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새기는 나무의 영혼 인천무형문화재 제22호 목조각장 종안(宗眼) 이방호

인천무형문화재 제22호 목조각장 종안(宗眼) 이방호
인천무형문화재 제22호 목조각장 종안(宗眼) 이방호

움트고 뿌리 내리며 한때는 하늘을 향해 잎사귀를 흔들었던 나무다. 하지만 베이고 나면 어떻게 쓰일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이 쓸모 많은 나무의 역설적인 숙명. 불쏘시개가 될 장작더미 속에서 그런 나무들을 건져 올려 새 생명을 선사하는 손길이 있다. 목조각장 이방호 씨의 손길이 닿으면 눈빛이 형형한 사천왕도 되고, 장난꾸러기 동자도 된다. 더 많은 이들이 나무의 이로움을 이해하길 바랄 뿐이라는 소박한 소망을 품은 장인을 만났다.

나무의 물성을 가슴 깊이 이해하는 데 바친 한평생

목조각장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예술가 가운데 한사람인 미켈란젤로는 “조각이란 (원재료에서)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재료만 봐도 그 안에 어떤 상(像)이 갇혀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이 분야를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는 천재의 일화처럼 들리지만, 조각을 오래 한 사람들에게는 새삼스럽게 들리는 모양이다.
“나무를 들면 딱 느낌이 와요. 불쏘시개감인지, 조각을 해야 할지. 대체로 무슨 조각의 어떤 부분으로 써야겠다는 계산까지 합니다. 일이 인에 박히면 저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럴 거예요.”
목조각장 이방호 씨는 유난 떨 것 없다는 듯 겸손하게 말했지만, 목조각의 재료를 골라내는 일은 워낙 변수가 많다. 한 나무에서도 조각에 적합한 부분이 있고 전혀 쓸 수 없는 곳도 있어 접목기법을 사용하는 일이 잦다. 여러 조각으로 하나의 나무를 조각한 것처럼 만드는 이 방식은 통나무 하나로 조각하는 것보다 더 높은 숙련도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실제로 그가 세 조각의 나무로 완성했다는 불상을 보여주었지만, 나뭇결까지 맞춰있어 알아채기 쉽지 않았다.
나무의 성질을 이해해야 하는 목조각을 해온 지 40년이 훌쩍 넘었다. 조각도를 올바르게 쓰는 데만 3년이 걸린다고 말하는 그. 조각을 위해서라면 세계 최고라는 일본의 보수기술을 배우기 위해 4년간 타지생활을 하는 것도 마다치 않았다. 기술적인 성장과 전통조각의 계승을 고심해온 끝에 사포질 없이 오직 조각으로 탄력 있는 피부표현을 할 정도로 독보적인 기술을 갖춘 장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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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불상과 민화에 보이는 순진무구한 아름다움

조선시대 불상은 서양조각이나 일본의 불상,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불상과도 분명히 다른 미감을 갖고 있다. 골격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 부드러운 선으로 신체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원만한 상호를 통해 신성을 표현하는 일이기에 0.1㎜의 오차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의 표현대로 계속된 수련을 통해 습이 배어야만 나오는 얼굴인 것이다.
“서구의 조각은 한눈에 봐도 멋있어 보이죠. 뚜렷한 선을 강조하기 때문에 작업도 쉬운 편이고요. 고려나 백제의 불상, 일본의 불상만 하더라도 보면 누구나 예쁘다고 생각하죠. 근데 조선시대 불상은 조금 달라요. 처음 봤을 땐 이게 뭔가 싶어요. 퉁퉁한 살집에 못생겼다고도 하는 사람도 있고. 근데 계속 보면 볼수록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요. 질리지 않고 푸근하죠. 그게 바로 조선시대 불상만의 은근한 매력입니다.”
이어 그는 조선 후기 민화와 불상에서 일맥상통하는 순진무구한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민화도 세련된 그림이 아닌 투박한 그림이라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고 봐요. 누군가에게는 천대받던 민화와 조선의 불상이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위안이 되는 거지. 물론 취향 차이는 있겠지만, 그게 아니면 벌써 사라졌을 겁니다. 또, 동자상이나 나한상에서 보이는 위트 같은 것을 보면 조선인들의 해학이 보여요. 민화도 마찬가지고. 그런 것들이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우리의 정서라고 볼 수 있겠죠. 예쁜 사람보다는 매력적인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전승보다는 나무와 친해지는 법 알리는 게 우선

일섭 스님, 석정 스님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김지만 선생으로 이어지는 불상조각의 맥을 잇는 그. 이 일이 오랜 숙련기간을 요하는 탓에 계승의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제대로 조각을 하기까지 최소 10년은 걸리지만, 그 기간의 생계를 책임져주기 어려운 현실 탓에 현재는 제자들을 독립시켜 혼자 작업을 하고 있다고. 본인은 작품이 천 년, 이천 년 뒤에도 남을 수 있다는 장인 정신을 가지고 이 일을 천직이라 여기며 살지만, 제자들의 생계를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숙련기간이 길고 벌이가 시원찮은 분야일수록 외면을 받는 형국이 되는 거죠. 식구들이 먹고살 정도의 벌이는 보장해줘야 마땅한 건데. 전통이 점차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국가가 앞장서서 전통을 계승할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하면 좋겠지만, 조바심낸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라서 인연이 닿는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때까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그는 자연에 가장 가까운 재료인 나무에 사람들이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라고 했다. 나무가 몸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나무를 고르고 만지는 일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나눌 예정이라는 것이다.
“제 작업실이든, 인천시문화재전수회관이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무를 다루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간단한 전각(篆刻)부터 아이 방에 놓을 가구 만드는 법, 뭐든 제 능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무료로라도 가르치며 나무와 친해지는 문화를 조성하는 데 힘쓸 생각입니다.”
친환경 소재인 나무의 이점을 아는 이들이 늘어나는 요즘, 그의 경험과 지식이 있어야 하는 자리가 늘어날 것이다. 한편에서는 친환경이 플라스틱이나 납, 공업용 접착제 등과 같은 재료를 사용하는 편이 저렴하고 편리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우리가족이 생활하는 공간, 신도들이 예배하는 공간에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둘 수는 없는 일이지 않겠냐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말리는 기간까지 길게는 5년을 동고동락한 작품을 주문자의 품으로 떠나보낼 때면 마치 딸자식 시집보내는 기분과 같지만, 미련보다는 마음을 비우려 노력한다.
“만들어 놓는 순간에만 좋은 거지, 떠나보내고 나면 내 작품이라고 해서 더 애착 가거나 그러는 것은 없어요. 오래가면 좋겠지만, 사람도 죽고 하는데, 조각 역시 인연을 잘 만나면 천 년도 가는 거고, 화마라도 만나 다 없어진다고 해도 누굴 탓하겠어요. 그저 시집간 딸의 행복을 빌 듯, 먼발치에서 기원하는 거죠.”

 

글 : 윤나래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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