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희 문화캐스터가 전하는 전승공예의 가치 ㉓ 작가 이승철

현대 미학으로 재해석한 한지韓紙를 만나다

이승철 작가의 한지를 향한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을, 자리가 아닌 역량을, 넓이가 아닌 깊이를, 고립이 아닌 독립을 추구한 삶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는 한지가 갖는 물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고, 경험을 정리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한지 안에 담긴 공예와 한국문화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 다가오는 2023년, 대대적인 해외 순회전을 앞두고 있는 이승철 작가를 만났다.

글 서주희 (문화캐스터) 사진 서주희, 신빛


한국인은 한국인의 생활 속에서 만난 여러 가지 도구나 사물을 통해 한국인만의 문화유전자를 만들어왔다. 사전적인 의미로 문화文化란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 정신적 과정의 산물을 말한다. 중국 최초의 문자학 서적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하면 문文은 교차해서 그리는 것이고 화化는 가르침이 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의 라틴어 ‘Cultra’에서 파생된 ‘Culture’는 ‘가꾸다’, ‘배양하다’라고 명명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문화를 ‘Kultur(쿨투어)’라고 명명하고 농작물을 경작한다는 뜻에서 변화되어 ‘한 시대의 한 민족의 정신과 성과’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삶 속의 문화적 힘은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담아 인간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공예工藝를 통해 척박한 환경에서 눈부신 발전과 풍요로운 삶을 살아올 수 있는 원동력을 얻으며 자연스레 생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이들이 공예와 함께 하는 삶을 지향하고, 이를 위해 자연 그리고 물질과 대화를 시도한다. 다시 말해, 공예적인 삶이란 축적된 기술, 물질(재료)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력이 뒤따르는 행위이며 더 나아가 자국의 문화를 잘 파악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문화의 변용을 이끌어내기 위한 선한 욕망을 말한다.
이러한 배경을 삶의 지표로 삼아 우리나라에서 오랜 시간 한국의 종이 ‘한지’를 연구해온 이승철 작가는 전통재료인 한지를 현대 미학으로 재해석하는 데 힘써온 작가다. 다가오는 2023년 주이탈리아 로마 한국문화원을 시작(2023년 2월 22일~4월 14일)으로 유럽과 미국 순회전을 앞두고 있는 이승철 작가를 만나 한지를 향한 그의 선구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오랜 시간 묵묵히 해온 일

인생의 반평생을 전통재료인 한지를 현대 미학으로 재해석하는 데 힘써온 이승철 작가가 한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학창시절 그림에 영향을 주는 재료의 변화에 관심이 생기면서부터다.
“동양화를 공부하면서 그림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재료들과 그 재료들이 변화하는 과정에 관심이 많았어요. 무엇보다 그 재료 안에 한국의 전통 색을 담는 것에 관심이 많아 자연염색도 공부하게 되었고요. 그저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밑바탕이 되는 재료들을 잘 알고 사용하기 위해 시작한 일인 셈이죠.”
한지를 향한 그의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을, 자리가 아닌 역량을, 넓이가 아닌 깊이를, 고립이 아닌 독립을 추구한 삶이라 말할 수 있다. 시대가 변화 발전하면서 ‘전통공예’와 ‘현대공예’라는 공예의 이분법적 논리가 전제된 사회체계 속에서 그는 한지가 갖는 물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고, 경험을 정리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한지 안에 담긴 공예와 한국문화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한국문화에서 인간의 손길이 가장 많이 닿았던 물건인 ‘반닫이’를 한지로 재해석해 ‘한지 부조 반닫이’라는 이름으로 한국문화의 새로운 변용을 이끌어냈다.
한국인의 삶의 행적에 관심을 갖고 그 삶의 행적을 오롯이 담아낸 물건이 ‘반닫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그는 전통소재인 ‘한지’를 활용해 한국의 반닫이를 현대 미학으로 재해석해 ‘K-Culture’가 지속화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과거는 결코 현재와 단절되어 있지 않고 미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미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한지반닫이에 떡살을 이용해 전통문양을 찍어내고 있다.



자연염색한 한지를 정해진 틀에 담고 있다.



2017년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열린 ‘내일을 위한 과거의 종이’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한지에 관해 발표하고 있는 이승철 작가


한지의 다양성을 말하다

소나무를 비롯해 오동나무, 비목碑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무의 통판으로 궤짝처럼 네모나게 짜인 ‘반닫이’는 오직 간결한 기하학적 직선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 그것을 수식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듬직하다’는 말뿐이다. ‘듬직하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무엇이 안에 가득 들어 있음직하다’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해, 속이 비어있지 않고 차 있는 것, 그래서 묵직한 부피를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듬직하다는 어원일 것이다. 듬직하다는 반닫이의 어원을 꼭 닮은 이승철 작가는 우리 옛 어머니의 포근한 품속, 그것을 연장하고 확장한 것이 반닫이라는 것을 깨닫고 오방색을 근간으로 하는 우리의 ‘소색’과 함께 더 나아가 오방간색의 아름다움까지 ‘반닫이 한지 부조’에 담아내 한국 미학의 정수를 이끌어냈다. 뿐만 아니라 달항아리와 부처상, 예수상, 성모마리아상 등 다양한 오브제(objet)를 한지의 물성에 담아내 한지의 다양한 면모를 표현했다.




“반닫이는 우리 삶의 현상과 그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을 담아서 우리와 함께 숨 쉬고 공존하며 살았던 물건입니다. 다시 말해, 반닫이는 신분이나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지역의 나무와 지역민들의 삶의 양식을 오롯이 담아낸 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이승철 작가의 작가 노트 中








한지의 세계화를 꿈꾸며

국내에서도 다수의 전시회를 통해 한지의 위상을 알린 이승철 작가는 해외 무대에서도 한지를 화두로 삼아 한지의 다양성과 발전 방향에 대해 발표한 바 있다. 지난 2016년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 프랑스 파리 국제 예술공동체 기획(Cite internationale des arts)에서 열린 , 2017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린 <내일을 위한 과거의 종이, Un papier d’hier pour demain>, 2018년 이탈리아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 중앙연구소(ICPAL)에서 열린 <색의 신비- 동.서양의 비교, Le mystère des couleurs : comparaison entre Orient et Occident)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한지와 자연염색 기법을 유럽 시장에 소개해 작가로서 명성을 떨친 바 있다.
지금 이 시대의 한국문화는 동서양의 문화가 적절하게 짜깁기된, 일명 ‘패치워크(patchwork) 문화’라 말할 수 있다. 문화적 번영을 꿈꾸며 ‘문화융성’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지만 모든 문화는 내적 성찰과 창조적인 작업 없이 피어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가 K-POP을 통해 신한류로 발전하고, 나아가 한국문화 전반으로 확대되어 한국문화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요즘이지만 정작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문화 속에 한국 고유의 문화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승철 작가의 한지 부조 작품을 통해 한국문화의 가치와 창조적 변용의 생생한 숨결을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를 바라며 아울러 한지유네스코세계 유산 등재 추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 시점에 한지를 향한 그의 투혼鬪魂이 교두보가 되기를 바란다.

서주희 | 문화캐스터/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대학 겸임교수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유산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6년부터 국립무형유산원의 무형문화재 대담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해왔으며
KBS World Radio(국제 방송)를 통해 해외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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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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