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 나타난 상상속의 동물열전

상상 속 동물

인간은 태어나서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 희노애락(喜怒哀樂)이라는 감정의 테두리 안에 믿음, 번뇌, 기원, 행복, 사랑 등의 감정뿐 아니라, 무한한 상상력이 생성되었다가 소멸되는 끝없는 역사적 변화를 겪으며 살아간다. 먼 원시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상상력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상상의 동물을 만들어냈다.

상상의 동물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통해 창조된 산물로서, 추상적 형상을 동물에 부여하여 탄생되었다. 그 창조과정에서는 실재하는 동물에 상상적 요소를 첨부하기도 하고, 여러 동물을 조합하여 새로운 상상의 동물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으며, 온전히 상상만으로 새로운 동물을 탄생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었다. 이렇게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동물은 인간의 의식 속에서 배태(胚胎)된 다양한 상징성이 반영되어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우주질서 속에서 각각의 영역을 담당한다.
동양과 서양의 상상의 동물은 종류에서부터 성격에 이르기까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용(龍)을 들 수 있다. 동양에서 용은 상서로운 의미와 더불어 권위의 상징으로 왕(王)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화염(火焰)을 토하며 암흑세계에 살고 죽음이나 죄악과 관계가 깊은 동물로 표현된다. 이처럼 동양문화에 등장하는 상상속의 동물들은 서양에 비해 경이로움을 담고 있다.


시대정신 산물인 상상의 동물

상상의 동물 대부분이 중국에서 기인하므로, 그 연구에 있어서도 중국 문헌을 빼놓을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산해경(山海經)』과 『삼재도회(三才圖會)』다. 『산해경』은 중국의 고대 지리서로서 서왕모와 곤륜산 이야기로 유명하다. 명나라 왕기(王圻)의 『삼재도회』는 여러 서적의 도보(圖譜)를 모으고 그 그림을 통해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로 구분하여 사물을 설명한 책이다. 그러나 한국 자료로는 참고할 만한 문헌이 많지 않아 민화(民畵)와 민간설화, 전설 같은 구비문학 등에만 의지해 자료를 정리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초기의 상상의 동물은 대체로 건국신화나 왕들의 탄생설화 속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등장하였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인간인 접할 수 없는 이상세계의 신비로운 존재로 발전하였다. 고구려 고분벽화 속에 등장하는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 사신도(四神圖)가 대표적이다. 사후세계의 환생을 믿은 사람들이 무덤의 사방에 강력한 수호의 힘을 가진 동물들을 상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고려시대까지도 대체로 무덤을 수호하는 사신도가 상상의 동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는 용, 봉황(鳳凰), 기린(麒麟), 해태와 같이 유교적 성격이 강한 상상의 동물이 주를 이루어 유교문화가 깊이 뿌리내리는 사회로 변화하는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명(明), 청(淸)으로 이어지는 시기에는 중국과의 원활한 교류 속에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다. 이처럼 상상의 동물은 시대정신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또한 같은 상상의 동물이라 해도 시대나 지역에 따라서 그 상징적 의미가 달라지고 이에 따라 표현방법도 달라진다.
18,19세기 민중문화 발전과 함께 불교의 예술품에서도 전통적 종교 상징성을 떠나 다양한 상상의 동물을 만나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은 사찰의 법당에 설치하는 수미산 모양의 단(壇), 즉 수미단(須彌壇)이다. 세계의 중심이 있다는 상상의 산, 수미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수미산에 산다는 다양한 상상의 동식물들이 부조로 조각되었다. 기발한 상상력의 산물인 상상의 동물들이 수미단에 표현되어 더욱 신성하고 신비롭게 보인다. 수미단을 구성하는 상서로운 동물을 통해 인도 힌두교나 불교의 신화적 동물들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래되면서 시대적, 종교적 변천에 따라 변화했음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신이한 능력과 신비로운 생김새

우리는 흔히 하늘과 땅과 사람을 아우르며 천지인(天地人)이라고 한다. 이는 ‘하늘이 열리고 땅이 생기고,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탄생했으니 하늘과 땅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신화 속 상상동물은 이러한 인간 생태의 기본인 천지인으로 분류하지 않고 천(天),지(地),수(水)로 구분하여 하늘과 땅, 그리고 물에 산다고 여겨지는 동물로 풀어보았다.
하늘에 사는 상상속의 동물은 어진 성군의 덕치를 뜻하는 봉황, 남방의 수호신 주작(朱雀), 빛의 전령 금계(金鷄), 월궁에서 약방아 찧는 토끼, 형상을 나누지 않는 비익조(比翼鳥), 반가운 사자의 표상인 파랑새(靑鳥), 신선들의 벗 선학(仙鶴), 태양 속에 살고 있는 삼족오(三足烏),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액운을 높은 곳에서 찾아내 세 개의 부리로 삼재를 쪼아 없애 주는 삼두일족응(三頭一足鷹), 천상의 노래를 하는 새 가릉빈가(迦陵頻伽), 지붕 위의 수호신 잡상(雜像), 번개와 천둥을 일으키는 뇌공신(雷公神), 사람과 소통하는 새 앵무(鸚鵡)가 있다.
땅에 사는 상상속의 동물은 서방의 수호신 백호(白虎), 법과 정의의 상징 해태, 권위와 위엄의 상징 사자, 괴물의 원조이며 동철(銅鐵)을 먹고 사는 불가사리(不可殺伊), 오색 신수 기린, 제왕의 출현을 알리는 말, 한라산을 지키는 신선 백록(白鹿), 귀신 잡는 삽살개 천구(天狗), 행운과 수호의 상징 소, 호랑이 잡아먹는 외뿔박이 박(駁), 상서로움의 상징 흰 코끼리, 웃는 도깨비, 머리 다섯 달린 오두귀신(五頭鬼神)이 있다.
물에 사는 상상속의 동물에는 신령의 걸물이요 권위의 상징인 용, 거북과 뱀의 조화 현무(玄武), 용의 얼굴에 입에서는 상서로운 기운을 내뿜고 있는 신과 인간의 매개자 신구(神龜), 거대한 몸집을 가진 바다 동물인 고래(鯨魚), 물속의 영혼을 울리는 목어(木魚), 초자연적인 힘으로 사람을 물속에 집어넣어 익사하면 재미 삼아 피를 빨아먹는 흡혈동물 하동(河童), 사람 얼굴에 물고기 몸, 다리가 넷 달린 인어(人魚), 달의 정령이자 재복의 상징인 세 발 달린 두꺼비(三足蟾)가 있다.
일반적으로 해태와 사자는 쉽게 혼동된다. 한국에서는 해태, 중국에서는 사자가 조각상으로 많이 나타난다고 하는 견해도 있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해태는 시비(是非)와 선악(善惡)을 판단하고 재화(災禍)를 막아주는 신수(神獸)로 궁궐을 비롯한 주요 건축물에 등장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문 앞에 있는 것은 사자가 아닌 해태로 보았다. 또한 상상의 동물이기에 명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조선시대 이후 예술품에 표현된 해태는 뿔을 찾아볼 수 없고, 뿔은 사자의 갈기처럼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해태와 사자는 비슷한 형태이지만 대부분의 해태는 푸른 비늘로 표현되어 있어, 이것으로 해태와 사자를 구분하기도 하였다. 사자는 불교에서 불법(佛法)과 진리를 수호하는 신비스런 동물로 인식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불상의 대좌를 비롯한 불탑, 석등, 부도(浮屠) 등 불교 관련된 석조물에 적극 활용되어 왔다.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상상

상상속의 동물들은 대중 생활 문화가 자체적으로 파생되는 과정에서도 낭만적이고 독창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변형되어 기발한 이야기로서 등장한다. 불가사리만 해도 현재 20여 편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흥밋거리로 재구성되어 공상과학보다 더 기이한 내용으로 발전해 갔다. 때문에 상상속의 동물들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신비로운 꿈을 키우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려는 문화의 비밀열쇠와 같다. 사람들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그들의 염원을 담아 다양한 상상의 동물을 만들어 냈으며 동시에 이 동물들을 우주질서의 조화를 담당하는 신(神)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켜, 인간의 한계성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벽사, 장생, 부귀, 출세 등 현세의 삶에 대한 갈망을 담은 자연의 동물들은 점차 변형되어 상서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무수한 상상력이 탄생시킨 동물들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더욱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글 : 윤열수(가회민화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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