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정치에 대한 희구와 이상, 봉황

그림 1. 창덕궁 인정전 천장 중앙의 봉황. 화면상 왼쪽(東)의 톱니형 꼬리 깃을 가진 것이 봉, 오른쪽(西)의 넝쿨형 꼬리 깃을 가진 것이 황이다
조선 궁성의 장식 미술(2)

현철한 임금이 지극한 덕으로 백성을 다스려 나라가 태평하면 하늘은 왕의 지위와 공로를 인정하는 표시로 신이한 자연현상을 나타내 보이는데, 이것을 상서祥瑞라 한다. 여러 가지 상서 현상 중에서 최고 등급으로 꼽히는 것이 봉황의 출현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궁궐을 봉궐, 궐문을 봉문이라 했고, 임금이 타는 수레를 봉거, 가마를 봉여라 불렀다. 또한 왕권의 무궁한 발전을 송축하는 노래를 봉황음, 그 무용과 음악을 봉래의라 이름 지었다. 그뿐만 아니라 궁궐 도처에 봉황장식을 베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모든 현상의 배후에는 선정덕치善政德治에 대한 희구希求와 이상이 자리 잡고 있다.

1. 덕치德治와 상서

하늘은 도道의 본원이자 만물을 생육하여 한없는 은혜를 베푸는 존재이며, 동시에 지고의 권위자다. 때문에 옛사람들은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을 인간의 도리로 생각했다. 하늘의 뜻과 함께하는 마음이 덕이고, 하늘의 뜻에 따르는 대인 관계가 덕행이며, 하늘의 뜻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바로 덕치다. 이러한 ‘하늘’과 ‘덕’을 기초로 한 개인과 사회가 바로 이상국가의 요건이 된다.
하늘은 말하지는 않지만 임금을 가르치거나 칭송하거나 꾸짖는데, 이때 어떤 예사롭지 않은 천문 현상을 보이거나 신령한 동물을 출현시킨다. 그래서 역대 왕들은 신이하고 희귀한 자연 현상이 나타나면 그것을 자신의 정치에 대한 하늘의 응답으로 여기고 그것이 내포한 의미를 해석하는 데에 골몰했다. 흉凶한 것으로 밝혀지면 반성과 근신의 계기로 삼았고, 길吉한 것이면 자신의 덕치에 대한 칭송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상서에는 가서嘉瑞·대서大瑞·상서上瑞·중서中瑞·하서下瑞 등 다섯 종류가 있다. 이 중에서 봉황·기린·신귀·용·백호 등 오령五靈이 출현하는 것을 가서라 하는데, 고대인들은 가서를 최상의 상서로 꼽았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실제로 원주 치악산에 기린이 나타나는 상서가 있었다고 한다. 머리와 꼬리는 말과 같고 소의 눈에 발굽은 둥글고, 크기는 세 살 난 송아지만 하고 이마 위에는 길이가 두서너 치쯤 되는 털 사이에 뿔이 숨겨져 있었다는 등 실체처럼 묘사했다(《조선왕조실록》 〈정조 17년 12월 3일〉 조 참조).
공자 이래로 유가儒家들은 요·순 시대를 이상적인 정치가 실현된 시대로 떠받들어 왔다. 유교를 정치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의 왕에게 있어서도 요임금과 순임금은 성군聖君의 표상이었고. 요·순 시절은 덕치가 실현된 가장 이상적인 사회였다. 요·순과 그 시절에 대해 기록한 《서경書經》 등 관련 고전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대강 이러하다.

두 임금이 기쁨을 한 번 나타내면 그 화락함이 봄바람 같았고, 한번 낸 어진 마음은 비와 이슬에 젖은 대지처럼 윤택했다. 덕으로써 나라를 다스려 하늘과 땅이 절로 조화를 이루니, 봉황이 궁궐 뜰에 내려와 소소簫韶(순 임금이 지은 음악)에 맞춰 춤추면서 궁궐을 떠날 줄을 몰랐다. 백성들은 근심, 걱정 없는 행복을 누리면서도 그것이 임금의 덕인 줄을 알지 못했다.

일찍이 공자는 “봉황도 오지 않고 황하에서 도문圖紋도 나오지 않으니 다 틀렸다(《논어》 〈자한〉)”라고 하면서 난세를 한탄한 적이 있다. 여기서 봉황은 성군聖君을 가리키는 것이고, 도문은 성왕이 등장하면 나온다는 황하의 하도河圖를 의미한다. 한편, 《예기》 〈예운〉에서는 용·봉황·기린·거북을 일러 사령四靈이라 했다. 봉황은 이처럼 용, 거북, 기린과 함께 오랜 세월 동안 존귀한 성품을 가진 신령스러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이런 여러 가지 연유로 봉황은 요·순의 성세聖世를 연상케 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물이 되었다. 조선의 임금과 신하들은 그들의 치세가 요·순의 시대처럼 되기를 희망해 마지않았다. 그런 희망과 기원이 언어로써 표현된 것이 ‘봉궐鳳闕’이고 ‘봉황음鳳凰吟’이고 ‘봉거鳳車’이며, 미술적 표현형식을 빌린 것이 궁궐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봉황 장식인 것이다.

2. 봉황

봉황은 암수를 통칭하는 이름으로, 수컷이 봉鳳 암컷이 황凰이다. 붕鵬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봉황이 날아오르면 뭇 새들이 따라나선다고 해서다. 봉황은 다섯 가지 상자문像字紋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머리의 것은 덕德, 날개의 것은 순順, 등의 것은 의義, 배의 것은 신信, 가슴의 것은 인仁을 상징한다(《산해경》 도찬). 봉황의 외형적 특징은 머리는 닭, 턱은 제비, 목은 뱀, 등은 거북이, 꼬리는 물고기를 닮았고 키는 6척 정도다(《이아》 〈석조〉 곽박 주).
봉황의 행동과 습성은 가히 환상적이다. 동방의 군자 나라에서 나와 사해四海 밖을 날아 곤륜산을 지나 깃털도 가라앉는다는 약수弱水에 깃을 씻고, 천 년 이상 된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는다. 성질이 순결하여 새벽이슬이 아니면 마시지 않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좁쌀 따위는 먹지 않는다. 먹고 마시는 것이 자연의 절도에 맞고 절로 춤추며 노래하는데, 그 소리가 소簫의 소리와 같다.

3. 봉황 문양의 몇 가지 표현 형식

봉황 문양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처음 나타난다. 그 전통은 조선시대로 이어져 궁궐 건축, 왕실 소용의 공예품, 복식 등 다양한 방면에 적용되었다. 현존 유물을 대상으로 할 때 봉황 문양을 몇 가지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개체 수에 따라 쌍봉형, 단봉형, 그리고 군봉형群鳳形으로 분류할 수 있다. 궁궐 건축 장식에서는 단봉형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쌍봉형과 군봉형이 주류를 이룬다. 꼬리 깃 모양을 기준으로 하면, 잔털이 없는 만곡형彎曲形, 톱니처럼 생긴 톱니형, 그리고 장식성이 강한 넝쿨형 등으로 분류된다.
암수에 따라 꼬리 깃 모양에 차이를 보이는데, 수컷인 봉은 꼬리 깃이 톱니형으로 된 것이 많고, 암컷인 황은 넝쿨형이 많다. 한편 좌우 배치 구도로 보면 기본적으로 왼쪽(향해서 오른쪽)에 봉이, 오른쪽(향해서 왼쪽)에 황이 배치된다. 이와 같은 배치 패턴은 오랜 시간을 통해 정형화된 것으로 보인다.
봉을 왼쪽에, 황을 오른쪽에 배치하는 것은 음양론과 결합된 전통 방위관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통 방위관념에서 좌우는 남북 축선상에서 남면南面한 지점이 방위의 기준이 된다. 이에 따라 동쪽이 왼쪽이 되고 서쪽이 오른쪽이 된다. 동쪽은 양이고 서쪽은 음이므로 수컷인 봉을 왼쪽에, 암컷인 황을 오른쪽에 배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하 구도에 있어서는 위쪽에 수컷, 아래쪽에 암컷을 배치하는데 이것은 천양지음天陽地陰의 이치를 따른 것이다.

4. 궁궐 정전의 봉황 장식

정전은 임금이 조하朝賀을 받고, 정령을 반포하고, 외국의 사신을 맞이하는 등의 국가적 행사가 벌어지는 곳으로, 궁궐에서 위상이 가장 높은 건물이다.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 덕수궁 중화전이 이에 해당한다. 근정전과 중화전에는 용이, 인정전과 명정전에는 봉황이 주류를 이룬다. 인정전과 명정전에 봉황 장식이 특별히 많은 이유는 이 두 궁궐이 동궐東闕로 설정돼 있고, 봉황이 사는 오동나무가 동쪽 언덕에 있다는 《서경》의 내용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먼저 인정전의 경우를 보자. 우물천장 중앙에 설치된 부당가浮唐家(보개寶蓋) 안에 두 날개를 활짝 편 한 쌍의 봉황이 구름 속을 날고 있다. 이 봉황은 궐내의 어떤 봉황장식보다 막중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봉황은 황금색을 띠고 있으며, 구름은 오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봉황과 오색구름을 나무로 조각하여 철사 줄로 천장에 매다는 수법을 사용하여 오색구름 사이를 나는 봉황의 모습을 핍진히 묘사했다. 배치구도는 꼬리 깃이 톱니형인 봉을 왼쪽(東)에, 넝쿨형인 황을 오른쪽(西)에 배치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봉鳳-좌左-동東-양陽, 황凰-우右-서西-음陰의 이치를 따랐다.
봉황은 어좌 위의 작은 집인 당가唐家의 천판에서도 발견된다. 한 쌍의 봉황이 장식돼 있는데, 규모는 작으나 봉과 황의 모습과 배치구도는 천장 중앙의 것과 같다. 인정전에는 이들 말고도 우물천장 격간마다 봉황이 촘촘히 그려져 있다. 한 마디로 인정전은 요·순의 궁궐을 방불케 하는 법전으로 탈바꿈해 있는 것이다.
창경궁 명정전 천장에서도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기계적인 대칭구도를 벗어나 자유롭게 춤추며 채운彩雲 속을 나는 봉황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기실 봉황이 가진 상서의 기운은 춤출 때 극대화된다. 봉황을 나는 모습이 아니라 춤추는 모습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런 이유와 무관치 않다고 믿어진다. 《서경》에서도 봉황을 춤추는 모습으로 묘사하였고, 옛 사람들이 ‘봉비鳳飛’보다 ‘봉무鳳舞’라는 관용어로 주로 사용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용비龍飛’라는 말은 있어도 ‘용무龍舞’라는 말은 없다. 용은 날기만 할 뿐 춤추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봉황은 날기도 하고 춤도 춘다. 날면서 추는 춤은 환희의 감동과 불사의 생명력을 최고조로 발산하는 몸짓이다. 명정전 천장의 춤추는 봉황은 바로 그런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 명정전 당가 천판에도 봉황이 장식돼 있다. 인정전 당가 천판의 봉황과 비교할 때 날개 부분이 다소 넓은 것을 빼고는 전체적으로 대동소이하다.

그림 1. 창덕궁 인정전 천장 중앙의 봉황. 화면상 왼쪽(東)의 톱니형 꼬리 깃을 가진 것이 봉, 오른쪽(西)의  넝쿨형 꼬리 깃을 가진 것이 황이다
그림 2. 창덕궁 인정전 당가 천판의 봉황. 화면상 왼쪽(東)의 톱니형 꼬리 깃을 가진 것이 봉,  오른쪽(西)의 넝쿨형 꼬리 깃을 가진 것이 황이다
그림 3 . 창경궁 명정전 천장 부당가의 봉황
그림 4. 창경궁 명정전 당가 천판의 봉황
 
5. 답도의 봉황 장식

답도踏道는 정전 월대 정면계단의 중앙에 있다. 월대 아래 넓은 마당은 만조백관이 임금을 우러러 조회하는 곳이고, 답도 위쪽은 임금이 군림하는 곳이다. 이런 상징성이 큰 곳에 장식될 수 있는 문양은 일국의 문물제도와 정치적 이상을 나타낼 수 있는 상징성이 큰 것이라야 한다. 그러한 안목에서 나온 문양이 바로 한 쌍의 봉황문양인 것이다. 답도의 봉황은 어진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리고[仁政殿], 진리의 본원을 궁구하여 밝은 정치[明政殿]를 실현하려 했던 조선 임금의 덕성과 지위를 하늘이 인정한 징표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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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희정당과 대조전 봉황 장식

일제강점기에 왕권의 상징이던 창덕궁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면서 권위를 잃었고, 요·순의 이상을 이 땅에 펼치려 했던 조선 임금의 포부는 역사에 묻히고 말았다. 왕권을 상실한 순종이 창덕궁 이왕으로 불리면서 생활을 한 곳이 바로 희정당이다, 봉황 장식을 지금도 볼 수 있지만 이것은 일제가 순종을 위해 꾸민 것이다. 서양식 궁정 취향과 왜색 짙은 봉황 장식은 이미 덕치와 상서라는 고유의 상징성을 잃고 단순한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대조전 또한 일제가 경복궁 교태전을 해체한 재목으로 지은 왕과 왕비의 침전이다. 이곳에도 목조 봉황이 벽면에 장식되어 있으나 과도한 기교에 가려 봉황의 심오한 상징성을 잃고 말았다.
상징물은 여러 사람들이 그것이 가진 의미에 공감하고 인식을 공유할 때 비로소 존재 가치가 확보된다. 그러므로 깊고 고유한 상징성을 가진 것이라 해도 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인식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그것은 단순한 데코레이션일 뿐이다.

그림 8. 희정당 봉황

(그림 8. 희정당 봉황)

그림 9. 대조전 봉황

(그림 9. 대조전 봉황)

 

상징물은 그 실체가 크지 않아도 의미가 드러나고, 드러나면 그 의미가 새삼 깊어진다. 또한, 상징물은 그 위치나 용처가 어디냐에 따라 뜻이 더욱 강조되기도, 간과되기도 한다. 궁궐은 국왕이 정사를 살피고 왕족이 생활하는 곳이다. 정전이나 계단 등 중요 위치에서 날거나 춤추는 봉황은 덕치의 세상이 이미 도래했음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 궁궐 봉황 장식은 하늘의 뜻에 따라 백성을 다스린 조선 임금의 덕성과 지위를 인정하여 하늘이 내린 상서의 징표인 셈이다.

 

글 :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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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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