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화사가 그린 최고의 민화 십장생도 초본­①

사진1. 십장생도 8폭 병풍 초본 연결, 前 지장암 소장

*사진1. 십장생도 8폭 병풍 초본 연결, 前 지장암 소장

십장생도 초본­①

민화가 불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연구는 그동안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조선 후기에 이르러 사찰의 벽화와 불화 속에 민화적 요소가 본격적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관련 분야에서 종종 언급되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에 소개하는 십장생도 초본은 사찰에서 스님들이 직접 그렸던 민화를 엿볼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십장생도 초본은 서울특별시 동대문 근처에 있는 지장암地藏庵에서 소장하고 있던 유물이다. 그러나 현재 실물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사진으로만 이 유물을 접할 수 있다. 총 8장의 사진이 남아 있는데, 사진 속 유물을 살펴보면 그림의 양옆 가장자리가 여백 없이 가득 차게 그려져 있다. 사진들을 연결해 본 결과 이 십장생도는 원래 8폭으로 구성된 그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사진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각 폭에 한문으로 폭의 순서를 나타내는 숫자가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 초본이 십장생도 연폭병풍으로 제작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초본의 가장자리가 상당히 훼손되어 있는 것을 보아 아마도 이 초본을 상당히 많이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3. 십장생도 8폭 병풍 초본 숫자 부분, 前 지장암 소장,  각 폭의 순서를 한문으로 써 놓아 순서를 헷갈리지 않게 하였다.

▲사진3. 십장생도 8폭 병풍 초본 숫자 부분, 前 지장암 소장,

각 폭의 순서를 한문으로 써 놓아 순서를 헷갈리지 않게 하였다.

십장생도는 왜 비슷하게 생겼을까?
사진2. 십장생도 8폭 병풍 초본 일부, 前 지장암 소장, 2009 촬영

▲사진2. 십장생도 8폭 병풍
초본 일부, 前 지장암 소장, 2009 촬영

현재 남아있는 십장생도 유물들의 구도를 살펴보면 비슷한 부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십장생도의 수요와 공급 문제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십장생도는 크기가 크고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연폭병풍은 그리는 과정뿐만 아니라 표구하는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 그래서 그리는 사람의 수가 제한적이며, 십장생도를 주문할 만한 경제적 여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 또한 소수였기 때문에 주문량도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왕이면 이 때문에 십장생도의 구도는 대개 비슷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비록 폭 수는 다르지만, 이 십장생도 초본과 비슷한 형태의 십장생도 병풍이 남아있어 이 초본을 바탕으로 완성되었을 십장생도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다.

십장생도 초본이 절로 간 까닭은?

불화 초본이 아닌 십장생도 초본이 왜 절에 있는 것일까? 지장암에 있던 누군가가 십장생도를 그린 것일까? 그러나 이 십장생도 초본을 소장하고 있던 지장암에는 그림을 그리는 스님 화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초본이 다른 곳에서 그려진 후 지장암에 옮겨져 보관되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다음 시간에는 이 십장생도 초본이 지장암에 있게 된 이유를 유추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초본을 그린 작가를 추적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십장생도를 그릴 만큼 필력이 좋으면서 사찰과 관련된 인물을 찾는 작업에 성과가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십장생도 10폭 병풍, 18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210.0×552.3cm, 리움미술관 소장,  초본 속 십장생도와 구도가 흡사하다.

▲십장생도 10폭 병풍, 18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210.0×552.3cm, 리움미술관 소장, 초본 속 십장생도와 구도가 흡사하다.

 

글 : 이다정(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저자에 관하여

월간 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