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현의 덕을 존숭尊崇하다 – 주공周公 초상 초본

이번 시간에 소개할 초본은 초상화 초본이다. 초상화 초본에 대해서는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이미 상당부분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 초본은 일반적인 초상화의 연구방식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주공周公의 초상이 많이 그려진 까닭은?

초상화 초본 중에서도 이번 시간에 소개할 초본은 주공周公을 그린 초본이다. 주공周公은 중국 주周나라를 세운 문왕文王의 아들이자 무왕武王의 동생이며, 무왕의 아들 성왕成王을 도와 주나라의 기초를 확립한 정치가였다. 그는 중국 고대의 정치·사상·문화 등 다방면에 공헌하여 유교학자에 의해 성인으로 존숭되고 있다.
조선시대 전국에 세워졌던 많은 서원과 향교에는 공자를 비롯해 유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많은 사람들의 위패와 초상이 모셔져 있었다. 이 때 주나라의 기틀을 세운 주공의 초상화가 많이 그려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주공이 기원전(약 BC. 1100년) 사람인 탓에 아무도 주공을 직접 본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를 직접 보고 그린 초상화를 구할 수도 없었다. 보지도 못한 인물을 어떻게 그린단 말인가?
다행스럽게도 주공의 얼굴을 상상해서 그린 초상화는 면면이 전해져 왔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명나라 때 왕기王圻라는 사람이 쓴 백과사전 《삼재도회三才圖會》다. 이 책에는 중국 역대 인물들의 초상화가 목판으로 새겨져 있는데, 목판본 치고는 굉장히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주공의 초상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중국 역대 인물의 초상 중 대부분은 이 《삼재도회》를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삼재도회》에 남아있는 주공의 초상과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성현 유상聖贒遺像》 속 주공 초상, 《역대고인상찬歴代古人像讃》 주공 초상, 주공 초상 초본을 나란히 비교해보면 그 생김새가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초본은 왜 얼굴만 먹으로 그렸나

이제 주공 초상 초본을 살펴보자. 왼쪽 위에 한자로 ‘周公’이라 쓰여있고, 앉아있는 인물의 전신상을 화면 가득히 그려놓았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얼굴 부분은 먹으로 수염 한 올까지 세밀하게 그려놓은 것에 비해, 몸체는 목탄으로 그린 듯 희미하게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초상화를 그릴 때 터럭 한 올도 다르게 그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당시 사람들이 왜 몸체는 대강 그려놓은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의 초상화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초상화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잘 드러나 있는 상태로 그려져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얼굴 세부 묘사를 제외한 기본적인 각도나 자세, 의복 등은 거의 동일하게 그렸다. 이 때문에 초본을 그릴 때 의복은 대강 그려놓더라도 나중에 정본을 그릴 때 세밀하게 묘사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시간에는 실물을 본 적이 없는 고대의 인물을 어떻게 그렸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초본을 통해 초상화를 그릴 때에도 ‘상상’이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 ‘상상’의 힘은 실존하지 않는 인물을 거리낌없이 그렸던 우리 민화와 일맥상통한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할 수 있다.


글 이다정(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