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움 딛고 주류 화단으로 진출하기까지 民畵와 彩墨展

이야기(신 일월도), 이규완 작

*이야기(신 일월도), 이규완 작

민화는 비주류 그림이었다. 어느 공모전과 단체전에서도 민화에는 관심도 없었으며, 전시회에 함께 참여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시절, 1987년. 더구나 미술평론가가 화랑에서 ‘민화’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민화작가가 정식으로 초대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되었다!

1987년 늦은 가을, 그림출품에 대한 협조 공문이 왔다. 한국화랑 초대 <민화와 채묵-채묵의 집점 시리즈 세 번째>, 미술평론가 최병식 교수의 기획전 초대에 관한 출품 요청 공문이었다. 공문을 받아본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정을 억제하기가 어려웠다. 요즘이야 장르 구분도 없이 어느 단체전이나 공모전에서 민화가 빠지면 이상할 정도로 활성화되었지만, 당시의 사정으로 민화는 비주류 그림으로 취급되어 어느 단체전에서도 민화에는 관심도 없었으며, 전시회에 함께 참여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러니 평론가 기획으로 화랑에서 ‘민화’의 명제를 가지고 정식으로 초대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70년대 재현 민화를 그리며 화가의 꿈 키우던 시절

70~80년대 비주류 아마추어 그림으로 취급되어 변방에 머물던 민화! 필자는 67년 화가의 꿈을 가지고 아동만화를 그리는 화실에 입문하였으며, 어느 지인의 소개로 68년경 수당 강희원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동양화를 공부하게 되었다. 선생께서 그 당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나를 월급을 받으며 민화를 그릴 수 있도록 송윤안 선생님의 화실에 소개해준 것이 민화화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림쟁이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재현 민화를 그리던 70년대, 미술 화단의 풍토는 냉정했다. 민화화가들을 그저 비주류 아마추어 화가로 보았을 뿐, 민화를 정통회화로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한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일은 서글펐으며, 정신적인 고통도 많이 따랐다. 그러나 그러한 이면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민화의 특성상 길상적인 내용이 담긴 그림으로서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축수, 장수와 다산, 귀신을 쫓는 벽사적인 의미가 짙게 깔린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어서 순수미술 행위로서의 창작적 어려움이 있었다. 심지어 일부 일반인들이나 화가들조차도 민화를 무속그림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생각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지만, 민화는 한국적인 맥을 가장 뚜렷하게 계승한 미술로서 한민족 특유의 멋과 해학이 자유롭게 표현된 순수한 우리 민족의 미술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한국미술로서 인정되어 민화의 우수성을 되찾을 날이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인해 다른 장르의 화가들과는 점점 관계가 멀어져 갔다.

80년대 초, 화가의 자존감 회복 위해 여러 공모전에 도전을…
첫번째 민화-오늘의 시각과 방법전 3인(정하정, 나정태, 이규완)

▲첫번째 민화-오늘의 시각과 방법전 3인
(정하정, 나정태, 이규완)

화가로서 자존감을 찾기 위해 79년~83년 화가들의 등용문으로 여겨지던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 등 여러 공모전에 수묵화와 채색화를 그려 정신없이 출품하였다. 당시의 사정으로는 민화는 미술로 취급되지 않아 출품할 수가 없었다. 운(?)좋게 몇 번의 입상을 하는 등 화가로서의 입지를 얻을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었다. 이제는 민화인들도 당당하게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내야 할 필요성을 갖게 되었다. 민화를 그리는 친구 ‘설촌 정하정’과 함께 민화 단체를 82년경부터 조직하게 되였으며, 동료 화가, 후배, 제자들을 규합하는 등 84년 2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민화연우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생소하기만 하던 민화를 발표하기 위해 후배, 제자들과 함께 창작민화 전시를 위한 세미나도 몇 차례 개최하는 등 전시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준비하였다. 이제는 전시회를 열어줄 전시장이 필요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청년 미술관(서울대 조소과 출신 김동호) 관장님을 찾아가 민화연우회의 취지를 이야기하고 전시회를 열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얼마간 망설이던 관장님께 얼마 후 전시회를 해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

냉대받던 민화로 인사동 한복판에서 전시 하다

86년, 드디어 인사동 중앙에 있는 청년 미술관에서 민화의 명칭을 가지고 <민화연우회 창립전>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제자, 후배들과 함께 형성되어있는 민화연우회에서는 창작민화를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무리가 있었다. 민화연우회 발표 후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민화를 오늘의 시각과 방법으로 재해석한 그림들을 발표하여야 현대미술로 부각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민화-오늘의 시각과 방법전>을 추진하게 되었으며 같은 뜻을 가지고 있던 나정태 씨가 합류하면서 <민화-오늘의 시각과 방법전> 3인의 첫 번째 전시가 87년 2월 인사동 제3미술관에서 개최되었다. 그동안 하류계층의 미술로 사소한, 하찮은 미술로 취급되던 민화그림이 미술계의 수면으로 떠오르는 역사적인 변화가 일어난 순간이었다.

철옹성 같던 화단의 벽이 서서히 무너지다

1980년대 수묵 위주의 전통미술이 주류를 이루던 미술 화단에 ‘88 올림픽’ 유치를 기점으로 현대문명의 급격한 발전과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서구문명이 유입되고 서구미술의 사조가 반영되면서, 동양화단은 특히 전통과 현대의 복합적인 상관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또 전통미술에 대한 재해석 내지 자아에 대해, 이른바 한국적인 본질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서구문화와의 충돌로 80년대 수묵 위주의 미술 화단에 새로운 미술 돌파구로서 채색운동의 기류가 보이기 시작했다.
85년부터 평론가 최병식 교수가 기획하고 있는 채묵 시리즈가 매년 기획되었다. 86년 민화연우회 20여 명의 전시와 87년 중앙대학교 출신들의 20여 명 그룹전시 <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 87년 2월 제3미술관에서 열린 이규완, 나정태, 정하정의 3인전 <민화-오늘의 시각과 방법전>, 87년 서정태, 김진관, 김천영의 <세 사람의 색깔 그림전> 등 채색화 전시가 매년 개최되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채색화 전시회가 주를 이루며 80년대에는 채색화의 새 물결이 미술계 전체로 번져 나갔다. 이러한 전시회를 통해 철옹성 같던 화단의 두꺼운 장벽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88년 민화와  채묵전Ⅴ, 동아일보 기사

▲88년 민화와 채묵전Ⅴ, 동아일보 기사

88년 민화와 채묵전Ⅴ, 일간스포츠 기사

▲88년 민화와 채묵전Ⅴ, 일간스포츠 기사

민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민화와 채묵전>

88년 2월 22일~3월 7일, 한국화랑 초대 <채묵 시리즈>가 미술평론가 최병식 기획 아래 <민화와 채묵>이라는 명제를 가지고 열렸다. 정규파 화가들 16인의 전시회 속에 <민화-오늘의 시각과 방법전> 3인이 초대된 것이다. 당시의 화단 풍토로 보았을 때 그것만으로도 미술계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3인은 민화의 명제를 가지고 있는 전시회에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재현 민화가 아닌, 민화를 오늘의 시각과 방법으로 재해석한 3인의 창작민화가 16인의 작품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3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전통민화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3인의 창작민화가 새로운 변신으로 당시대를 반영하는 현대미술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듯했다.
<민화와 채묵전> 이후 민화를 비주류 미술로 취급하며 설 자리조차 내주지 않던 두꺼운 장벽 같던 미술 화단의 자존심은 설득력을 잃어갔다. 이후 88년 12월 <민화-오늘의 시각과 방법전>은 금호미술관의 초대로 한 달간 전시가 이어졌으며, 92년 자하문 미술관 초대전에 이어 수많은 기획 전시에 참여하는 등 80~90년대 미술화단에서 3인은 각자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지금도 당시 함께 활동하던 서양화나 한국화의 동료 화가들이 모이면 그때의 전시를 그리워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곤 한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민화연우회전>과 <민화-오늘의 시각과 방법전>이 성공했기에 <민화와 채묵전>이 미술평론가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연민의 정에서 오는 것일까?

지금토록 나에게 이어지는 그 숨결이…, 정하정 작
염원, 지영섭 작
작품1(문자도), 서정태 작
 
편집자의 주

비단 큰 규모의 전시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마음에 꼭 드는 전시회의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월간 <민화>에서는 전시에 참여했거나 전시를 관람했던 이의 생동감 있는 회상과 도록을 통해 전시회의 추억을 되새겨보는 지면을 마련했다. 물론 당시의 모든 감동을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시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당시의 흥취를 되살리고, 최근에 민화를 접한 이들에게는 지난 전시를 간접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기획이 될 것으로 믿는다. 월간 <민화>의 독자와 공유하고픈 추억 속 전시가 있다면 월간 <민화> 편집팀으로 제보를 바란다.

 

글 : 이규완(한국민화-국제교류협회 회장, 한국미술협회 민화분과 부위원장, 한국민화협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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