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그려졌을까? 평생도平生圖 초본Ⅰ

도1 평생도 초본 부분, 35×20㎝,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이번 시간에 소개할 초본은 <평생도平生圖> 초본 중 ‘삼일유가三日遊街’ 장면이다.
이번 시간부터는 <평생도平生圖> 초본을 통해 평생도의 다양한 특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글 이다정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평생도平生圖> 초본을 살펴보자

이번 시간에 소개하는 <평생도> 초본에서는 화제畫題를 비롯해 어떤 글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화면 속 장면을 살펴보면 초본에 표현된 장면이 평생도 중 ‘삼일유가三日遊街’ 장면임을 알 수 있다. ‘삼일유가’는 과거에 합격한 주인공이 악사와 광대들을 거느리고 3일 동안 스승과 선배, 일가친척을 방문하여 인사를 드리는 풍습으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誌》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그림에는 많은 인물이 그려져 있다. 화면 상단에는 기다란 물건을 들고 다리를 건너는 세 명의 인물이 있는데, 이들이 들고 있는 것은 과거급제증서인 홍패紅牌이다. 화면 중앙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7명의 인물이 있는데, 이들은 과거급제자의 행차를 알리는 악사들이다. 화면 하단 왼쪽에는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3명의 광대가 그려져 있는데, 이들은 각종 재주와 재담으로 사람들의 흥을 돋우는 역할을 했다. 화면 하단 중앙에는 사모관대와 어사화를 쓰고 말을 찬 인물이 있는데, 이 인물이 바로 그림 속 주인공이다. 주인공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의 행렬을 구경하고 있는데 마당에서 구경하는 사람, 길가에서 구경하는 사람, 집 안에서 창문으로 내다보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초본은 먹으로 그려져 있으며 수정한 흔적이 전혀 없고 먹선 또한 깔끔하게 그려져 있어 마치 채색만 하면 그림이 완성될 것 같은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초본은 채색 직전의 단계에서 멈춰선 초본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 초본, 크기가 이상하다. 이 초본의 크기는 가로 20㎝, 세로 35㎝로 A4용지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의 크기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평생도 작품보다 상당히 작은 크기이다. 이 초본에 채색을 더해서 그림을 완성하고, 그 그림으로 병풍을 꾸민다면 그 병풍은 얼마나 작은 병풍인 것일까? 이렇게 작은 병풍을 쓰는 사람이 있었을까? 이 문제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우선 평생도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그려지기 시작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평생도의 시작

‘평생도平生圖’는 18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화제畫題로 사대부가 겪게 되는 평생의례平生儀禮와 관직 생활 중 경사스런 사건들을 그린 그림이다. 현재 전하고 있는 평생도 중에서는 단원 김홍도 화풍의 영향을 받은 19세기의 작품인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 1549~1615)의 평생을 담은 <모당평생도慕堂平生圖> 8폭 병풍, 담와淡窩 홍계희(洪啓禧, 1703~1771)의 평생을 담은 <담와평생도淡窩平生圖> 6폭 병풍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시기도 앞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두 점의 평생도는 현재 남아있는 평생도의 형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두 작품을 기준으로 평생도를 분류할 수 있을 정도이다.
다음 시간에는 평생도의 분류방식을 살펴보고, 그 기준이 되는 <모당평생도慕堂平生圖>와 <담와평생도淡窩平生圖>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평생도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평생도 초본>이 어떤 분류에 해당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 평생도는 잘 그리지 않는 주제이다. 그러나 민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다정 |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백석대학교 기독교박물관 학예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원,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이다.
월간민화 창간호부터 민화 초본에 대한 칼럼을 기고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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