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雙과 짝 – 전통미술의 겉과 속⑤

쌍雙과 짝
전통미술의 겉과 속⑤

상투常套란 늘 써서 버릇 되다시피 한 방법이나 형식, 또는 ‘정형화된 틀’을 말한다. 상투의 반대 개념은 참신, 또는 혁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참신과 혁신은 기본적으로 개인 차원의 것으로, 기존의 틀을 의도적으로 해체, 변형하는 등의 방법을 취한다. 항상 새롭고 앞서가는 것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은 어떤 틀에 매인 상투적인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상투적이라 해서 모두 무가치하거나 쓸모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민화에서 볼 수 있는 ‘쌍’과 ‘짝’의 결합 구조는 상투적인 것이지만 매우 중요한 조형적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 속에 당대 서민들의 보편적 정서와 생활철학, 그리고 생의 욕망과 미의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까치호랑이는 작품 수가 많다 보니, 명품으로 꼽을 만한 것도 적지 않다. 한 점을 선택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고,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일본민예관 소장 <까치호랑이>(도 1)를 소개한다. 이 그림은 작품성도 뛰어난 데다 시대성과 상징성도 분명하여 명품으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쌍雙,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흔히 사용하는 ‘안녕하십니까?’, ‘축하합니다’ 등의 말은 따지고 보면 지극히 상투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 말을 오랫동안 인사말로 써왔고 지금도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비록 상투적인 것이긴 해도 상호간에 정을 나누고 마음을 주고받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을뿐더러 다른 대안을 찾을 필요성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화는 겉보기로는 다양한 소재와 화려한 색채 때문에 자유분방한 그림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겉모습 뒤에 관습적이고 정형定型화 된 몇 가지 상투적 틀이 존재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화조화의 ‘한쌍주의’다.
화조화에서는 새를 한 마리만 그리는 법이 없다. 어떤 화가이든 새를 그릴 때는 반드시 두 마리씩 짝 지워 그린다. 그렇다 해서 그것을 ‘음양 분별과 조화의 이치’라는 철학적 주제에 대한 개인적 사유의 결과물로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선배화가들이 그렇게 그려왔고, 주변의 화가들 모두가 그렇게 그리고 있으며, 수요자들 역시 이러 표현 형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그린 것으로 봐야 한다.
민화에서 ‘한쌍주의’는 보편적 상징체계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상징체계를 통해 화가와 대중들은 상호 교감을 통해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 의미를 서로 공유한다. 만약 어떤 화가가 개성을 발휘한다고 하여 이 상징체계를 흩트리고 혁신을 꾀한다면 대중과의 교감 통로는 끊어지고 의미 공유의 길이 막히게 된다. 이런 점에서 ‘쌍雙’의 상투적 표현 형식은 민화에서 매우 중요한 조형 언어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표현 방식은 달라도 민화와 민요는 뿌리를 같이한다. 민요에서 어떤 의미, 어떤 심정에서 ‘쌍’을 노래하고 있는가를 살피면 민화의 ‘한쌍주의’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잘 알려진 민요 몇 대목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울었던가 말았던가 베개 머리 소沼(늪)이겼네. 그것도 소이라고 거위 한 쌍 오리 한 쌍 쌍쌍이 들어오네.”

이것은 민요 <시집살이> 중의 한 대목을 발음 그대로 옮긴 것이다. 시집살이가 괴로워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지 베개머리가 젖어 늪이 되니 물새들이 모여 드는데, 모두 쌍을 이루었다고 했다. 여기서 ‘쌍쌍이 들어오는 새’는 베갯모에 수놓아진 새를 염두에 둔 것 같기도 하나, 그보다는 자신을 위로받기 위해 쌍을 이룬 새를 빌려 온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새타령>에서는 날아드는 온갖 새들을 묘사하되, “산고심곡 무인처에 울리미중 뭇 새는 농춘화답에 짝을 지어 쌍거쌍래雙去雙來 날아든다.”고 했고, <성주풀이>에서는 “복숭아꽃, 오얏꽃, 모란꽃, 두견화가 만발하여 좌우 산천에 어우러져 있고, 남쪽 뜰의 나비들은 꽃을 보고 반기는 듯 쌍쌍이 날아들고”라고 했다. 이 경우의 ‘쌍’은 조화로운 자연의 모습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몽금포타령>의 “바다에 흰 돛 쌍쌍이도 오나 외로운 사랑엔 눈물만 겨워라. 에헤요 에헤요 에헤요 눈물만 겨워라.” 또, <한강수타령>의 ”앵두나무 밑에 병아리 한 쌍 노는 건 총각낭군의 에루화 몸보신 감이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바다에 떠도는 돛단배도 쌍쌍으로 묘사하는 가 하면 심지어 보신을 위해 잡아먹는 병아리조차 쌍으로 표현하고 있다. ‘눈물’이 들어 있기는 하나 이 경우의 ‘쌍’은 습관적인 음양陰陽 코드로서의 쌍이라 해야 옳다. 그렇다 면 대중들은 왜 항상 쌍을 노래했을까? 한자 ‘雙’은 한 손[又:오른손 우] 위에 새[ :새 추] 두 마리 를 올려놓은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글자가 암시하듯이 둘을 하나로 묶은 것이 ‘쌍’이므로, ‘쌍’은 하나이면서 둘이 고 둘이면서 하나인 셈이다.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 서 둘인 것, 이것은 곧 태극과 음양의 이치와 통한다. 음 양, 암수 등 상대적인 것은 둘이 쌍을 이룰 때 비로소 조화 를 이루고 안정을 얻게 된다. 둘 중 하나가 없는 것은 미완 의 상태이고 불안정한 것이다. 쌍을 이루지 못한 것은 미 완의 상태이므로, 안정될 수 없고, 평온할 수 없고, 그래서 행복할 수가 없다. 혼란보다 안정, 불안보다 평안, 불행보 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서민들의 보편적 정서이자 생의 진솔한 욕망이다. 이런 원초적 욕망과 기원을 간접적으로 충족시켜주는 미적 표현 형식이 바로 쌍을 이룬 새들의 모습인 것이다.

짝, 서로 다른 성질의 것이 긴밀하고 절묘한 조화를 이루다

‘짝’과 ‘쌍’은 의미상 미묘한 차이가 있다. ‘쌍’이 같은 종의 암수가 하나로 묶여진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짝’은 다른 성질의 것이 긴밀하고 절묘한 조화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자면 천지天地, 토석土石, 바늘과 실이 이에 해당한다.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민화에서 하나 의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 많다. 호랑이와 까치, 모란꽃과 괴석, 매화와 보름달, 국화와 나비, 학과 소나무, 기러기와 갈대, 석류와 원앙, 봉황과 오동나무(또는 대나무) 등이 그 것이다. 이 중에서 ‘호랑이와 까치’를 제외하면 민요에 나 오는 다양한 짝의 내용과 거의 겹친다.
민요에는 관습적이고 전통적 이미지를 이어받은 ‘짝’이 많 이 등장한다. 배꽃이라 하면 두견새가 따라 나오고, 갈대 꽃이라 하면 으레 백구가 맞붙는다. 매화와 함께 언급되 는 것으로 달이 단연 두각을 나타낸다. 소나무와 학이 짝 을 이루는 것도 예외가 아니고 송죽도 마찬가지다. 원앙 과 석류, 봉황과 오동나무가 짝을 이루는 것 역시 새삼스 러운 것이 아니다. 또 봄을 노래할 때는 도리행화桃李杏 花가 봄꽃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이들 ‘짝’은 개인이 각각의 자연을 각별한 애정이나 관심 을 가지고 관찰한 결과라기보다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조 화된 자연계의 융합을 관념화 하여 그저 막연하게 입버 릇처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이 상투적이고 습관적인 말 속에 대중들이 각각의 어떤 다른 것들이 서로 짝을 이룰 때 조화를 이룬 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암시가 들어 있다는 점 이다. 민요에서나 민화에서나 정형화된 상투적인 짝의 표현 형 식은 노래를 부르는 창자唱者나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개 성과는 무관한 것으로, 일종의 보편화된 상징체계로 존재 한다. 정형화된 짝의 형식은 한국인이 자연을 사랑하되. 다른 자연과 어떻게 조화된 것을 아름답게 느끼고 이상적 인 것으로 생각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꽃, 새, 달 등 이질 적인 자연계의 모는 것들이 스스로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 서 서로 조화를 이룬 세계, 이것이 한국인이 사랑하고 추 구했던 자연의 모습이자 이상적인 짝의 실체였다.
선비 화가들은 민화 화가와 달리 새를 한 마리만 그리기 도 한다. 그들이 그린 숙조도宿鳥圖, 독조도獨鳥圖와 같 은 그림의 새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새가 아니라 화가의 관념 속에서 형성된 새의 모습이다. 새를 위해 새를 그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회를 의탁하기 위해 새를 빌려 온 것이다. 민화 화가들은 스스로를 표현의 주체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들이 표현했던 것은 자신의 심회가 아니라 일 반화되고 정형화된 상투적 조형 언어였다.
민화가 유행했던 시대는 늘 새롭고 개성적인 것을 요구하는 다원화 시대가 아니었다. 민화 화가들은 그림을 그릴 때 창신昌新을 위해 기존의 표현 형식을 해체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예술적 능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술가로서의 환상은 가슴에 묻어두었다. 다만 ‘쌍’과 ‘짝’ 등 관습적이고 정형화된 조형언어로써 동시대 수요자들의 기원과 요구에 부응하는 그림을 그리는 데에 마음을 두고 있었을 뿐이다.

글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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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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