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살아 숨 쉬는 나라 인도② 삶을 담아낸 진솔한 조형 언어, 인도 민화

도 1. 크리슈나와 뱀 여신들, 종이에 채색, 51.5×71.0㎝

▲도 1. 크리슈나와 뱀 여신들, 종이에 채색, 51.5×71.0cm

인도 민화는 그들의 일상을 표현한 가장 진솔한 조형 언어이다. 그 속에서 인도인들은 그들이 숭배하는 신을 형상으로 만들어 냈다.
그리하여 탄생한 민화 한 점 한 점은 인도인들의 정신세계와 염원까지 담아내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이번 호에서는 인도 미티라 지방의 마두바니 민화와 타네 지방의 타네 민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를 통해 그 속에 숨 쉬는 인도인의 삶과 관념을 엿볼 수 있다.

마두바니(Madhubani)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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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을 이어온 오랜 전통, 마두바니 민화
마두바니 민화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0여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인도 비하르Bihar 주의 고대 왕국인 미티라Mithila는 동인도 지역에 세워진 가장 오랜 왕국 가운데 하나이다. 미티라 지역의 여인들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방식대로 힌두교의 신들과 자연예찬을 주제로 민화를 그려낸다. 지금은 거의 희미한 흔적만 남아있는 화려했던 인도 고대 문명과는 달리 아직도 그 맥이 이어지고 있는 인도 민화, 마두바니는 인도 신화神話의 살아있는 소중한 역사 자료이자 약 3,000년 이상을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온 인도인들의 신화神話, 사랑, 생생한 삶의 기록으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인도 민화는 그들의 미의식뿐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종교와 그들이 숭배하는 신들과 관련되어 있다. 미술의 오랜 기원이 신화와 종교의 발달과 더불어 온 것처럼 가장 아름다운 미술품은 늘 신에게 봉헌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인도의 초기 민화는 집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여성만이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두바니 민화를 그리는 여인들은 자신이 숭배하는 신의 형상을 종이 위에 그리는 것은 곧 신에게 숨결을 불어넣어 자신들과 같이 살아가는 행위로 여겼다. 미티라의 여인들은 대부분 자신의 부모나 이웃으로부터 아주 어린 나이에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운다. 특정한 문양이나 신의 형상에 대한 표현은 그렇게 이어지며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여인들에게 민화를 그리는 행위는 마치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하거나 수를 놓는 일처럼 일상의 한 부분으로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브라만 계급 여인들이 그린 민화 기법
미티라 지역에서 그려지는 마두바니 민화는 크게 두 가지 기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이 지역의 브라만Braman 계급의 여인들이 그리는 민화로 검은 물감으로 거친 외곽선을 그린 다음 화려한 원색으로 채색하는 방법이다. 민화의 주제는 거의 힌두교의 신과 신화神話의 내용이거나 자연예찬이다. 그림에 사용하는 재료는 아직도 거의 원시적인 수준으로 보인다. 즉 자연에서 그 재료를 충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제한된 색채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그림이 보잘 것 없거나 초라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들이 그렇게 단순한 색채와 재료들을 가지고 그처럼 훌륭하게 신의 형상과 신화神話의 내용을 재현해내고 자신이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을 묘사해내는 실력은 어떤 뛰어난 현대화가가 뿜어내는 직관의 언어보다 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주 오래전에는 단순한 3가지의 색채만으로 그림을 완성했다고 한다. 숯에서 얻어진 검정색, 찰흙의 붉은 색, 카네이션 꽃가루에서 얻은 노란색에 염소의 젖이나 콩과류의 식물즙을 섞어서 사용한 것이다. 최근에는 옷감을 염색하는 데 사용하는 천연염료 가루를 고무와 같이 물에 섞어서 사용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색채는 대부분 식물이나 광물질로 자연에서 얻어지는 천연안료다. 파랑은 쪽에서, 노랑은 비소에서, 초록은 이 두 색을 섞어서 사용한다. 그들은 아주 가는 막대에 목화솜을 실로 묶어서 붓 대신 사용한다. 그림이 그려지는 바탕은 손으로 만든 종이가 대부분이다. 비교적 종이를 얻기 쉬운 요즘에도 그림의 밑그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에 다시 그 위에 다른 밑그림을 그려 채색하기도 한다.
마두바니 민화에 사용하는 원색들은 흰색의 종이 위에서는 너무 밝아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생활 주변 색채와는 거의 일치하는 듯 보인다. 인도의 모든 것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골 마을의 눈이 부시게 푸르른 초록의 들판, 강렬한 파랑의 하늘은 물론 빨강, 노랑의 터번과 화려한 원색의 사리를 입은 여인들이 만들어 내는 원색의 향연이 바로 인도의 색채이다. 인도의 색채는 흰 종이 위에서만 온전한 각각의 개성을 드러낸다. 사실 대가족이 모여 사는 인도 대부분의 시골집에선 여인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주변의 소란함 속에서도 여인은 바닥에 종이를 펼치고 그림을 그린다. 무아의 경지에 있는 것처럼 몰입하여 오랜 시간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카야스타 계급의 채색하지 않는 민화 기법
또 다른 마두바니 민화는 단지 한 가지 색으로 외곽선만 그리며 채색을 하지 않는다. 채색을 하지 않는 대신 아주 섬세하게 세부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그린다. 이 마두바니 민화를 그리는 여인들은 브라만 계급보다는 조금 낮은 카야스타 Kayastha(신으로부터 인간의 선행을 기록하라는 사명을 부여받은 서기) 계급이며 거의 이런 방법으로 작업한다.
또한 마두바니 민화가 그려지는 이 미티라 지역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청혼을 위해 ‘코바르Kobhar’라고 부르는 그림을 그린다. 즉 여성이 남성에게 프러포즈하는 ‘청혼 그림’인 것이다. 대체로 남성이 여성에게 구애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지역에선 거꾸로 여성이 남성에게 이 그림을 주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청혼의 그림인 코바르는 세계 어느 나라의 미술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 이런 창작행위가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놀랍다.
마두바니 신화神畵에 그려진 모든 사물들은 그것들이 가장 특징적으로 보이는 각도에서 그려진다. 이러한 관념은 그들의 인체 표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림에서 얼굴은 거의 옆모습으로 표현되며 크게 뜬 눈은 정면형이다. 그러나 상체, 즉 어깨와 가슴은 정면에서 그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늘 정면으로 그려진다. 그래야만 팔이 어떻게 몸에 붙어 있는가를 쉽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미술가들은 인체를 표현할 때 그들이 가장 인간답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규칙을 따랐다.

왈리(Warli)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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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장식품이자 세상을 보는 창
인도 마하라쉬트라Maharashtra 주의 타네Thane 지방, 아주 외딴 마을에 사는 왈리 부족에게 그들이 그리는 그림은 생활 속 유일한 장식품이자 세상을 보는 관점의 표현이다. 왈리 부족이 그리는 그림의 주제는 왈리 부족의 신화神話와 전설 중 가장 핵심인 결혼식을 관장하는 여신 파라가타Palaghata와 자연예찬이다.
왈리 부족은 다른 힌두교도들과는 달리 다양한 신들을 숭배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모든 자연물 속에 정령이 들어있다고 믿어서 그것들이 숭배하고, 그 모든 대상은 그림의 소재로 등장한다. 그 가운데서도 나무는 그들 작품에 미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세부에 대한 섬세한 감각과 때로는 마치 바람이 불어와 나무를 흔드는 것 같은 묘사는 그들의 자연에 대한 보다 친근한 표현이다. 왜 그들의 그림에서 나무는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일까?
고대로부터 이 지역 사람들은 나무 없이는 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무는 잘 익은 과일과 땔감을 제공하고 더운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인간 생활에 소중한 자산이다. 나무의 이 같은 기능은 마치 엄마가 아기에게 모유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왈리 부족은 나무를 모신母神으로 숭배한다.
“오! 나무의 신이시여, 저는 당신을 여신으로 찬양하겠나이다.” 왈리 부족은 이렇게 기도한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여신 파라가타의 모습도 거의 나무에 가깝게 표현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들에게 나무는 곧 신이기 때문이다.

파라가타 여신을 나타내는 다양한 묘사
결혼식 벽화의 중앙에는 늘 결혼을 관장하는 여신 파라가타가 그려진다. 때로는 머리도 없이 단지 어떤 생물체로만 묘사되기도 한다. 특히 북쪽 지역에서는 머리가 없고 벌거벗은 거의 원형의 뼈대만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힌두교 신화神話에서 파라가타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마하라쉬트라 주 켄데쉬Khendesh에서는 파라자트라Palajatra를 숲의 여신으로 경배한다. 이 여신은 숲과 옥수수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파라가타Palagata는 식물이 가득 넘치는 단지, 항아리를 의미한다. 팔Pal은 식물을, 가타ghata는 항아리나 단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항아리에 식물이 가득 넘치는 것은 풍요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여신이 네 개의 손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 것은 고대 인더스 문명으로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네 개의 팔을 지닌 탄생과 식물의 여신이 인장에 표현되었으며 기원 후 2세기 카니시카 왕조 때 사용됐던 동전에 묘사된 시바는 어깨에서부터 나온 네 개의 팔을 지닌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네 개의 팔은 신의 창조력과 전지전능을 상징하기 위해서다. 파라가타 여신을 네 개의 팔을 지닌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그녀를 우주 생명잉태의 에너지를 지닌 종족보존의 여신으로 숭배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판타지를 보여주는 왈리 민화
파라가타 여신과 판카시리야를 그려 넣은 사각형의 기하학적인 형태는 고대의 문양인 아리파나Aripana에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림에서 사각형은 단순히 장식이 아니라 신성한 힘을 얻기 위한 신을 모시는 성소의 역할을 한다. 아주 섬세한 기능을 지닌 사각형의 의미이다. 4개의 루프는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키는 신을 상징한다. 나라나데브Naranadeva, 히르바Hirva, 히마이Himai, 죠팅가Jhotinga는 네 방위를 지키는 신이다. 카우카트Caukat(신을 그려 넣는 사각형)는 우주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다. 또한 신혼부부의 집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왈리 민화 안의 모든 소재들, 사람, 집, 나무, 동물 등은 위아래 없이 서로 얽혀져서 그려진다. 하나의 그림 안에서 수많은 행위들이 동시에 일어난다. 그림 안에 그려지는 모든 개별적인 행위들은 하나같이 똑같이 중요하다. 그림 안에는 다양한 시점이 들어있으며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현재 이 순간에 모든 것을 정지시켜서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시간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본질인 것이다. 가장자리가 없는 그림의 공간은 왈리 부족이 살고 있는 환경과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오두막은 울타리도 없고 경계도 없다. 왈리 부족의 그림은 마치 하나의 판타지와 같다. 하나의 공간 안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 즉 시간의 개념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아니면 하나의 원처럼 돌고 도는 시간의 개념과 일치하는 것이다.
또한 왈리 부족은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지는 옛 이야기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신을 지극한 정성으로 숭배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권선징악과 관련된 이야기 등이 주로 그림으로 표현된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자연예찬이나 조상숭배의식, 축제의 춤이나 수확의 춤 등의 장면들이 다양하게 그려진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도 민화는 인도인들의 삶과 생활을 표현한 가장 진솔한 조형 언어이다. 인도인들은 끊임없이 신을 경배하고 명상하며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을 형상으로 만들어낸다. 그래서 마치 신화 속의 삶을 자신들의 일상으로 옮겨온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그렇게 탄생한 민화 한 점 한 점은 모두 아름답다. 그 안에 그린 이의 기도와 명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글 : 하진희(제주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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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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