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금옥 작가의 금강산 이야기 – 힘찬 선으로 내뿜는 기운

꽃과 나비, 새를 그리며 섬세하고 우아한 정취만 담아낼 것 같은 양금옥 작가가 금강산의 위용을 민화 속에서 뿜어냈다. 유화를 그리다가 늦게 민화를 접했고, 더 늦게 금강산도를 접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열정적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산봉우리를 어루만지고 힘찬 기운을 전해주는 그녀의 그림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수없이 뜨고 찢어버린 초본

작년 11월에 금강산 관광 20주년을 기념하는 남북공동행사가 성공리에 끝났다. 사람들은 금강산을 가네 마네 하는 얘기를 인사처럼 주고받았다. 이런 좋은 시절이 올 것을 알기라도 한 듯 최근 8~9년 사이 금강산도만 그려왔다. 사람들은 꼼꼼하고 섬세하게 표현된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금강산의 선묘에서는 힘이 느껴진다고 했다. 수없이 초를 뜨고 찢어버리며 금강산에 점점 빠져들었던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예원예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야촌 윤인수 작가를 사사했고 초충도, 화조도 등 작품을 20여 년간 그렸다. 어찌 보면 민화작가로서 한창 무르익었을 때 금강산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금강산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에 경희대학교 평생교육원 전통민화 지도자과정을 통해 송창수 선생님을 만났고, 선생님의 배려로 송규태 화백의 작업실을 드나들며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남들보다 시작은 느렸지만 배우는 속도가 빠른 편이었다. 다른 민화에 비해 초본의 비중이 큰 금강산도를 그리기 위해 천번 만번 선 연습을 반복했다. 송규태 화백의 작품을 직접 보고 느꼈던 전율을 가슴에 새기면서. 박물관과 도서관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금강산도의 정보도 수집했다. 마음속에 비껴든 금강산을 그대로 그려내고 싶었다.

부드러운 색감을 담은 금강산도

금강산은 13세기 말 고려시대 불교 경전 《화엄경》에 기록된 해동의 성지인 금강산과 동일시되며 유명해졌다고 한다. 특히 금강산의 특이한 지형과 신비로운 인상은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신성한 곳으로 만들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이 금강산을 즐겨 그리자 금강산은 진경산수화의 중심 소재가 됐다. 흥미로운 것은 19세기 민화에서 금강산의 바위산 봉우리가 의인화된 점이다. 내 작품 중 <금강산도 10곡절>에도 봉우리마다 기도하는 보살이나 말 얼굴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작으로는 이른 시기에 그려진 <금강산 만물초 승경도>(도1)를 꼽는다. 2009년에 그린 이 작품은 이듬해 두 번에 걸친 개인전에서 선보였다. 작품에는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그대로 옮긴 만물초가 단풍으로 붉게 물들고, 빽빽하게 솟구친 바위 봉우리 사이로 운무가 피어올라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어렵사리 완성한 구름에는 호분에 황토를 좁쌀만큼 넣고 칠해도 생동감이 일었다. ‘풍악산으로 불리는 금강산답게 강렬한 단풍 빛깔을 표현할 수 없을까?’ 고민을 거듭하다 주황과 황토를 섞어 밑색을 칠하고 양홍 분채를 사용했다.
10폭에 가로 4m에 달하는 커다란 병풍인 <금강산도 10곡절>(도2)은 1년간 작업했다. 이 작품은 진경산수화에서 민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금강산도이다. 문헌과 유물 조사는 물론, 설악산이나 도봉산을 오르내리며 험준한 산맥도 느껴보았다. 압도적인 크기의 금강산 전경과 해설에 주목시키기 위해 산은 먹으로만 묘사하고, 붉은색의 경면주사鏡面朱砂를 식용유에 개어서 지명을 썼다. 가장 민화적인 산수화는 <비로봉도>(도3)이다. 금강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비로봉(1638m)을 이상향의 봉우리로 묘사했다. 나만의 색감을 구현한 민화는 2017년에 탄생했다. <금강산도>(도4)는 금강산의 계절감을 강조하기보다 본남과 황토만으로 표현해봤다. 청색이 감도는 채색 바탕에 산세를 좌우로 길게 늘어놓아 웅혼한 기상이 드러났다.

비우고 새로워지는 내일의 민화

금강산도에서 다양한 변화를 꾀하고 싶다. 하지만 창작민화를 그리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금강산도는 맹목적인 모사가 아니라 금강산을 깊이 이해해야 미감을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업기간도 길어 몸이 자주 아팠다. 그럼에도 금강산도를 완성할 수 있던 이유는 주변의 인정과 기대를 받아서였다. 윤인수 선생님은 앞으로 금강산도만 그리라고 권할 정도였다. 《화엄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樹木等到花謝才能結果 江水流到舍江才能入海]” 금강산의 기세를 담으려 하지 않고 버리고 비우면 자유분방하고 신비로운 민화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붓끝의 비로봉을 올려보면 비로자나불의 옷깃이 스칠 것만 같다.


글, 그림 양금옥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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