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맞이 특별대담 릴레이① – 현대 민화의 경향과 새해 민화화단의 과제

재현과 창작을 넘어
민화의 질적 향상을 지향해야 할 때

금광복과 윤인수 두 작가는 현대 민화화단을 이끌고 있는 이른바 제1세대 민화작가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지명도와 중량감을 지닌 작가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 두 작가의 작품 스타일이 그대로 오늘날 현대 민화의 스펙트럼을 양분하는 두 가지 큰 갈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두 작가는 새해 민화 화단이 안고 있는 과제와 지향해야 할 진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민화계, 외연은 크게 넓어졌으나 갈 길은 멀어

유정서 옵저버의 개인적인 느낌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민화 화단은 최근 몇 년 동안 굉장히 크고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변이 확대되고 민화 인구가 늘어난 만큼 작품의 스타일도 굉장히 다양해지고 새로운 시도도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두 분께서도 이러한 경향을 느끼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신년을 맞아 특별히 기획한 이번 대담에서는 이런 물음을 포함, 최근 민화화단의 동향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나아가 바람직한 진행 방향은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한 두 분의 견해를 듣고자 합니다. 요약하자면 민화화단의 현재 상황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진로를 제시해 보고자 하는 것이 주제라고 하겠습니다.
먼저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에 대해 어쭙고자 합니다. 저는 상당한 변화의 조짐을 감지하고 있는데, 두 분께서는 어떠신지요?

금광복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한 마디로 어떤 요인들에 의해서 민화의 인구가 크게 늘어나는 등 양적으로는 상당한 성장을 이룬 것이 사실이지만, 질적 수준은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봅니다. 한 마디로 작품의 질이나 경향에서는 유의할 만한 변화의 조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작품의 내용만 해도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예전에 그리던 그림을 지금도 그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유정서 금 선생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창작민화의 선구자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그런 아쉬움을 토로하시는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마 창작민화가 선생님 바람이나 욕심만큼 뚜렷한 흐름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만…

윤인수 금 선생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런 시각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창작에 대한 열의나 관심은 상당히 높아졌다고 봅니다. 전통민화를 오래 하신 분들 중에도 새롭게 창작에 도전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거든요. 변화라면 큰 변화지요. 다만 문제는 그러한 관심과 열의와는 별개의 문제로 제대로 된 작품이 잘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창작민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방법론이 왜곡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한 마디로 창작민화의 당위성을 인정한다 해도 갈 길이 상당히 먼 것이지요.

유정서 창작민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윤인수 아무리 창작이라고 해도 ‘민화’인 이상 민화로서의 아이덴티티가 있는 그림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늘 “우리 것은 우리 것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른 것에서 찾는 것이지요. 창작민화의 해답도 전통민화 안에 있습니다. 정체와 국적을 알 수 없는 이것저것들을 콜라보하거나 비틀고 섞어 놓고는 그것을 창작민화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그것은 절대 민화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봅니다. 유감스럽게도 요즘 창작민화라는 이름으로 발표되는 그림의 상당부분이 이런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고 봅니다.

유정서 반론은 아닙니다만, 저는 모든 변화의 과정에는 진통이 따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를테면 완성으로 가는 길에는 길에는 과도기라는 게 있다는 말이지요. 두 분은 현재 우리 민화화단이 과도기 혹은 전환기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지요?

금광복 과도기라고 보기에는 기간이 너무 깁니다. 이런 저런 단체는 논외로 하더라도 (사)한국민화협회의 연륜만도 20년이 넘었어요. 작가로서의 경력이 20년, 30년 되는 작가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창작민화에 대한 논의와 주장은 이 때도 있었거든요. 이 정도의 기간이라면 어느 정도 방향도 잡히고 큰 논쟁도 대략 마무리되어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아직도 과도기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유정서 금 선생님께서는 민화계에서 창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지가 상당히 오래되었는데도 아직도 작품의 경향과 질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현대민화가 지나치게 모사 중심의 재현민화 일변도로 흘러왔고 지금도 흘러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보고 계신 것이지요?

금광복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전통에 뿌리를 둔 재현민화를 부정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옛 것은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옛 것이 다 계승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말이 왜 있겠습니까? 옛 것을 본받되 거기서 머물지 말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비유하자면 창신創新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법고法古만을 한사코 붙들고 있는 풍조가 민화의 질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보는 겁니다.

윤인수 저는 금 선생님 생각과 일부는 같고 일부는 다릅니다. 우선 창신創新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먼저 ‘법고法古’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옛 것을 올바로 익혀야 비로소 새로운 창조가 가능한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에는 아예 전통을 무시해 버리고 바로 창작으로 뛰어드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래서는 결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습니다. 민화를 모르는데 무슨 창작 ‘민화’가 탄생하겠습니까?

금광복 사실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제 생각과 윤 선생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 또한 전통의 중요성은 늘 강조하고 있습니다. 창작이라고 해서 무조건 옛 것을 지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전통을 모티브로 삼아 새롭고 창의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지요. 특히 민화는 다른 그림과는 달리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그림이기 때문에 그 뿌리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민화가 지닌 일정한 틀, 그런 것을 참신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창작민화도 민화로서의 아이덴티티 갖춰야

유정서 그렇다면 말이 나온 김에 요즈음 크게 기지개를 키고 있는 ‘창작민화’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눠보기로 하지요. 좀 구체적으로 두 분 께서는 오늘날 창작민화라는 이름으로 발표되는 작품들에 문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며 기본적으로 창작민화가 갖춰야 할 요건이 있다면 또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금광복 어떤 이들은 창작민화를 굉장히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창작을 제대로 하려면 갖춰야 할 기본기가 많습니다. 일단 초본에 대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자신이 직접 본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필력을 쌓았기 때문에 창작을 해도 큰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우스개 소리로 복사기 없으면 그림을 못 그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지요. 이래서는 창작을 할 수가 없어요. 그밖에 창의적인 작품을 하려면 기본적인 데생력도 갖춰야 합니다. 아무리 창작이 급하더라도 갖출 것은 갖춰야지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윤인수 지금 많은 사람들이 창작민화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일정 부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모사는 쉬운 건가요? 사실 말이 쉬워 모사이지, 옛 민화를 제대로 모사해 재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예를 들어 화조도 하나만 제대로 그리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책가도도 있고 문자도, 어해도, 까치 호랑이 이렇게 끝이 없다 보니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할 겁니다. 우리 1세대 작가들이야 숙명처럼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 민화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이게 보통 일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 까마득한 길을 기약 없이 가느니 차라리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게 낫겠다 싶은 거지요. 사실은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창작민화도 결코 쉬운 게 아닌데 말입니다.

유정서 한 마디로 창작이든 재현이든 모두 상당한 노력과 숙련이 필요하다는 말씀이 되겠군요. 그러면 앞서도 산발적으로 이야기되기는 했지만 창작민화가 갖춰야 할 요건 같은 게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윤인수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창작민화도 ‘민화’ 아닙니까? 당연히 우리가 상식적으로 민화라는 그림에서 느끼는 그런 분위기, 즉 민화로서의 정체성을 갖춰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중국 공필화나 일본풍의 그림을 그려놓고 민화라고 발표하기도 합니다. 아예 민화를 모르는 거예요. 아무리 변형이 되고 응용이 되어도 민화는 민화여야 합니다.

금광복 좋은 말씀입니다. 아무리 창작민화라 해도 소재와 스타일, 나아가 그림에 담긴 뜻은 민화적이어야 합니다. 제 그림만 하더라도 중심을 이루는 소재는 항상 전통민화의 소재들로 채워집니다. 전통민화가 염원과 이야기가 담긴 그림이듯이 창작민화 역시 스토리텔링과 작가의 작의作意를 읽을 수 있는 그림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유정서 저는 직업 상 굉장히 많은 작가들을 만나는데, 최근 들어 창작민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전통민화를 그리시던 분들이 더러 이런 질문을 하시더라구요. “내가 창작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인가, 창작을 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이를테면 창작 스트레스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윤인수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모두가 공감하듯이 재현과 창작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입니다. 법고 없는 창신이 없듯이 전통민화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올바른 창작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궁극적으로 재현과 창작은 같이 가야 합니다. 창작 하는 작가가 있으면 재현하는 작가도 있는 게 당연합니다.

금광복 오랫동안 재현민화를 그려오신 분들이 그런 생각을 하시는 이유 중의 하나는 기초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못 그리니까 불안한 것이지요. 기초가 탄탄하면 불안해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마음만 먹으면 그릴 수 있는데 뭐가 불안합니까? 기초실력이 탄탄하면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유정서 그런 이유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로는 창작민화에 대한 열의도 있고 기초도 있는데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윤인수 똑같은 말의 반복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 것은 우리 것에서 찾아야 한다, 민화의 해답은 민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 조언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창작을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는 말이지요. 대단하게 비틀고 조합하고 이런 것만이 창작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정서 그러고 보니 작년 윤 선생님이 개인전에서 선보인 ‘꽃병’ 시리즈가 생각이 납니다. 대단한 이미지의 변형이나 왜곡이 없이도 굉장히 새롭고 신선한 작품으로 다가왔어요. 어찌 보면 책가도에 나온 도자기 꽃병을 마치 근접 촬영을 하듯 확대해서 뽑아낸 것에 불과한데도 말입니다. 그 해에 어떤 대기업 캘린더의 이미지로 사용되기도 했지요?

윤인수 제 그림을 제 입으로 평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그 시리즈의 모티브는 아주 단순합니다. 책가도의 꽃병들을 끌어 당겨 세밀하게 그려내고 책가冊架의 구획들을 다소 기하학적으로 재배열 한 것 뿐인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모던한 작품이라고 보아주셨습니다. 다만 이런 그림을 그리려면 책가도의 조형 원리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터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 것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는 말이지요.


창작에 대한 열의, 성숙한 기량이 뒷받침 되어야

유정서 그러면 이번에는 현재 발표되는 창작민화들이 안고 있는 전반적인 문제점들은 어떤 것으로 보고 계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뛰어난 작품도 있겠지만 말 그대로 ‘전반적으로’ 어떠한지 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오.

윤인수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본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작품들이 많다고 봅니다. 오랫동안 민화를 그려온 사람의 눈으로 보았을 때, 구도, 선, 채색 등 가장 기본적인 요소부터가 미숙하다는 느낌을 주는 겁니다. 사실 이것은 재현과 창작을 떠나 그림의 기본이기도 한데, 이 점에 있어서는 그들에게 민화를 지도한 스승의 책임이 큽니다. 그런데 요즘은 민화를 가르치는 사람들 중에도 연륜이 충분치 않고 기량도 부족한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은 당장에는 민화인구의 증가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민화의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 겁니다. 큰 문제지요.

금광복 어떤 이론가가 말씀한 적도 있는 것 같은데, 재현민화도 그렇지만 창작은 그보다 더 괴롭고 고독한 작업입니다. 작가의 개성이 살아있는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일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특히 초본에 의지해 그려온 재현 작가들에게는 그 자체가 낯설고 당혹스런 일이지요. 창작을 하려면 창작이 힘든 작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당연히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개성, 예술관 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데, 대체로는 그러한 고민과 성찰 없이 아, 기존 재현민화를 조금만 변형시키면 되는 것이구나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창작에 임하다 보니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 겁니다. 누가 보아도 참 잘 그렸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그런 그림을 그리기 위한 노력이 아쉽습니다.

유정서 두 분 말씀처럼 요즘 창작민화에는 아직 이런저런 아쉬움이 많은 것이 사실일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행되고 있는 민화 공모전은 거의 다 창작민화 부문을 두고 있지 않습니까? 두 분은 심사에도 자주 참여하실텐데, 당선작들에서도 그런 아쉬움을 느끼십니까?

금광복 당선작은 가려야 하니까 일단 창의적이고 현대적인 민화를 그리려고 시도한 의지와 열의가 보이는 작품에 점수를 주기는 합니다만 기량에 있어서는 만족스러운 작품을 좀처럼 만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창작민화가 가야할 길은 멀어 보입니다.

윤인수 저도 그런 편입니다. 심사 자체가 곤혹스러운 경우도 많습니다. 저건 아닌데 싶은 작품들이 참 많기 때문이지요. 전혀 매칭이 안 되는 소재를 억지로 조합해 놓거나 민화적 요소가 전혀 엿보이지 않고 선이나 색의 구사가 미숙하기 짝이 없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심사를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보기에 아니다 싶은 작품들이 큰 상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큰 상을 받은 작품이 반드시 우수한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현대 민화, 창작과 재현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가야

유정서 자 이제 창작민화와 관련해서 정리해야 할 한 가지 주제가 더 남았습니다. 이 역시 새로운 테마는 아닙니다만 창작과 재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인가 하는 문제지요. 몇 년 전 창작민화가 비로소 공론의 차원에서 논의될 때만해도 곧잘 어느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논쟁의 수준으로 이어지는 경향도 있었는데, 이제는 이 부분도 많이 정리가 된 듯합니다. 두 분 생각은 어떠신지요?

금광복 이제 와서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 저는 처음부터 창작과 재현의 문제가 그런 식으로 논의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져왔습니다. 왜냐하면 민화를 포함해서 모든 예술작품은 어차피 결국은 작가의 개성이 담긴 창의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민화화단 역시 이런 흐름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거든요. 다만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모사 중심의 재현민화는 창작을 하든 뭘 하든 민화를 그리는데 반드시 필요한 기본기를 수련하고, 민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시각을 갖추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창작과 재현의 관계는 이렇게 설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윤인수 우리 1세대 작가들은 모두 민화라는 용어조차 낯설었던 시기에 지금의 눈으로 보면 창작민화에 가까운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입니다. 창작의 세계를 모르지 않아요. 다만 제가 우려했던 것은 ‘창작민화’라는 용어는 물론 그 개념조차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모하게 그쪽으로만 달려가고, 기본기조차 갖춰지지 않은 그림들이 창작이라는 미명하게 과대평가되는 풍토였습니다. 이런 풍토로 인해 뛰어난 기량을 바탕으로 오랜 세월 민화의 전통을 이어온 작가들이 위축되는 것은 현대 민화화단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창작민화도 민화인 이상 민화는 민화다워야 하고, 민화의 정신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금광복 기본적으로 윤 선생님의 견해에 동의는 합니다만 이것 하나만큼은 말씀드리고 싶군요. 만약 후대의 연구자들이 우리시대의 민화를 주제로 논문으로 쓴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내용으로 씌여지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아마도 “21세기의 가치와 시대정신이 반영된 수작들이 많이 나왔다.” 이렇게 쓰여야 하지 않을까요?

유정서 예상했던 대로 두 분의 시각이 조금 다른 점이 있지만, 결국 재현과 창작 중 어느 하나의 바퀴만으로는 현대 민화라는 수레가 굴러갈 수는 없다. 두 개의 바퀴가 모두 필요하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시대의 민화화단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랄까 진로랄까 이런 점에 대해서 한마디씩만 더 듣고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금광복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민화화단이 결코 고인 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이 중요하다고 해도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조선시대의 민화만 계속 그려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화의 변화와 진보가 너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양적 팽창에 걸맞는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민화 작가 모두가 좀 더 치열한 자세로 민화에 대한 공부와 기량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작가라고 해서 이론에 대한 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윤인수 저도 작가라면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과 다른, 고유의 개성이 살아있는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가져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민화인 만큼 민화를 제대로 그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 해답이 전통민화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공부에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구요.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금 선생님 말씀처럼 치열한 노력과 수련이 필요하겠습니다.

유정서 논점은 조금 달라도 결론은 같은 셈이군요. 좋은 작품을 내기 위해서는 작가들이 민화에 대한 애정과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기량 향상을 위해 좀더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겠다는 말씀이신 것 같군요. 다소 교과서적인 결론 같기는 해도 그게 정답인 것 같습니다.
두 분의 말씀이 민화화단의 발전 방향과 진로를 모색하는 데 큰 지침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진행 유정서 편집국장 정리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장소 한국문화정품관 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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