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만들었을까? 문자도 초본 Ⅲ

(좌) 도1 이다정, <백수백복도>, 지본채색, 142×28.6㎝
(우) 도7 채색이 완료된 백수백복도

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김호연의 회고를 바탕으로 백수백복도를 그리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과거 우리 선조들이 민화를 그렸던 방식을 하나 더 알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글 이다정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김호연이 본 <백수백복도>를 그려보자 Ⅱ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우석尤石 김호연金鎬然의 회고 <우석尤 石 김호연金鎬然-4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에 기록된 백수백복도 제작과정 중 본을 뜨고 오려내어 판을 만드는 과정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본을 뜬 장판지는 칼을 사용하여 필요 없는 부분을 도려내었다. 장판지는 생각보다 두꺼웠고, 섬유질이 질긴 한지의 특성상 칼날이 쉽게 무뎌졌다. 작업할 때 칼날 각도가 30도인 칼 중 칼날 마디를 부러뜨려 사용하는 칼을 사용했는데, 초본 3장을 만드는 동안 칼날 한 통을 다 사용했을 정도로 한지는 강했다.

도2 글자를 도려내는 과정
도5 도4의 부분, 종이가 꺾여 획의 두께가
달려져 있다

그다음은 ‘반질반질한 긴 종이를 놓고 그 위에 장판지를 덮은 후 걸쭉한 물감으로 칠하는’ 과정이다. 처음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한 장만 먼저 해보기로 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문제가 생겼다. 초본에서 가늘게 파인 부분이 도5처럼 붓질에 꺾여버리는 바람에 물감이 묻으면 안 되는 부분에 물감이 묻은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물감의 농도를 묽게 해서 작업했는데, 초본과 종이 사이에 있는 미세한 틈으로 물감이 번지는 바람에 글자 밖으로 물감이 삐져나간 것처럼 채색되었다. 그 결과 도6 한가운데 글자처럼 획의 굵기가 일정하지 않고 두껍게 채색되었다. 여러 문제점을 확인한 후, 실제 작업에서는 가는 붓과 적당한 농도의 물감을 사용하여 초본이 꺾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세 장의 초본을 사용해서 도7과 같이 한 장의 작품을 채색하는 데 1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작품을 완성한 결과 각 글자의 가장자리 부분이 반듯하지 못하고 노란색 글자가 눈에 잘 띄지 않아서, 금분으로 노란색 글자의 테두리를 그려 넣는 추가 작업을 실시하여 도1의 작품을 완성하였다.

도3 글자를 도려낸 초본 중 일부
도4 채색 과정에 사용된 초본

재현 결과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종이 초본이 상당히 내구성이 좋다는 점이다. 김호연이 설명한 대로라면 하나의 병풍을 만들 때 24장의 초본이 사용되는데, 초본과 같은 모양의 병풍이 여러 개 있었다는 점에서 초본이 상당히 오랜 기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사용해본 결과 여러 개의 병풍을 제작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 만큼 튼튼했다. 다만, 가늘게 파인 부분이 꺾이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두 번째는 가는 붓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두껍거나 넓은 붓을 사용할 경우 파인 홈으로 붓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글씨 획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때 가는 붓을 사용할 경우 파인 홈으로 붓이 잘 들어가 획은 제대로 나오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판화처럼 빠른 시간 내에 완성하기는 어렵다.

도6 연습용 작품, 각 글자의 획 두께에 차이가 있다

셋째, 이러한 내구성에도 불구하고 종이 초본은 자주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재현 결과 종이 초본으로는 세밀한 형태를 표현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했다. 초본으로 작품을 제작하면서 도3과 같이 내부가 비어있고 완전하게 막힌 원형이나 사각형 등의 도형을 표현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발견하였다. 만약 종이 초본으로 작품을 제작한다면 반드시 붓으로 덧그리는 가필加筆 과정을 거쳐야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김호연이 “…모양이 다 비슷하면서도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어서 나는 할아버지 몰래 친구를 불러들여서 꼴이 같은 글자 찾기를 하면서 놀기도 했다…”라고 회상한 점을 보면, 김호연이 본 백수백복도 또한 인쇄 후 가필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똑같은 글자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붓으로 그리는 방식보다 종이 초본으로 인쇄 후 덧그리는 방식이 더 간편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번 재현 결과 백수백복도 제작방식과 제작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추후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한 새로운 초본을 제작하여 작품을 완성해보고, 그 결과를 독자들과 공유할 예정이다. 다만 장판지를 도려내는 과정에서 손가락 관절에 상당한 무리가 갔기 때문에 당분간은 작업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이다정 |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백석대학교 기독교박물관 학예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원,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이다.
월간민화 창간호부터 민화 초본에 대한 칼럼을 기고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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