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한지 – 자부심으로 지켜온 우리 종이의 맥脈

안동한지
자부심으로 지켜온 우리 종이의 맥脈

최근 이탈리아의 종이문화재 복원 관련 학자들의 연구 결과 8천 년의 내구성을 가진 것으로 밝혀진 우리 한지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뜨거워지고 있다. 유럽의 종이문화재 복원에는 주로 일본의 화지和紙가 쓰여 왔지만, 그보다 우수한 내구성 덕분에 한지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우수한 품질과 내구성으로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우리 한지의 맥을 묵묵히 이어온 이가 있다. 안동한지의 이영걸 회장이 걸어온 40년 닥종이 장인의 삶.


모든 과정이 수작업을 통해 제작되는 한지는 그야말로 정성과 인내의 결정체이다. 좋은 품질의 국산 닥나무를 가마솥에서 10시간을 삶아 말린 뒤 이를 다시 물에 불려 껍질을 제거하고 또 다시 잿물에 삶아낸 섬유질을 얇게 펴서 만들어 내는 한지는 마무리 공정에 따라 화선지, 창호지, 벽지, 배접지, 장판지 등으로 나뉜다. 안동한지의 한지는 최상급 재료에 전통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어 품질 면에서 최고로 꼽히며, 안동시 지정특산품으로도 선정되기도 했다. 이영걸 회장은 국내 최고의 한지를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지난 40여 년간 오직 한길을 걸어왔다.


민화인에게도 사랑받는 안동한지

이 회장이 한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30대 초반 우연히 제천 한지공장을 방문하면서부터다. 정성스러운 과정을 거쳐 한 장 한 장 새 생명을 얻는 한지의 모습에 감명을 받아 기술을 습득하면서 한지 장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 얼마간 기술을 연마한 후 제천에 공장을 차렸지만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장남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또 전통 한지를 더욱 발전시켜야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며 고향 안동에 새 터를 잡았고, 지금껏 이곳에서 안동한지를 국내 최대 전통한지 생산기업으로 키워왔다.
안동한지의 주 고객은 한지 공예를 비롯한 전통 공예 예술가와 사찰, 문화재 관계자 등이다. 최근 민화가 제 2의 전성기를 맞으면서 민화 작가나 교육기관에서도 안동한지를 애용하고 있다. 민화 작품활동과 전시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서울 인사동에서 유통되는 한지 중 상당수가 안동한지의 제품이라고. 민화에 안동한지가 특히 제격인 이유는 전통 안료의 색감이 더욱 선명하게 표현되는 것은 물론 보존성 또한 우수하기 때문이라고 이 회장은 말한다.
“순지 등 민화 그리기에 주로 쓰이는 종이들이 다른 종이보다 값은 비싸지만 그만한 값어치를 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찾고 계신 게 아닌가 합니다. 또 작품표구에 쓰이는 배접지로도 저희 한지를 많이들 쓰고 계시죠. 이렇게 안동한지의 품질을 믿고 이용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어렵고 힘들어도 이 일을 계속 해올 수 있었습니다.”


세계화에 앞장서는 우수한 종이

우리 한지의 우수한 품질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수요가 점차 부족해지는 현실 속에서 안동한지도 그간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좋은 물건이 있어도 꽉 막힌 판로가 문제였다. 때문에 최근에는 생활 속에서 한지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홍보에 힘쓰고 있다. 일반 도배지 대신 우리 한지로 벽을 발라 환경과 건강을 지키고, 정성스런 편지글도 색색의 한지에 담아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종이로 옷도 제작하는 등 얼마든지 새로운 쓰임새로 한지가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있는 것. 해외에서도 월등한 내구성을 인정한 만큼 종이 문화재 복원에도 제격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지난 1999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과 정부 관계자들이 안동 하회마을과 안동한지를 방문한 것이 세계적인 홍보효과를 거둬 그 이후에는 세계 각국의 외교관을 비롯한 귀빈들의 방문하는 등 국제적인 한지 제조 및 한지공예관광 체험장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행정자치부에서는 정부에서 지급하는 훈·포장 증서에 전통한지를 사용하기로 결정해 안동한지를 비롯한 전국 5개 한지업체에서 종이를 공급하고 있다. 훈·포장이나 공무원 임용장은 국가의 정체성과 상징성이 녹아있는 중요문서이지만 지금까지는 일본식 기술로 만든 한지가 사용되어 왔다. 이 회장은 이번 계기로 안동한지는 물론 한지산업 발전에 활력이 더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부를 쫓은 것이라면 지금까지 한지만을 바라보며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하는 이영걸 회장. 우리 한지의 우수성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고단한 줄 모르고 달려온 세월이 자그마치 40년이다. 대를 있겠다고 나선 아들 내외와 함께 앞으로도 한지의 세계화를 위해 더욱 분주하게 움직이겠다는 이 회장의 도전과 노력이 머지않아 더 크고 알찬 결실로 돌아오기를, 우리 한지가 안동한지의 이름으로 전 세계를 누빌 수 있기를 바라본다.


글 박미지 기자 사진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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