 게가 갈대를 쥐고 있는 모습은 이갑전려로 과거 급제를 상징하였다. ‘전려’는 임금이 직접 합격자를 알현하며 귀한 음식을 상으로 내리는 행사인데, 중국의 발음 ‘려(臚)’가 갈대 ‘로(蘆)’와 비슷하여 형성된 단어이다. 또한 게의 한자음인 ‘해(蟹)’가 ‘조화’를 뜻하는 ‘해(諧)’와 동음이어서, 화목하고 조화로운 삶을 의미한다. 때로는 옆으로 걸어가는 걸음걸이와 집게발이 적과 싸우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용맹과 겸손의 뜻도 포함되었다.
수풀 사이를 헤치며 나와 잎을 집게발로 살짝 쥐고 있는 게와 거꾸로 뒤집혀 있는 게는 붓에 연한 묵을 묻혀 게의 타원형의 몸통과 다리를 형상화 하였으며 그 위에 윤곽선을 그렸다. 다리의 경우 빠른 필력으로 한 번에 그어 표현하기도 하였다. 수풀 역시 같은 느낌의 붓질로 간략하게 구사되어 있다.

자유로이 헤엄치는 물고기에 비춘 소망

연화유어(蓮花遊魚)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는 묵의 농담을 달리하여 섬세하게 묘사하였으며 쏘가리의 비늘무늬는 농묵, 중묵으로 점을 찍어 표현하였다. 물결은 물의 흐름에 따라 여러 가닥으로 유연하고 변화 있는 간략한 선묘로 표현하기도 하였지만 패턴화시켜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물고기들은 암수 한 쌍으로 헤엄치고 있는데, 이는 부부간의 화합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물 위로 뛰어 오르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에서 입신출세를 뜻하는 약리도(躍鯉圖)적인 성격도 포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물고기는 그 소재의 다양성과 상징성, 그리고 장식성 때문에 회화에서 즐겨 다루어지던 것이었다. 물고기 그림에는 다산, 다복, 벽사, 출세에서 부부의 금슬, 벽사수호적인 상징이 담겨 있으며, 떼를 지어 다니는지, 뛰어 오르고 있는지 등 그들의 행동양태에 따라서도 그 의미가 달라진다. 그리고 물속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물고기의 모습에는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풍류를 즐기고자 하는 옛 사람의 소망도 담겨 있다.
결국 이 연화유어도 안에는 과거급제나 출세를 통한 입신양명과 부귀영화를 바라는 마음, 부부애를 통한 다산, 풍류를 즐기고자 하는 옛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사람이 복을 바라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출세하고 싶어 하는 등의 더 나은 삶을 기대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소망이 민화라는 그림을 통해 발현된 것이다.
지금은 연꽃의 계절이다. 박물관 마당 한편에는 작은 항아리 연못이 마련되어 있다. 그 연못 안에는 금붕어와 미꾸라지가 꽃봉오리를 머금은 연꽃잎 아래에서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다. 햇빛이 쨍쨍히 비치는 여름날 오후, 바빴던 하루를 마감하며 시원한 툇마루에 앉아 한숨을 돌리며 꽃이 피어나길 기다려 본다.

 

글 : 박혜진(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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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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