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화견바탕재 가공 및 표면처리법



식물성 섬유로 만들어진 종이와 달리 견은 누에고치로부터 얻은 동물성 단백질의 가는 섬유를 직조하여 만든 것으로 흡습성, 신축성, 투명도 면에서 종이와는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다루는 과정도 표면처리법도 달라 견을 처음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으나 결코 다루기 까다로운 소재는 아니므로 함께 차근차근 도전해 보도록 하자.

글 김민(채색겸미 회화연구소 대표)


견은 중국에서 사용하기 시작하여 고조선 시대에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합성섬유의 출현과 함께 견의 생산이 줄어들었으나, 1970년대 이후 고급 섬유로서 견의 특성이 재확인됨에 따라 수요가 증대되고 있다.
견은 비교적 강도가 강한 편이지만, 내광성이 약해 일광에 노출되면 색이 갈변되고 강도도 약해진다. 곰팡이나 미생물에 비교적 안정적이나 관리가 중요하고 단백질이므로 해충에 약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촉감과 광택이 우수하기 때문에 고급 의복뿐만 아니라 회화의 바탕재료로 선호되어 왔다. 당시 견은 지금과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고가였지만, 종이나 다른 직물로는 대체할 수 없는 견직물만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최고의 바탕재로 애용되어 왔다. 그러나 사용하기 쉽고 가격 면에서도 선택의 폭이 넓은 종이가 점점 널리 사용되면서부터는 일부 문화재 복원 현장에서만 사용되는 정도로 사용이 줄어들게 되었다. 근래에 들어 전통회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화견이라는 소재에 대해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화견에 제작하는 작가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견은 닥 섬유로 만든 한지와 비교하여 경년열화經年劣化 측면에서 다소 떨어지는 측면도 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고색화 되는 과정은 동양의 가치관과도 어울리는 소재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견 자체가 지닌 고급스러운 표면 광택, 자연스러운 바림 효과, 가늘고 얇은 소재이면서도 견고하다는 점이 견의 큰 강점이다. 제작과정에 있어 견만이 가지고 있는 제작법 또한 다른 바탕재와는 차별화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식물성 섬유로 만들어진 종이와 달리 견은 누에고치로부터 얻은 동물성 단백질의 가는 섬유를 직조하여 만든 것으로 흡습성, 신축성, 투명도 면에서 종이와는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다루는 과정도 표면처리법도 달라 견을 처음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으나 결코 다루기 까다로운 소재는 아니므로 함께 차근차근 도전해 보도록 하자.


직기의 구조


화견이란?

단원 풍속도첩 길쌈

직물의 직조방법은 견, 면, 삼베와 관계없이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인 원리에는 크게 차이가 없다. 먼저 직물의 폭에 해당하는 올 수 만큼의 경사經絲가 감긴 빔으로부터 나란히 종광綜絖(잉아라고도 함)의 눈에 한올 한올 끼워 세팅을 한다. 이들 경사는 별도의 장치에 의해 둘로 나뉘어 각각 위와 아래로 벌어져 개구開口를 만들어낸다. 다음, 위사緯絲를 북 속에 담아 개구 속을 가로지르면, 모든 경사의 위아래로 교차하여 위입緯入이 일어난다. 다음으로, 이 위사를 바디(reed)로 쳐서 이미 짜인 천의 끝에 바싹 밀어붙이면, 비로소 경사와 위사의 조직이 완성된다. 이처럼 직기는 개구·위입·바디질 등의 동작을 반복함으로써 천의 경사 방향으로 연속된 직사각형의 직물이 짜이게 된다.
누에나방의 고치에서 나온 실을 견사라고 하며, 이것으로 만든 섬유를 견직물絹織物이라고 한다. 여러 천연 섬유 중에 견은 거의 유일한 필라멘트 섬유이다. 필라멘트 섬유란 한 올의 긴 섬유를 그대로 실로 짜내는 것이다. 반면 양털이나 목화, 모시, 삼베와 같은 다른 천연섬유는 여러 개의 짧은 섬유를 연결해 실로 짜내는 스테이플 섬유다. 견직물은 견사의 상태, 직조방법 등에 따라 여러 명칭으로 불리는데 금(錦, polychrome woven silk), 능(綾, twill damask), 단(緞, satin damask), 라(羅, gauze), 사(紗, simple gauze), 주(紬, spun silk tabby), 초(綃, think silk tabby) 등이 있다. 영어명으로는 실크(Silk), 국내에서는 비단이란 명칭이 일반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회화용 바탕재로 쓰일 때도 주로 비단이라고 하지만 정확하게는 화견이라 쓰는 것이 맞다. 작품재료 기법을 설명할 때 ‘견본채색’이 통상적으로 쓰이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화견은 산수, 화조, 불화 등 장르 불문하고 여러 작품에 사용되었지만 초상화(영정, 진영)에서는 거의 화견만 사용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초상화 바탕재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조선시대 역대 왕의 초상을 기록해 놓은 의궤를 보면 모든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초綃가 등장하며 어진 제작 시 ‘초’를 사용하였다는 것이 확인된다(표1). 지금도 ‘초를 낸다’, ‘초를 뜬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의궤에서는 정본正本 위에 먹선을 옮기거나 그림 그리는 과정을 상초上綃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화견으로 쓰이는 견은 초綃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슷하게 모사 제작 시 트레싱하는 것과 같이 투명한 유지 위에 먹선을 옮기는 것을 유지초본油紙草本이라 하며 같은 발음이지만 이때 ‘초’는 ‘풀 초草’ 자를 사용한다. 중국과 조선의 고문헌에서 공통적으로 초는 얇은 생사로 제직된 평조직의 직물을 말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화견으로 초라는 견 직물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표1 고문헌에 나타난 화견의 명칭



그림이야 어디엔들 그릴 수 있지만 일단 화견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평직(Plain)으로 짜인 직물이어야만 한다. 평직이란 직물조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조직으로 경사(세로 실)와 위사(가로 실)가 한 올씩 교대로 짜인 조직이다. 올의 교차점이 많기 때문에 조직은 얇아도 강하며, 짜임에 따라 올 간격을 조절할 수 있어 배채 표현에도 적합하다. 다른 직조 방식에 비교하여 가로, 세로 신축률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림 완성 후 그림의 변형률이 적은 것 역시 화견으로 사용하기에 적당하다. 다만 대각선 방향(바이어스 방향)으로 잡아당겼을 시, 늘어나기 쉽기 때문에 작품 완료 후 배접을 하기 전까지는 틀에 그대로 고정해 두는 게 좋다. 평직 외에 능직(Twill)과 주자직(수자직 Satin)의 직조 방식이 있다. 능직과 주자직은 평직과 달리 씨실을 2개 혹은 4개로 날실을 교차하여 만든 조직으로 평직에 비하여 조직점이 적어 유연하고 광택이 좋은 특징을 보이며 조직이 두툼한 것이 특징이다. 주로 옷감으로 사용된다(표2).


표2 직조방법에 따른 특징 비교



현재 화방에서 화견이 시판되고는 있지만 재래시장에서 파는 원단 직물 중 오간자, 노방, 명주 등이 평직으로 제직되어 있기 때문에 화견으로 사용이 가능하며 가격도 화방보다는 비교적 저렴하다. 시장에서 평직으로 짜인 견이나 이상의 종류를 보여달라고 한다면 종류별로 몇 가지씩 꺼내어 보여줄 것이다. 여기서 노방은 한복의 안감재로 사용하는 것이라 올이 매우 가늘고 성기며 투명하다. 그림을 그리기에는 다소 약한 편이지만, 소재가 투명한 만큼 배채의 효과를 얻기에는 좋다.
어디까지나 바탕재는 작가의 취향이 우선되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견을 사서 써보는 것을 추천한다. 종이와 달리 실의 굵기, 씨실과 날실과의 간격, 같은 평직이라고 하더라도 직조 방법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특히 여백이 있는 경우 바탕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질감은 작품의 분위기를 좌우하며 이것이 화견 바탕재의 매력이기도 하다(표3).


표3 S화방에서 판매하는 화견의 합사 조건에 따른 비교


화견의 연폭

국내 S화방에서 판매하는 중국 화견은 최대 180㎝ 정도까지 판매하지만, 과거 기계직이 아닌 수직으로 짠 직물의 경우 한자(약 30.3㎝) 또는 두자 내외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그 이유는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베틀작업의 가장 효율성이 높은 사이즈기 때문이다. 그 이상을 넘으면 한 사람이 소화해 내기 어렵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가성비는 떨어지게 된다. 재래시장에서 판매하는 직물 역시 거의 대부분 기계직이며 최대 100㎝를 넘지 않는다. 수직은 아무래도 기계직에서는 볼 수 없는 불규칙적인 손맛이라는 것이 있지만, 이 손맛을 보기에는 너무나도 고가다.
180㎝ 폭에 길이는 원하는 만큼 재단이 가능하니 어느 정도 크기의 작품을 소화해 내기는 무리가 없지만, 그 이상의 크기의 작품일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종이는 풀칠로 간단하게 연접이 가능하지만 직물의 경우엔 풀칠만으로는 내구성이 결여된다. 따라서 직물류는 바느질로 폭을 연결하여 사용하는데 이것을 연폭이라고 한다. 두 장 이상의 직물을 연결할 때 사용하는 바느질법은 감침질법으로 감침질은 두 장의 직물을 꿰매어 이을 때 사용하는 바느질법이다. 양 직물의 시접 부분을 꺾어 대고 사선으로 꿰매면, 안쪽은 긴 사선의 바느질 자국이 생기나 표면에는 자국이 나타나지 않는다. 화견의 연폭 역시 같은 방법으로 실시하지만, 시접 부분을 꺾기보다는 시접 부분의 견사 한 올이나 두올 정도만 꿰어 바느질한다. 바느질로 꺾이는 부위가 가급적 최소화 되어야만 화견의 두께에 대한 차가 최소화되고 작품의 감상에 방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감침질에 사용하는 실은 화견과 동일한 견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신축률, 수분 반응 등이 원 바탕재와 저항성 없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때 견사는 화견에 사용된 견사를 직접 취하여 사용한다. 화견의 위사 방향으로 절단하면 절개면에 따라 올이 느슨하게 되고, 위사로 사용된 견사를 취할 수가 있다. 바느질에 사용한 바늘은 최대한 가는 바늘이 좋으며, 감침질에 사용하는 견사 또한 가능하면 화견에 사용된 정도의 올 굵기가 적당하다. 매우 지루한 작업이지만 하다 보면 어느샌가 연폭이 되어 있어 뿌듯해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표4).


표4 화견의 연폭


화견을 틀에 고정하기

화견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화견을 틀에 고정해 두어야만 한다. 낱장으로 그렸을 경우 물리적인 힘을 가했을 때, 올의 변형은 곧 작품의 변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올 밀도가 높은 직조물에 비교하여 밀도가 떨어진 성긴 직조물일수록 변형이 쉽게 일어난다. 화견에 사용하는 틀은 유화의 캔버스 틀처럼 속이 빈 공틀을 사용한다. 공틀을 사용하는 이유는 화견의 앞면뿐만 아니라 뒷면에 채색하는 배채를 활용하기 위함이다. 굳이 배채를 하지 않는다면, 배접 후 종이에서처럼 패널에 씌워 작업해도 상관없다. 지금은 대부분 견틀에 바로 풀을 바르고 화견을 접착시키는 방법을 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이 틀에 줄을 걸고 화견을 사방으로 당기는 쟁틀로 사용했다. 화견 사방에 줄을 꿰고 당기는 작업이 다소 번거롭지만 화견의 팽팽함 정도를 조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줄의 길이를 조절하면 틀보다 작은 사이즈 내에선 화견을 고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표5).


표5 화견 쟁틀 매는 법



틀에 바로 풀질을 하여 화견을 고정할 때는 틀에 미리 풀을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2회가량 반복하는 것이 좋다. 풀 안에 수분이 증발하거나, 나무틀에 풀이 흡수되면서 접착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한 번 풀질을 해둔 틀은 이후 같은 과정을 생략한다.
틀에 풀질을 해둔 사이 준비한 화견에 적당히 물을 뿌려 둔 다음, 틀에 옮겨 사방을 당겨 틀에 붙여 둔다. 마른 상태에서 화견은 당겨도 잘 늘어나지 않지만 물을 흡수한 상태에서는 화견이 유연해지면서 잘 늘어나기 때문이다. 서서히 물이 증발함에 따라 화견이 수축하면서 화견은 틀 위에 팽팽하게 고정된다. 대부분 작가들이 팽팽하게 매진 견틀을 선호하지만 너무 팽팽하게 당기게 되면 화견 틀을 두드렸을 때 마치 쇠북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며, 심하게는 틀이 뒤틀리기까지도 한다. 이 상태에서 작품을 끝내고 틀에서 떼어 내면 화견의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화견에 변형이 올 수 있기 때문에 과도하게 당겨 붙이는 것은 오히려 작품에 좋지 않다. 화견 위에 채색이 반복될수록 당김은 커지니 습한 날 화견이 살짝 처지는 듯한 정도의 상태가 적당하다. 간혹 당겨 붙일 때 당김 정도가 맞지 않아 올이 물결치듯 흐트러질 때도 있기 때문에 가급적 종사와 위사가 수평 수직이 맞도록 맞춰 주는 것이 좋다. 세로나 가로로 가위 질을 한 다음 종사나 위사를 한 올 빼두면 쉽게 식별이 가능하기 때문에 편리하지만, 아무 처리 없이 육안으로도 확인이 가능하기에 힘 조절을 적절히 하여 당겨 붙이도록 한다(표6).


표6 견틀에 풀로 화견 붙이기



화견틀이 준비되었다면 화견틀 안에 딱 맞아 떨어지는 속틀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속틀 위에 그리고자 하는 초를 고정하고 그 위에 화견틀을 씌운 다음 다시 화견에 초를 옮긴다. 초를 옮길 때 손에 힘이 들어가더라도 바탕재에 부담을 주지 않으며 초를 고정하기에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속틀을 제작하는 대신 건축물 내장재로 사용하는 폼 보드를 주로 사용하는데,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단단하고 가벼워 사용하기에 편리하다(표7).


표7 견틀과 속틀의 활용


화견의 가공과 표면처리

채색화를 그리는 데 있어 생지는 잘 번져 안정적인 채색이 어렵고, 미처리 생견은 수분을 튕겨내어 채색이 어렵다. 견사는 피브로인(fibroin)과 세리신(sericin)이라는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견의 단면을 잘라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면 삼각형의 두 가닥의 피브로인을 세리신이 감싸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외곽의 세리신은 누에가 고치를 지을 때 피브로인 단백질의 응고를 방지하는 윤활제의 역할과 함께 고치실을 단단하게 고착시키는 아교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뜨거운 물에 팽윤되는 성질이 있으므로 고치로부터 고치실을 풀어낼 때 실크 단백질이 손상을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먹물로 선을 그을 때, 먹 선이 고르게 화견 위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울방울 맺히듯 튕기는 현상은 위에서 설명한 세리신이라는 단백질 성분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화견의 표면처리는 종이에서처럼 단순히 흡습성을 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을 튕기는 듯한 화견의 내수적인 성질과 동시에 흡습성을 억제하는 표면처리가 이루어져야만 한다(표8).


표8 견사의 구조와 정련


숙견 만들기

화견의 표면처리는 생견의 화견을 그대로 처리하는 법과 숙견熟絹을 만들어 사용하는 법, 두 가지가 있다. 숙견이라고 하는 것은 생견사生絹絲나 생견포生絹布를 정련精鍊하여 짠 직조물을 말한다. 정련은 정제精製와 같은 비슷한 말로 화합물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 이루어지는 과정을 말하지만 견의 정련은 견을 열수에 수세하여 화견의 물 튕김 현상과 관계있는 세리신을 제거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정련하는 과정은 하는 사람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비교적 간단하다. 약알카리의 온수에 견직물을 넣고 견 전체가 온수에 담길 수 있도록 찰박거려 주면 되는 것으로 방법은 대동소이하다. 온수는 약 50~60도 정도로 하고 너무 높으면 변형이 올 수 있으니 그 이상 높게 하지 않는 게 좋다. 알카리는 거품이 안 일어날 정도의 주방용 세제를 약간 떨어뜨려 주면 된다. 사실 온수만으로도 세리신은 제거되기 때문에 알카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온수에 견을 넣은 다음엔 견이 균일하게 적셔질 수 있도록 가볍게 손으로 찰박찰박 건드려 주도록 한다. 빨래를 빠는 것처럼 주물럭거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견에 손상을 입히거나 꺾임이 발생하여 이후 작업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이 뜨거우면 나무젓가락 같은 것으로 휘휘 저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물이 식을 때까지 중간, 중간 3~4회 정도를 반복한다. 물이 적당히 식으면 다시 깨끗한 냉수에 오염물이나 알카리 성분이 남지 않도록 수세를 하고 건조하면 정련 과정은 끝난다.
정련을 마친 숙견과 생견을 비교해 보면 우선 육안상 생견은 광택이 없지만 숙견은 우리가 흔히 명주, 비단이라고 할 때 연상되는 광택이 드러난다. 만졌을 때 생견은 약간 빳빳하고 까슬까슬한 느낌이라면 숙견은 그보다는 부드러운 감촉이 든다. 정련이 잘되었는가의 판단은 정련을 마친 뒤 먹선을 그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먹을 붓에 넉넉하게 적신 다음 선을 그었을 때 튕김 현상 없이 먹선이 스며들 듯 잘 그어진다면 정련이 잘 된 것이다(표9).


표9 생견과 숙견의 먹 번짐 비교


화견의 표면처리

정련 과정을 마친 숙견은 먹물이 잘 스며들기 때문에 당연히 종이의 아교포수와 같은 표면처리를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생견에 바로 작업을 할 시에도 똑같이 아교포수를 실시하면 된다. 이때 아교포수는 생견이 가지고 있는 발수성을 상대로 물감의 접착성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흡습성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아교포수의 요령은 월간민화 4월호에 설명한 바와 같이 종이에 포수한 조건과 동일한 조건이면 된다. 아교포수란 결국 아교수와 명반의 가교라는 화학반응에 의한 것이고 이 화학반응은 아교와 명반의 정해진 비율에 따르기 때문이다. 다만, 아교포수를 연하게 하고 싶으면 물을 많이 넣으면 되고, 아교포수를 강하게 하고 싶으면 물을 적게 넣어 농도를 진하게 하거나 아교포수의 횟수를 늘리면 된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종이에서 했던 비율대로 똑같이 아교 10g 대비 물 400g, 약 2.5% 정도의 농도에 명반은 0.6g을 넣으면 큰 문제 없이 아교포수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올 막음을 위한 한천 포수

모든 직물은 섬유가 여러 층위를 이루며 켜켜이 쌓인 종이류와 달리 종사와 위사가 교차하는 지점과 지점 사이에 공간이 생기게 된다. 특히 배채를 위해 투명도를 높인 화견의 경우엔 더더욱 올 간격이 넓게 직조되어 있다. 지금 기계직으로 생산된 대부분의 견조직물은 올 간격의 밀도가 높은 편이지만, 조선시대 불화, 초상화에 사용된 수직의 화견을 보면 어떻게 채색이 올라가나 싶을 정도의 올 간격이 큰 바탕재가 있다. 이런 바탕재 위에서 온전히 채색하기 위해선 올 막음을 위한 특수한 가공법이 필요하다. 바탕재 뒷면에 배접을 하여 채색할 수도 있으나, 배채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적절한 방법은 아니다. 올 막음을 위해서 아교포수의 농도나 횟수를 과도하게 높이는 경우가 있으나 채색은 올라갈지 몰라도 적절한 방법이라 할 수 없다. 표면에 아교수 농도가 높아질수록 바탕재의 유연성은 떨어지고 딱딱해져 작품에 균열이나 꺾임이 가기 쉽기 때문이다. 심하게는 아교의 장력으로 인해 틀이 뒤틀리거나, 작은 충격에 바탕재가 터지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화견의 올 막음을 위해서는 예로부터 우뭇가사리라는 해초에서 얻은 풀을 화견 위에 도포하여 사용했다. 조선시대의 《어진도사도감의궤御眞圖寫都監儀軌》, 《어진모사도감의궤御眞模寫都監儀軌》, 《영건도감의궤營建都監儀軌》,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 등에서 포수, 반수와 같은 용어와 함께 들어가는 재료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牛毛加士里(우모가사리)’가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는 우뭇가사리의 발음을 한자로 빌려와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뭇가사리는 바닷속에 사는 홍조류의 해초로 말려놓은 것은 백색을 띤다. 이것을 솥에 넣고 삶아 주면 진액이 나오고, 불순물을 걸러 상온에 식히면 탄력 있는 묵(우무)이 된다. 이 묵은 식용으로 사용하지만 화견의 올 막음을 하는 데도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문화재 보존처리 현장에서는 우뭇가사리를 녹인 진액을 해초풀이라 하며 실제 접착제로 사용하고 있다. 전분 계열 풀보다는 접착력도 약하고 물에 쉽게 풀리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 피착제의 가접착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화견바탕재 위에 우뭇가사리 풀을 도포하는 것은 우뭇가사리 풀의 접착력을 활용하기 위해서가 아닌, 우뭇가사리 특유의 얇은 필름 형성 능력을 활용하기 위함에 있다. 우뭇가사리 진액의 가장 큰 특징은 상온(약 25도 전후)에서 쉽게 응고되는 성질이다. 이 진액을 화견 위에 도포하면 수분이 증발 건조하기 전 상온 가까이서 응고 현상을 일으키고, 이대로 건조가 진행되면서 필름이 형성된다. 이때 생긴 얇은 필름이 화견 바탕재의 올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뭇가사리 진액을 정제하고 건조시킨 것을 한천이라고 하며 현재는 화견의 올 막음 처리에 한천을 사용하는 것이 더욱 편리하고 일반적이다. 한천은 건어물 코너가 있는 비교적 큰 식품 매장에서 직접 구할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으며 가격도 매우 저렴하다. 긴 가닥의 형태 또는 가루 형태로도 나오기 때문에 무엇을 사용하든 상관은 없지만 아무래도 용해가 쉬운 가루 형태가 사용하기 편하다(표10).


표10 우뭇가사리와 한천



한천의 농도 결정은 화견의 상태에 따라 올이 성긴 견일수록 진하게, 올이 촘촘할수록 연하게 제조해서 도포하면 된다. 접착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도, 흡습과 방습의 효과를 노리기 위한 처리가 아니고 단지 피막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니 작가가 선호하는 조건에 따라 농도는 달리 할 수 있다. 본인의 경우 화방에서 파는 화견 2합사를 기준으로 약 물 200g 대비 1g 정도를 1회(용해 시 수분 증발량은 무시함) 도포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아교수를 생각해 보면 매우 저농도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상온에서 응고가 발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천의 용해는 먼저 한천 적당량을 물에 침전시킨 다음 충분히 팽윤시켜둔다. 다음날 사용한다면 전날 저녁에 담아 두는 것이 적당하다. 한천이 물에 충분히 팽윤되었으면 적당한 냄비에 넣고 가열한다. 이때 아교처럼 중탕할 필요가 없으며 끓여도 상관없다. 일단 한천 용액이 끓게 되면 불을 끄고 미지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한 번 정도 반복하여 끓여 덩어리로 남아있는 한천이 충분히 용해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반복하여 끓여도 용해되지 않고 건더기로 남아 있을 수 있으니 사용하기 전에는 반드시 채에 걸러 사용하는 것이 좋다. 한천이 너무 과도하게 올라가거나 이런 덩어리가 위에 남게 되면 이 부분이 필름이 벗겨지듯 박리 현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으니 과도한 도포나 덩어리가 바탕재 위에 남는 것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한천의 도포는 우선 한천이 약 30~40도 정도로 따뜻할 때 실시하는 것이 좋다. 그 이하가 되면 응고되어 붓 발림성이 떨어지고 균일한 도포가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응고가 진행된다면 다시 한 번 가열하여 사용하면 된다. 화견 위에 도포할 때 아교포수를 하는 것과 같이 균일하게 도포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붓질을 한 번에 멈추지 말고 여러 번 교차하듯 해주는 것이 좋으나 먼저 도포한 곳에서는 이미 응고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응고된 부분에서는 붓질하지 않아야 한다. 응고가 진행된 곳에 붓질을 하면 도막이 뭉개지면서 불균질해지기 때문이다.
올이 성기어 채색이 어려울 경우에 한천 도포는 불가피하지만, 그 외의 경우엔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필수 조건은 아니다. 한천 도포 후 생기는 얇은 막은 빛의 간섭과 굴절에 의해 반짝이거나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경우가 있다. 배접하고 나면 이러한 현상은 한결 진정되지만 이러한 표면 광택을 꺼리는 작가도 있으며 오히려 선호하는 작가들도 있으니 이 부분은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들이 취사 선택해야 할 부분이다(표11).


표11 한천 도포의 유무에 따른 표면 변화


화견 위에 아교포수

한천은 응고력이 세고 물과의 친화성이 강하여 한천을 도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화견의 올 막음을 위한 것이지 아교포수의 효과는 없다. 오히려 물 번짐이 심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한천 도포 다음에 채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위에 아교포수를 다시 실시해야만 한다. 정련을 마친 숙견 역시 물 번짐이 발생하기 때문에 아교포수를 필요로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표12).


표12 아교포수와 한천 도포에 따른 화견의 발묵 비교



아교포수의 농도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종이에서 실시한 대로 아교 10g 대비 물 400g, 명반은 0.6g 비율로 1회 도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화견의 뒷면에 배채를 실시할 경우 같은 농도로 아교포수를 실시하고 작품을 제작하기 전 일부분에 번짐 정도를 확인한 다음, 부족하다면 같은 방법으로 재차 실시하면 된다. <표13> 화견 위에 전체적으로 아교포수를 해두면 다소 처짐이 발생하거나 건조 속도에 따라 물결 모양으로 늘어나기도 하지만 건조하면 대부분 사라지니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 다만 건조 후에도 이러한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다시 한 번 물을 분무하고 나서 늘어난 만큼 당겨 틀에 고정해두어야 한다.


표13 아교포수와 한천 도포에 따른 화견의 표면 구조 비교



예로부터 견은 견고하면서도 투명한 물리적 특성과 함께 특유의 광택과 감촉으로 고급소재의 상징성을 띤다. 매우 고가였기 때문에 재화로써의 가치가 있는 것은 물론 국가 간 교역의 대상이기도 했던 견 직물은 의복뿐만 아니라 서화의 바탕재료로도 선호되어 왔다. 이때 서화용 견직물을 화견이라고 통칭했으며 조선시대 의궤의 기록에 따르면 화견으로 초를 사용했으며 초는 평직의 생견을 일컫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생견은 견사를 이루고 있는 피브로인과 세리신이라는 단백질 중 세리신을 제거하지 않은 견직물을 말한다. 세리신은 수분을 튕기는 듯한 발수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생견 위에는 그대로 그림을 그릴 수 없고 이 세리신을 제거하기 위한 정련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정련은 온수 또는 알카리 수로 처리가 가능하고, 이 정련 과정을 거친 견을 숙견이라고 칭한다. 세리신을 제거한 숙견은 물 튕김 현상은 사라지고 미처리된 종이와 같이 흡습성을 띠게 된다. 여기에 안정적인 채색을 하기 위해서는 아교포수를 해야만 한다.
반면 생견에 아교포수를 하는 것은 물을 튕겨내는 듯한 특성을 잡는 것과 동시에 번짐을 막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생견 위에서 수분은 세리신의 영향으로 발수적인 성질을 보이지만, 명반을 첨가한 아교포수액은 안정적인 도포가 가능하다. 균일하게 도포된 상태에서 건조됨에 따라 아교피막이 형성되고 아교포수의 역할과 함께 채색층의 접착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의궤에 따르면 화견에는 생견을 사용하고 여기에 우뭇가사리 처리와 아교포수를 실시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생견을 바로 사용할지 아니면 정련 과정을 거친 숙견으로 사용할지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선택사항이므로 서로 비교 경험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교포수에 앞서 한천(우뭇가사리)을 도포하는 행위는 반드시 실시해야만 하는 작업은 아니지만, 효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에 추천한다. 한천을 도포함으로써 견직물의 올 사이에 생긴 공간이 메워져 표면이 매끈해지고 붓의 운필도 그만큼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직물의 올 간격이 크면 클수록 그 효과의 차이는 크며 물감이 올 사이에 빠지는 현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노방이나 그 이상의 성긴 견을 사용할 시에는 한천 도포가 필요하다.


표14 도련(도침) 시공 비교



표15 화견 가공 조건에 따른 비교

※ 이상의 바탕재 표면처리 가공법에서 본인은 <④ 생견+한천 도포+아교포수>법으로 작품제작을 하고 있다. 여기에 필요시 운필이나 착색의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련을 실시하기도 한다.


화견의 표면처리 및 가공법은 본문에서 소개한 방법 외에도 도침법이 있다. 도침법은 종이를 두드려 종이표면을 평활하고 치밀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견직물의 경우 도련搗練으로도 쓴다. 생견에 도련을 하면 견사가 납작해지면서 평활해지기 때문에 운필이 부드러워지면서 세밀한 묘사에도 용이하다. 또한 견사의 단백질 조직이 물리적으로 파괴되면서 먹물의 튕김 현상이 완화되기도 한다.
이상으로 화견이 가지고 있는 특징부터 제작에 앞서 실시하는 기본적인 표면 처리법에 대해 알아봤다. 생견을 아무런 처리하지 않고 작품 제작에 사용할 수도 있다. 생견이 가지고 있는 물 튕김과 같은 발수적인 특징이 작가에 따라서는 매력적인 부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에 제시했던 정련, 한천 도포, 아교포수, 도련과 같은 방법들은 작가가 원활한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기능적인 면들을 개선하기 위한 바탕재의 가공법이다. 가공하는 방법에 따라서, 또는 가공하는 정도에 따라서 제작 환경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작가 본인이 선택하고 조절해야만 한다.

김민–인스타그램 @with__color (채색겸미)

일본 京都 市立藝術大學 보존수복학과 박사 졸업을 했다.
국립 중앙박물관, 국립 고궁박물관, 서울대학교 규장각 등에
모사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문화재청 대형불화 정밀조사 연구
프로젝트 채색정보 담당연구원으로 재직했다.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민화과, 국민대학교 문화재보존수복학과
겸임교수이자 채색겸미 회화연구소 대표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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