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문자도 ‘安’

유난한 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살갗을 스친다.
인근 실개천에 갈대가 무성히 자라나고, 기러기 가족이 날아들어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어느 가을날, 최천숙 작가가 집 앞 산책로를 홀로 걸으며 자연과 교감한 마음을 담아
그만의 시각으로 그려낸 문자도 이야기를 들어보자. (편집자 주)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의 뒤끝이 길어서인지 가을 한낮의 햇빛은 눈이 부시고 따사롭다. 늦은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아파트 문을 나서면 바로 보이는 산책길로 들어선다. 북한산 기슭에 지은 아파트라 산이 바로 보이고, 산 위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머무르게 하여 큰 연못을 만들고 그 물은 계곡 따라 계속 흘러간다. 연못에는 홍색 수련이 피어 있고 물속에는 금은색, 붉은색, 검은색 물고기들이 유유자적 떠다니고 못 둑에는 오리 떼가 젖은 몸을 말리고 있다. 버드나무 가에 핀 코스모스 사이로 비둘기 두 마리가 물 위를 내려다보고 있다. 산책길 언덕에는 들꽃이 많이 피어 있는데 봄부터 피어있던 패랭이꽃과 홀씨 달린 노란 민들레, 달맞이꽃, 보라색 토끼풀이 드문드문 보이고 남색 달개비와 아기똥풀, 망초가 무리지어 피어있다. 실개천을 따라 물가에 버드나무가 늘어져 있다. 개천은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녹음에 덮여있고 부들과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며 가을을 알린다. 새 무리가 푸드득 푸드득 갈색 날개를 펴고 머리 위로 날아간다. 갈대숲 속 실개천에서 먹이를 찾던 기러기 떼가 순식간에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동양화와 민화에서는 갈대와 기러기를 그린 그림을 노안도蘆雁圖라고 부른다. 여기서 갈대의 노蘆는 노인 노老와 발음이 같고 기러기 안雁과 편안할 안安의 음이 같아서, 습지에 갈대가 피어있고 기러기가 날고 노니는 가을 풍경이 담긴 노안도는 ‘편안한 노후를 보내시라’는 뜻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나 또한 가을날 산책길에서 본 갈대와 기러기, 연과 물고기를 소재로 편안할 ‘안安’자를 문자도로 그려보았다. 윗부분은 갈대의 갈잎과 아파트 지붕으로 그리고, 우리 집 창가에 피는 장미와 기러기 한 쌍과 대나무를 올렸다. 갈대는 깃털이 바람에 날려 종자가 번식하고 땅속줄기로 뻗어 나가며 군락을 만드는데 수명이 천년을 간다고 한다. 기러기는 암수가 금슬이 좋아 전통 혼례식에서 ‘전안례’奠雁禮에 사용된다. 전안례는 인간세계의 수복壽福과 혼인을 관장하는 ‘자미성군’紫微星君에게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선물하여 수복과 자손번영을 염원하는 의식이다. 평안平安을 상징하는 대나무와 죽순도 조화롭게 그려 넣었다.
아랫부분 女는 연蓮과 장군도將軍刀를 그렸고, 금빛 잉어로 한일一자를 그었다. 연蓮은 태양을 상징하여 우주의 근원이며 삶과 죽음을 잇는 재생과 영원을 표현하며 물고기는 효孝와 자손번성, 출세의 뜻을 가진다. 장군도를 넣은 것은 나쁜 기운을 물리쳐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기를 원함이다. 동묘에 모셔진 관우는 긴 수염과 금빛 옷을 입고 긴 칼을 가지고 안전을 지키는 신神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역사속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 받으며 무武와 재財의 신神이되어 재해와 악령을 퇴치하고 재물을 지켜준다며 민간신앙에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다. 채색은 민화의 특성인 오방색을 썼다. 오방색은 우리나라의 전통 색상으로 청靑, 백白, 적赤, 흑黑, 황黃의 5가지 대표적 빛깔을 모은 것으로 복福을 상징한다.
민화는 그림이 전하는 뜻뿐 아니라 색채와 조형미가 있어야 회화로써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편안하고 즐거운 ‘안安’자를 문자도로 화폭에 담아, 집안에 걸어 두고 행복하기를 소망한다.


글·그림 최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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