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배경에서 성찰해보는 민화 – 21C의 민화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민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지만 유물이기 이전에 예술로서, 전통미술에 대한 재해석에 자신의 몫을 더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예술이 ‘계승’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11월호부터 금광복 작가가 연재하는 <금광복의 현대 민화 이야기> 지면을 통해 오늘날 민화가 갖는 의미,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편집자주)


요즘 우리나라 화단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당연 민화일 것이다. 대학별 부설 평생교육원, 각 동네의 민화센터, 개인 화실 등 전국에 민화를 가르치는 곳이 수백 곳에 이르고 그 수가 10만 명이 넘는다하니 가히 민화의 열풍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사동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민화전시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민화에 대한 서적, 각종 학술세미나, 공모전, 해외전시, 아트페어 등의 행사가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민화의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이다. 오늘날 민화의 대유행은 원로 작가인 송규태(84세)선생의 은관문화 훈장을 받는 경사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민화民畵라는 용어는 1920년대 일본인 민예학자 야네기 무네요시가 월간지 <공예>에 ‘민중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에 의해 그려졌으니 즉 민중에 의해 구입되는 그림’이라 정의하면서 처음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이를 속화俗畫라 하여 여염집의 병풍, 족자 또는 벽에 붙인다 하였다. 민화 수집가이면서 연구가인 조자용 선생은 ‘서민, 평민, 사대부, 궁궐의 도화서 화원은 물론 모든 사회계층이나 신분의 구별 없이 그린 그림’이라 하였고, 김호연 선생은 ‘민족의 미의식과 정감이 표현된 겨레의 그림인 민족화’라 하였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익숙한 그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흔하게 접해왔기에 아직까지도 갑론을박하는 형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민화’라는 용어를 가장 친숙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단어에 대해서는 섣불리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상당히 오랫동안 사용한 ‘민화’라는 용어에 대해 그 어떤 대체용어가 나온다 해도 쉽게 바꾸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민화, 훌륭한 문화유산

민화는 국내외에서 인정받기 전에 ‘창조성이 부족한 공예적인 그림’으로 취급 받으며 장식성, 민간신앙, 상징적 의미의 기호적 성격을 띠게 된다. 도화서 출신 화공부터 화승,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며 즉석에서 주문을 받아 그리던 유랑화가 등 이렇다 할 교육을 받지 못한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거나 서민 출신의 무명 화가가 대부분인 것도 있지만, 무개성적 그림으로 기능만 강조하다보니 어떤 기법이나 화관畵觀의 영향을 받을 수도 없었고 받지도 않았다. 그 결과로 객관적 비판의 눈을 갖지 못하고 전래된 화구畫具를 답습하고 벽사로서의 주된 기능만 유지되었다.
한국 민화는 샤머니즘, 애니미즘, 토테미즘, 불교 사상, 유·불·선, 도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민화가 유행한 조선후기는 서민생활 깊숙이 자라난 유교, 불교의 종교적 요소와 도교의 풍수 지리적 요소가 상호보완으로 매우 역동적인 문화 양상을 보여 주던 시기이다. 왜란과 호란, 역병의 창궐 등으로 삶을 위협받기에 이른 민초들은 기댈 것을 찾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점점 주술적이며 기복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면서 민화는 오랜 세월 전승, 제작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민화에서 보이는 통일감을 거부하는 듯한 몸짓들은 규범과 상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풍부한 상상력과 독특한 능력을 발휘함으로서 모든 물상들을 전면에 배치했다. 또한 작품의 장식적이면서 강렬한 색채, 패턴화된 표현과 조형성은 오늘날 현대 미술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현대에 맞는 민화가 절실

근자들어 ‘우리 것’에 대한 담론이 문화 예술 각 부분에서 일고 있다. 민화 또한 그러하다.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고 폭발적으로 유행되고 그려지며 소비, 전시되고 있지만 현대적 변형을 시도하면 고래古來로부터 전승되던 민화의 멋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혹은 상징성의 호소력을 잃지는 않을까 하는 게 민화작가들의 절박한 고민이다. 오히려 민화를 가볍게 차용하여 사용하는 현대 작가들을 보면서 물음표가 많아진다. 과연 우리는 오늘날 무엇을 ‘민화’라 부를 수 있을까? 민간신앙과 설화가 어우러져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민중의 가치의식 속에 있던 삶의 방식이 현격히 바뀌어 버린 이 시대에 ‘민화’를 우리들의 그림이라고 당당히 부를 수 있을까?
기존의 전통 민화가 가지고 있는 형식의 해체를 통해 21세기 시대성과 메시지를 잘 담아낼 수 있는 현대 민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물론 민초(민중)의 삶과 애환, 번민, 분노,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전승 민화의 가치는 두 말 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우리는 창작, 창조, 창의 등 ‘창’자가 들어간 말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태양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명언이 있듯이 창작과 모방의 경계는 애매한 것이 사실이다.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이나 느낌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우리의 모든 사유와 행위가 전통에서 출발할 때 우리 삶의 정체성이 보장될 것이나, 액면 그대로 복제나 정체는 바람직하지 않다.

작가로서 새로운 미술장르에 대한 고민은 필수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그 변화에 대해 사유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과거 천년보다 지금 몇 십 년이 빠르게 변화하는 이미지 홍수 속에서 민화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 의미를 갖는가? 이백년, 백년 전의 민화를 모사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 아무런 감흥도 비젼도 전달해 주지 않을 것이다. 욕망과 미래가 없는 행위는 무기력하고 죽은 세포일 뿐이다.
현대 미술은 원본이 없는 복제의 시대, 나아가 복제가 원본을 대신하는 시뮬라크르(복제·가짜)의 시대라고 보았던 보드리야르는 오늘날 예술은 단지 시뮬라크르일 뿐이므로 실제로 무가치하며 ‘전문가 범죄의 공모’라고까지 주장하며 비판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민화가들은 단지 복제를 통하여 전승된 민화를 보전하는 것 뿐 아니라 ‘작가’로서 새로운 미술장르를 개척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절대적 고민을 해야만 한다. 어떤 이는 길을 따라 가지만 어떤 이는 길을 만들고 어떤 이는 빛을 따라가지만 어떤 이는 걷는 행위 자체가 빛이 되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예술의 본질은 사물을 모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가려진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라 하였다. ‘시대와 불화不和하는 예술’은 보편적인 규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창조성’은 언제나 예술의 제일 덕목이기 때문이다. 현대 예술은 형상보다 본질적이고 더 순수하며, 고귀하고 사실적이다. 미지의 세계에 관심이 많고 시대의 끝에 서 있기도 하다. 예술의 창조성은 가치 창출에 대한 직접적인 압력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가장 잘 발휘한다. “모든 고귀한 것은 어렵고 또 드물다”라는 스피노자의 말을 기억하고 기성의 체계에 너무 사로잡히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 많은 괴짜가 등장할 필요 있어

요즈음 우리는 민화의 창조성을 위한 고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절실하며 이를 위한 성찰적 답론이 필요한 시점에 서있다. 들뢰즈는 사회적으로 이미 규정된 몰적인 것(규범, 관습, 코드)에서 소수자들에게 탈주하기를 권한다. 그러나 몰적인 사회는 탈주를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 이미 만들어진 선택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길 강요한다. 예술가들은 사회에서 부적응한 괴짜들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괴짜’들이 더 괴짜일수록, 더 많은 괴짜들이 존재할수록 사회 전체에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힘이 커진다. 민화에도 이러한 괴짜들이 많이 등장해야 할 것이다.
모든 예술은 창조에 기초하며 기존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 기저로 삼는다. 그러나 민화의 기법적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빨리, 잘, 똑같이 그리면 정답이라는 훈련을 받는다. 민화가 지향하는 의미가 현시점에서 점점 퇴색되는 느낌을 받는 것은 틀에 박힌 그림을 반복적으로 그리기 때문이며 기존의 전통민화적 관점에서 다양한 표현방식을 잘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에 와서 자아의식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민화의 영향을 받아 창조적 작품을 남긴 김기창과 더불어 민화와 불화를 소재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박생광 등이 민화의 현대적 변형을 통해 새로움을 시도했다. 1970~80년대 민화작가로는 나정태, 정하정, 이규완, 박수학, 윤인수, 서공임, 금광복, 이정동, 이문성, (고)안종혁, 김상철, 정복석 등이 현대적 작품을 지금까지 간간히 해오고 있다.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많은 민화 작가들은 아직까지도 그 답보적인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통그림인 민화의 상징성을 읽어내고 재해석함으로써 자기 몫을 더할 때 민화에서도 현대라는 시대적 가치가 반영된 작품이 나올 것이다.

현재 민화와 덩달아 발전하는 전통 민화

예술가들은 ‘더 높은 곳’, 즉 아름다움과 진실을 통찰하기 위해 표현이 자유로워야 한다. 창조적 작품은 관람자의 평가를 떠나 한 사람만이 느끼는 묘한 쾌감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어떤 이에게는 보잘 것 없어도 한 사람에게는 대단한 기쁨과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영생永生은 오래 살되 건강하고 젊게 사는 것이다. 전통 민화를 젊게 살려 내려면 이 시대의 이야기가 담긴 현대 민화가 나와야 한다. 현대의 민화가가 어떤 작품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에 민화가 더욱 가치를 발하게 될 것이다. 민화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영매자가 기꺼이 되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필자는 민화가 당당히 이 시대에 한 자리를 자리매김하여 창조적 예술로 대접받기를 고대한다. 현대 민화를 통해 1970~8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창작민화에 대해서 많은 작품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글 금광복 (민화작가, (사)한국민화협회 고문)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