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의 반려, 신령한 장생의 동물 – 사슴

옛 사람들은 도교 사상에 입각해 그림 속 사슴을 신선의 반려이자 선계의 정령으로 여겨 선록仙鹿이라는 추상적 개념의 동물을 만들어냈다. 민화에 등장하는 사슴은 십장생도에서 다른 장생물과 어우러지기도 하고, 사슴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묘사되기도 했다. 생태계에 실존하는 동물일지라도 장수의 상징으로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서민들의 불로장생의 기원을 대변한 사슴의 여러 모습과 의미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서양화는 형사形寫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자연계의 모든 것이 그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와 달리 동양화의 경우는 자연물을 의경意境과 정서 표현의 수단으로 삼기 때문에 소재 선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민화에 그려진 동물들이 몇 가지 종류로 한정돼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슴은 생태계에 실존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사슴 그림이 자연계의 한 단면을 표현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로 그림의 사슴은 인간의 욕망과 미적 정서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매개체로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슴을 보는 다양한 관점

<십장생도>의 사슴은 장생의 상징으로 그려진 것임을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에 따라서 그 의미를 달리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대상을 보는 관점이 서로 다른 데에 기인한다. <십장생도> 연구자들이 흔히 인용하는 고려 말 문신 이색(李穡, 1328~1396년)의 시 <세화십장생>과 조선 초기 학자 성현(成俔, 1439~1504년)의 시 <수사세화십장생受賜歲畵十長生>을 예로 들어 그 내막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색은 <세화십장생> 글머리에서는 “병중에 바라는 것은 오래 사는 것 뿐”이라면서도 정작 사슴을 논하는 대목에 가서는 “진궁에서 (사슴이) 말[馬]을 대신한 일은 이미 그릇된 것이다.[代馬秦宮事已非]”라고 하여 장생과 관련 없는 ‘지록위마指鹿爲馬’ 고사를 거론했다. 이것은 진나라의 간신 조고趙高가 사슴을 놓고 말이라며 억지 부린 상황을 일컫는 말로, 권세 부리는 자가 고의로 진실을 호도하는 것을 빗대어 말할 때 흔히 사자성어로 사용된다. 하사받은 십장생 그림의 사슴이 이색의 눈에는 장생이 아니라 권력자의 발호를 연상케 하는 동물로 비친 것이다.
출사出仕의 입장에서 바라 본 이색과 달리 성현은 처사處士의 관점에서 사슴을 바라봤다. 그는 <수사세화십장생>에서 “백록은 자태가 어찌 그리 깨끗한가.[白鹿形何潔]”라고 했는데, 이것은 사슴에게 물은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다. 유교 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은 하늘로부터 품수 받은 성정을 회복하는 첩경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마음은 사욕私慾, 권세 같은 더러운 것을 멀리할 때 깨끗해진다. 십장생도의 흰 사슴이 유학자 성현에게는 세속에 때 묻지 않은 깨끗한 인간 품성을 투영하는 거울처럼 보였는지도 모른다.
사슴 문양은 높은 벼슬을 얻어 조정에 복귀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는데, 이것은 옛날 삼공三公이 타는 수레의 장막에 사슴을 도안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사슴은 중국식 발음으로 ‘녹鹿[lù]’이 관리의 봉급을 뜻하는 ‘녹祿[lù]’과 같다는 이유에서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을 상징하는 동물로 인식되기도 했다. 사슴을 보는 눈이 이처럼 입장과 처지에 따라 다르고, 상징적 의미 또한 다양한 양상을 띠지만 십장생도를 비롯한 민화의 사슴은 대부분 장생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렇다면 수명이 10~15년 밖에 되지 않는 사슴이 명실상부 영원의 상징인 해, 달, 산과 나란히 십장생 대열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 실마리를 우리는 사슴과 신선과의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사슴과 신선의 연관성

신선은 도교 사상과 신선설이 결합된 신선사상이 낳은 불사不死의 초인이다. 그렇지만 신선은 신의 영역보다는 인간 영역에 더 가까운 면모를 보인다. 그래서 심신을 수양하고 도를 닦으면 신선이 되어 불로장수 할 수 있을 것으로 사람들은 믿었다. ‘신선’은 신인神人과 선인仙人이 합쳐진 개념이다. ‘선仙’은 ‘헌仚’과 동의어로 산 또는 높은 산 위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편 사슴은 옛 사람들의 관념 속에서 신선들의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는 심산유곡에 숨어 산다. 먼발치에서 바라 볼 수는 있으나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가 사슴이다. 홀연히 눈에 띄었다가 문득 사라지는 사슴의 모습이 신비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한 것이었고, 그런 사슴에 관한 경험과 기억이 선록仙鹿이라는 추상적 개념의 동물을 만들어 냈다. 관념적 존재인 선록은 직접 경험하거나 지각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바로 이 신비적 모호함이 선록이 신선의 반려 또는 신선의 정령이 되는 길을 터 준 것이다. 복숭아가 장수의 상징이 된 것은 도교 여신 서왕모 신화의 천도天桃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사슴은 천도처럼 신화에서 장생 상징으로 언급된 적도 없고, 더구나 수명이 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장수의 상징이 된 것은 신선의 반려라는 인식과 관련이 깊다.
신선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생일 또는 회갑을 맞은 이의 장수와 길상을 기원하는 축수화 祝壽畵, 또는 새해를 송축하는 세화 등과 같이 특정 목적 하에 그려지는 실용화라는 점이다. 조선 후기 화가 윤덕희(尹德熙, 1685~1766년)의 <수성도壽星圖>(도1)를 예로 들어 살펴보면, “기미 12월 낙서 산포가 그려 바친다. 최형 영숙의 회갑에 뜻을 붙인다.[己未復月 駱西散逋 寫奉 似寓意崔永叔回甲]”는 관서가 눈에 띈다. 이를 통해 이 신선도가 회갑을 맞은 최창억이라는 사람의 장수를 축원하기 위해 그린 그림임을 확인할 수 있다. 김홍도의 <선동취적>(도2)를 보면 사슴이 신선과 거의 같은 크기로 묘사돼 있다. 이것은 사슴이 신선이 거느린 애완동물이 아니라 신선의 반려이자 선계의 정령이라는 보편적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이 둘의 관계는 산신도에서 호랑이와 산신의 관계와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민화에 그려진 사슴의 의미

사슴을 그린 옛 민화를 살펴보면 십장생도류를 비롯해서, 군록도, 쌍록도, 송록도 등이 있고, 사슴이 신선과 함께 등장하는 신선도가 있다. 십장생도는 화려한 채색으로 산수 경관을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제작 목적과 화의는 어디까지나 장생과 길상의 추구에 있다. 당초에는 궁중의 왕, 왕비 등 왕족의 사적 공간이나 궁궐의 중요 건물의 내부 장식용, 또는 외진연시 배설용으로 제작되었다.(도3) 다른 한편으로는 계병(契屛 : 행사 기념 병풍)으로도 꾸며졌고, 정초에 왕이 신하들에게 선물로 하사하는 세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주로 왕공 귀족층 전용 완물玩物로 사용되었던 십장생도가 보편화, 일반화 과정을 거처 민간에 보급된 것은 조선 후기 무렵이다.(도4)
십장생도가 사슴을 다른 장생 상징물들과 함께 그린 것이라면 쌍록도, 송록도 부류의 그림은 사슴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이다. 때로 해, 학 등이 화면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구도상의 위치를 보면 사슴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임이 확인된다. 쌍록도는 민화의 특징 중 하나인 한 쌍 주의를 택하고 있다.(도5) 상투적인 것이지만 음양화합과 길상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틀로서 중요한 조형적 가치를 지닌다. 때로 희조喜鳥로 알려진 까치 한 쌍이 소나무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도 볼 수 있는데, 소나무가 장수의 상징인 만큼 축수祝壽의 의미가 강조된 그림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사슴 그림 중에는 도6의 경우처럼 사슴을 한 마리만 그린 작품도 있다. 한 쌍 주의를 택하는 민화의 특징을 감안한다면 다소 이례적인 작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만약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선록을 그리고자 했다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사슴 그림에 담긴 서민들의 소망은 수명장수 등의 현세복락주의적인 가치들이다. 수명이 특별히 긴 것도 아니고 천도처럼 신화에서 특별히 신령한 장생의 동물로 언급된 적도 없는 사슴이 서민들의 불로장생 기원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존재가 된 것은 신선의 반려요 선계의 정령이라는 인식과 연결돼 있다. 사슴 그림이 자유분방하면서도 일정한 틀 속에 갇혀 있는 이유는 개성 표현보다는 어떤 목적을 위한 장식 효과나 주술적 의미와 가치를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글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한국민화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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