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희 문화캐스터가 전하는 전승공예의 가치 ㉑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 임선빈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 임선빈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를 만나다

소리 낼 수 있는 모든 것은 악기가 된다. 그 악기는 사람의 마음뿐 아니라 때로는 하늘에 닿아 영혼을 위로한다.
이 땅의 돌과 바위, 나무와 동물의 가죽, 흙, 그리고 여러 금속 등 이 모든 것이 악기를 만들기 위한 재료가 된다.
보이지 않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위해 60여 년이 넘게 북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임선빈 악기장을 만났다.

글·사진 서주희 (문화캐스터)


“음악이란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깃든 것이며, 허虛에서 발하여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피와 맥박을 뛰게 하며 정신을 유통케 하는 것이다.”
조선 성종 때 편찬한 국악 이론서 《악학궤범》 서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하늘로부터 발하여 사람에게 스미고, 빈 곳에서 나와 자연에서 이뤄지는 것. 그런 까닭에 그 음악은 거대한 힘으로도 꿈적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음악의 위대한 힘이다.
음악을 만드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은 목소리를 통해, 악기를 통해, 사람의 몸을 통해 표출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리 낼 수 있는 모든 것은 악기가 된다. 그 악기는 사람의 마음뿐 아니라 때로는 하늘에 닿아 영혼을 위로한다. 이 땅의 돌과 바위, 나무와 동물의 가죽, 흙, 그리고 여러 금속 등 이 모든 것이 악기를 만들기 위한 재료가 된다.
인류가 역사를 이어온 이래 수많은 악기가 만들어졌다. 전 세계 각지에서 나는 재료로 그 민족의 특성을 잘 반영하는 악기를 제작했고, 민족적 감수성을 잘 보듬어 안은 악기들은 각자의 특성에 맞게 연주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악기 또한 이 땅에서 나는 재료들로 만든 것이 있는가 하면, 다른 나라에서 이 땅에 들어와 토착화된 것도 있다.
우리나라 악기를 재료에 따라 분류하자면 ‘8음八音’으로 나눌 수 있다. 금金(쇠붙이), 석石(돌), 사絲(실), 죽竹(대나무), 포匏(바가지). 토土(흙), 혁革(가죽), 목木(나무)이 그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재료 가운데 동물의 가죽으로 울림통을 만드는 ‘북’은 인류가 발명한 악기 중 가장 오래된 악기다. ‘북’의 소리는 사람의 말소리와 같고 사람의 심장 소리와 같다고 한다. 소리치는 고함이 그렇고 심장이 맥박 치는 고동 소리가 그렇다. 말소리와 심장의 맥박소리를 북소리에 비유한 것은 아마도 북소리 자체를 생명의 소리로 인식한 옛 선조들의 지혜에서 비롯된 말일 것이다. 이처럼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 전통 북에 대한 가치가 저렴한 중국제품에 밀려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위해 60여 년이 넘게 북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임선빈 악기장을 만났다.


완성된 대북에 문양을 그려넣고 있는 임선빈 악기장


넝마주이에서 악기장이 되기까지

임선빈 악기장은 청력을 잃었음에도 소리가 주는 손끝의 느낌과 울림을 기반으로 북을 만든다. 다시 말해, 몸으로 느껴지는 진동음에 의지해 음을 느낀다는 것이다. 충청북도 청주가 고향인 그는 열 살 무렵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홀로 서울로 상경해 넝마주이 생활을 하며 떠돌게 되었다. 소아마비를 앓았던 그는 함께 다니던 형들에게 놀림의 대상이었기에 그들에게 얻어맞아 오른쪽 귀의 청력을 잃게 되었다. 그런 생활을 더 이상 참지 못한 그는 무작정 호남행 기차를 탔고 도착한 곳이 전라남도 여수였다. 굶주림에 지친 그를 거둔 사람은 당시 북 공예의 대가 故 황용옥 선생이었다.
“황 선생님이 대구 공방에 따라가 북 만드는 것을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무작정 따라나섰죠.”
그의 나이 열한 살에 그렇게 북과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어린 나이에 북 만드는 일을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북 만드는 일을 시작하고 17년 뒤 스승인 황용옥 선생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다시 외톨이가 되었다.
“머리를 깎고 대구 팔공산의 한 절을 찾아갔어요. 배고픔, 그리고 몸이 불편하니까 사는 게 힘들어서 스님이 되려고 갔어요.”
스님이 되려고 찾아간 절에서 그는 스승의 가르침, 그리고 북 만드는 일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승의 친구를 찾아가 그의 곁에서 다시 북 만들기에 전념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어릴 적 오른쪽 귀의 청력을 잃은 데다 청각이 남은 왼쪽 귀마저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북을 두드리고 소리를 감지하니까 보청기의 도움 없이는 듣지 못해요.”
귀로 듣는 것보다 온몸으로 듣는 게 음을 더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그는 오히려 청력을 잃게 된 것을 축복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큰 북이나 법고를 만들 때는 그나마 소리를 모아주는 보청기를 빼버려요. 주변 잡음이 잘 안들리니까 집중이 더 잘 돼요.”


(위) 임선빈 악기장과 임동국 전승교육사 / (아래) 임선빈 악기장과 아들 임동국 전승교육사


아버지의 뒤를 잇는 아들

“자라면서 늘 보고 배운 게 아버지의 북 만드는 모습이었어요.”
장인의 하나뿐인 아들 임동국 전승교육사는 고등학교 시절 전도유망한 유도선수였지만 무릎 부상을 당한 뒤 어릴 적부터 늘 보아왔던 아버지의 일을 이어 받기로 결심하고 아버지의 손과 발이 되어 묵묵히 북 만드는 일을 해오고 있다.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대신해 주문받는 일도 제 몫이었고, 큰 북을 배달하는 일도 늘 제가 해야 했기에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일이 제 일이 된 거예요.”
좋은 북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소나무와 좋은 가죽 중에서도 황소가죽이 제격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죽과 나무 구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고 한다. 북의 몸통을 만드는 데는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소나무를 최고로 여기는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큰 소나무를 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오동나무를 사용하기도 한다.
“좋은 황소가죽을 구하기 위해 전국 도축장을 다니면서 농사용으로 일했던 소를 찾아다니기도 했어요. 그렇게 구한 가죽은 적절한 관리 방식을 통해 수개월 또는 수년씩 자연 건조시키죠.”
특히 가죽의 털을 벗길 때는 화공약품을 사용하면 제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에 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일일이 털을 손으로 제거한다. 그리고 가죽의 두께를 맞추고 건조하는 데 온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아들 임동국 전승교육사는 북을 만들며 가장 어려운 점이 바로 이 과정을 지켜보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북을 만드는 일은 돈이 아닌 시간을 들여야만 하는 일이에요. 그 시간 동안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한다는 소리죠.”
다시 말해, 조급해서는 안 되고 늘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만큼 해놓아야만 전 과정이 맞물려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을 비롯한 악기를 만드는 장인을 가리켜 족히 10년을 내다보고서 매일의 몫만큼 차곡차곡 쌓아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1 보통 소리북을 만들 때는 황소의 엉덩이와 목 가죽을 사용한다. 그리고 대북 또는 사물놀이용 북은 두께가 두꺼운 소의 등과 뱃가죽을 사용한다.
2 북 제작에 사용될 황소가죽을 햇볕에 말리고 있다.
3 북제작에 사용될 오동나무를 햇볕에 말리고 있다.
4 장인이 만든 소리북
5 안양시민의 북
6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막식에 선보여진 대북


이름 석 자가 세상에 알려지기 까지

장인의 이름 석 자가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북이라고 알려진 ‘안양시민의 북’ 때문이다. 2년 6개월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높이 220㎝, 울림판 240㎝, 둘레 820㎝, 무게 650kg의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북이다. 그 밖에도 88서울올림픽 북, 청와대 춘추관 북, 백담사 법고, 대전엑스포 기념 북을 비롯해 201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회식의 대북까지 모두 장인의 손에서 나왔다. 뿐만 아니라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회식 때 선보여진 대북의 제작과정은 다큐멘터리 영화 <울림의 탄생>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영화제작이 3년 정도 걸린 거 같아요. 북의 제작과정을 보여주면서 아버지와 저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죠.”
우리나라에서 전통문화를 잇는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아버지 임선빈 악기장에게도 아들 임동국 전승교육사에게도 많은 결심과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는 일이다. 이 시대의 악기장에게 손의 감각을 키워 기술을 익히는 것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지혜가 잘 전달되도록 정리해 두는 일이다.
“아버지와 함께 북을 만들어오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전통을 이어간다는 자부심 때문이었어요. 아버지가 쌓아온 업적을 넘어서 북의 새로운 가치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보이지 않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위해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아버지가 그랬듯 묵묵히 혼신의 힘을 다해 북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이 두 부자의 노력이 부디 헛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9월 26일, 임선빈 악기장은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서주희 | 문화캐스터/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대학 겸임교수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유산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6년부터 국립무형유산원의 무형문화재 대담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해왔으며
KBS World Radio(국제 방송)를 통해 해외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있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