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개인전 여는 지산 김상철 작가 – 사랑처럼 자유로운 민화의 세계

지산 김상철 작가가 오는 12월 개인전을 개최한다. 창작민화부문의 큰 축을 담당하는 그답게, 이번 전시에서도
‘사랑’을 주제로 다채로운 작품들을 펼쳐보일 예정이다. 큐피트의 화살이 가닿은 민화 속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김상철 작가의 화실을 들러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8년 만의 외출, 밀린 숙제와도 같은 전시회

지산 김상철 작가가 오는 12월 19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3번째 개인전을 연다. 우리 민화화단을 이끌어 온 이른바 제1세대 작가의 하나로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해온 베테랑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8년 만에 여는 개인전을 앞두고는 사뭇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무엇보다도 일찍부터 원숙하면서도 화려하고 개성적인 작품세계로 주목을 받아온 그의 개인전에 대한 기대가 유례없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 자기표현에 극히 소극적인 그도 이번만큼은 연신 ‘부담스럽다’는 말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제자들에게 떠밀려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이에요.(웃음) 협회 일이며, 제자들 가르치기에 바쁘다 보니 작품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오랜 만에 여는 개인전이니 만큼 뭔가 새롭고 나아진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글쎄요… 급하게 준비하느라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아 걱정입니다.”
어느 정도 겸양의 표현이 섞이긴 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사실 반세기에 육박하는 지산의 기나긴 화력畵歷에 비춰 이번이 겨우 3번째 전시회라는 사실도 잘 믿어지지 않을뿐더러, 그의 높은 명성에 비해 젊은 작가들이 그의 작품 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더욱이 최근 1~2년 새에 지산과 같은 시기에 작품 활동을 해 온 상당수의 1세대 작가들이 저마다 개인전을 열어 민화화단에 큰 화제와 함께 신선한 기운을 불어 넣었다.
따라서 김상철 작가의 개인전에 대한 요구는 제자들을 중심으로 진작부터 거세지고 있었고, 일반의 기대 또한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제자들에게 떠밀려 숙제를 하는 기분’이라는 그의 표현은, 이런 점에서 과장이나 의례적인 수사가 아니다. 실제로 민화계는 그의 개인전을 오래 기다리기도 했고, 사뭇 긴장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나만의 그림’ 통해 ‘우리 민화’가 발전할 것

지산 김상철 작가는 사실 기나긴 설명이 필요치 않은 인물이다. 잠자고 있던 우리 민화의 전통을 되살려 오늘날 민화화단의 기초를 닦은 일군의 선구적인 민화작가들을 우리는 편의상 ‘1세대 민화작가’라고 부르고 있는데, 지산은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행보와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보여 온 작가의 하나이다.
우선 1986년 민화계 최초의 작가 단체로 알려진 ‘민화연우회’의 회장을 맡아 회원들과 함께 척박한 토양에 현대 민화의 씨앗을 뿌리는 데 힘썼다. 그는 민화화단의 초창기부터 비구상에 가까운 과감하면서도 강렬한 창작민화를 발표해 왔는데, 이런 점에서 요즘 민화화단의 큰 화두가 되고 있는 ‘창작민화’의 선구자, 혹은 선두주자의 하나로 주목받아온 작가인 것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민화 특유의 재치와 익살이 넘치는 동물 표현, 현대적인 색채감각, 그리고 원숙한 필력이 뒷받침된 완성도 높은 창작민화가 그의 작품 세계의 저변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 하겠다.
그의 이러한 작품 성향은 옛 그림과 똑같은 그림은 그리지 말아야겠다는 예술적 자존심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한다.
“민화의 붐이라고 불리는 요즘에도 민화 전시장엘 가면 늘 보던 똑같은 그림을 볼 수 있는데, 명색이 ‘현대민화’가 모두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창작민화의 선구자 등과 같은 수식어에도 저는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단지 작가로서 나의 개성이 담긴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을 뿐입니다. 다른 목적이 하나 있다면 민화화단의 발전을 바라는 것, 그것뿐이지요.”
김상철 작가의 이러한 작품 스타일은 그의 수많은 제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그의 가르침을 받은 많은 제자들이 저마다 개성 있는 작품을 선보이며 현대 민화화단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 나가고 있다.

제자 단체와 함께 열리는 의미깊은 앙상블

이번 전시회에 대한 관심은 ‘그의 개성 있는 작품세계가 8년이라는 세월 동안 어떻게 변모하고 성숙했는가, 혹은 어떤 주제를 담고 있을까’에 모아지고 있다. 어떤 그림들이 얼마나 전시될까?
“전시의 주제는 ‘사랑이야기’에요. 주제가 그렇다보니 다소 에로틱하게 표현된 그림도 있지요.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지만 작품을 준비하다보니 이 주제를 건드려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모두 창작민화에요. 100호짜리 그림 6개를 연결한 대형 작품을 포함해 약 20여 점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번 전시회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그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단체 ‘지산회’ 회원전도 함께 열린다. 민화계에는 스승의 아호를 이름으로 삼은 제자 그룹이 상당히 많은데, 그 중에서도 지산회는 규모와 활동 면에서 매우 돋보이는 단체이다. 특히 고정애, 민봉기, 지민선 등 창작 민화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민화화단을 주도 하고 있는 뛰어난 작가들이 다수 소속돼 있다.
지산회의 이번 회원전에는 신입 회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회원들이 창작민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지산의 영향을 받았으되, 스승을 능가하는 청출어람의 작품들이 기대되는 전시회다. 이번 회원전을 계기로 창작민화하면 지산회가 떠오를 만큼 지산회가 창작민화의 산실로서 인식되었으면 하는 것이 스승의 바람이다.
김상철 작가는 기지개를 키듯 창작민화가 활성화되는 요즘이야말로 오히려 작품을 선보이기에 더욱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창작민화를 지도하는 저부터가 배우는 이들에게 작품에 대한 이정표 역할을 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스스로 그럴 실력이 되는지 반문해보면 확신이 서질 않아요.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김상철 작가는 8년 만의 전시회를 준비하며 지난 몇 달 동안 홍역을 치르듯 참으로 진한 산고를 겪었다. 그 무거운 부담감과 맞서 싸우며 탄생시킨 새로운 작품들이 오는 12월 19일, 전시장에서 얼마나 진하고 아름다운 빛을 토해낼지 자못 기대된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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