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운을 막고 다산을 바라다 계공가족의 나들이 계공가족도(鷄公家族圖)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계공가족도, 두 장의 초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계공가족도, 두 장의 초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공가족도(鷄公家族圖)

햇볕 따뜻한 날 계공 가족이 모란꽃 그늘로 나들이를 나왔다. 병아리는 다섯 마리. 삐악삐악 즐거운 노랫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 하다. 계공 가족을 그린 초본과 그림에 담긴 의미, 당시 사회상을 살펴보자.

이번 호에 소개할 초본은 닭과 병아리 가족이 그려진 초본이다. 사진 상으로 위에 있는 초본에는 바위 위에 피어있는 모란꽃이 그려져 있고, 아래에 있는 초본에는 바위와 모란꽃 아래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닭 두 마리와 병아리 다섯 마리가 그려져 있다. 예로부터 새해를 맞이한 가정에서는 닭 그림을 벽이나 문에 붙여 잡귀를 물리치고자 했다. 닭은 귀신을 쫓아내고 액을 막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초본처럼 갓 깨어난 병아리가 어미 닭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그림은 화조도 병풍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자식 복을 기원하는 것으로, 그림에 나오는 많은 병아리처럼 많은 자손을 거느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한 장의 그림, 두 장의 초본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계공가족도 컴퓨터 작업 후, 원래 그림 한 폭용 초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계공가족도 컴퓨터 작업 후,
원래 그림 한 폭용 초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이 초본 두 장의 모양새를 자세히 살펴보자. 각각의 초본에는 칸칸이 채워야 할 색을 한자로 써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장의 초본을 자세히 살펴보면 원래 한 장의 그림이 나누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두 장의 초본의 재질이 동일하고, 색채 명을 쓴 글씨체가 동일한 점 등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장의 초본을 나란히 붙여보면 가장자리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두 초본을 살짝 겹쳐서 붙여보자. 마치 퍼즐이 들어맞는 것처럼 두 초본이 맞아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두 장의 초본이 원래 같은 그림이라는 결정적인 증거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 장의 그림을 번거롭게 두 장에 나누어 초본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초본이 그려진 종이의 재질과 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초본은 양지에 그려져 있다(현재는 더 이상의 손상을 막기 위해 한지로 배접을 했다). 1901년 용산에 최초의 양지생산 공장인 ‘전원국조소’가 설립된 이후 우리나라에는 양지가 급속도로 퍼지게 된다. 반대로 한지는 점차 그 품질이 낮아지고 가격 또한 비싸졌을 뿐만 아니라 생산량까지 줄어들었다.
초본은 여러 번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은 새 종이에 그리기 마련이지만,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한지를 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큰 양지를 구하기도 쉽지는 않았으리라 추정된다. 그래서 이 초본을 만든 화가는 두 장의 양지에 나누어 그림으로써 종이가 부족한 상황을 해결했으리라 생각된다.
이 초본은 우리 민족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담아내는 중요한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 민족의 삶을 담고 있는 민화를 좀 더 아까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글 : 이다정(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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