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희 문화캐스터가 전하는 전승공예의 가치 ⑲ 국가무형문화재 제 4호 갓일 양태장涼太匠 장순자

양태장 장순자


제주의 관모공예, 양태涼太를 만나다

조선시대 제주 부녀자들이 양태를 엮어서 짜는 일을 주요 부업으로 삼았고 그 작업이 활발해져 ‘양태청’이라는 마을 내 공동 작업공간까지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1964년 우리나라 공예 분야 가운데 제일 먼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분야인 갓일, 양태장의 길을 걷고 있는 장순자 장인을 만났다.

글·사진 서주희 (문화캐스터)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드라마 <킹덤>이 외국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우리 민족이 만든 고유한 모자 ‘갓’이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세계적인 쇼핑몰 아마존닷컴에서는 ‘한국 전통 모자’ 또는 ‘한국 드라마 <킹덤> 모자’라는 키워드로 우리의 갓을 거래한다. 갓은 이제 세계적인 글로벌 아이템이지만 정작 자국민인 우리에게는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과거의 물건으로 남아 있다.
갓은 고려시대 공민왕이 관모로 제정하면서 신분이나 관직을 나타내며 널리 쓰이게 된 모자다. 옛 사람들은 흔히 입자笠子라 불렀으며 중국에서는 두면頭面이라 불렀다.
갓을 제작하는 공정은 크게 세 가지 기능으로 구분한다. 먼저 대나무를 잘게 쪼개 얽어서 햇빛 가리개 부분(차양)을 얽어내는 ‘양태장’과 컵을 뒤집어 놓은 형태의 갓모자(갓대우) 부분을 말 꼬리털(말총)로 만드는 ‘총모자장’, 그리고 양태와 총모자 둘을 조립하는 ‘입자장’ 이렇게 세 분야를 거쳐야 비로소 하나의 ‘갓’이 완성된다.
전통적으로 제주에서 총모자와 양태를 만들면 통영이나 거제에 있는 입자장들이 이것을 하나의 갓으로 완성시켰다. 양태의 ‘양’은 시원하다는 뜻의 ‘양凉’과 크다는 뜻의 ‘태太’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용어다. 옛날에는 총모자와 양태 모두 대나무를 실처럼 가늘게 자른 죽사竹絲로 만들었는데, 총모자인 머리 부분이 쉽게 망가져서 총모자만 유연성 있는 말총(말 꼬리털)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지난 2010년 방영된 KBS 드라마 <거상 김만덕>에서 김만덕이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양태 기술자들을 주변으로 모아 타 지역으로 공급망을 넓히며 거상으로서 기반을 다지는 장면이 있었다. 상인으로서 김만덕의 역량을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제주의 양태가 지역산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방증인 셈이다. 조선시대 제주 부녀자들이 양태를 엮어서 짜는 일을 주요 부업으로 삼았고 그 작업이 활발해져 ‘양태청’이라는 마을 내 공동 작업공간까지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1964년 우리나라 공예 분야 가운데 제일 먼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분야인 갓일, 양태장의 길을 걷고 있는 장순자 장인을 만났다.

(위) 장순자 장인과 딸 양금미 이수자 / (아래) 1대 양태장 故고정생 장인과 장순자 장인

대나무 장사에서 양태장이 되기까지

외할머니(강군일)와 어머니(우리나라 1대 양태장 고정생)의 대를 이어 양태장이 되기까지 장순자 장인은 요동치는 제주바람과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 일을 어깨너머로 배웠던 그가 처음 시작한 일은 전라남도 담양과 제주를 오가며 양태의 재료인 대나무를 공급해 파는 일이었다.
“외할망부터 울 엄마 그리고 나까지 나이만 합쳐도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 온 거야. 내가 10년을 제주의 양태 짜는 할망들에게 대나무를 공급했어. ê·¸ 할망들 다 돌아가고 대가 끊기게 생겨서… 그래서 늦은 나이게 시작하게 된 거야.”
어머니 고정생(1907~1992) 선생이 국가무형문화재 제1대 양태장으로 지정되면서 그의 나이 마흔두 살 때 본격적으로 양태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돈도 안 되는 이 일에 선뜻 나서는 사람도 없었지. 그런데도 우리 어머닌 양태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셨어.”
여섯 살 무렵부터 양태 일을 배운 그의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이 “너랑 죽거들랑 손 하나만큼은 무덤 밖에 내놓고 죽으라”고 할 만큼 양태 짜는 솜씨가 좋았다고 한다. 제주 4.3사건으로 큰 아들이 세상을 떠나 큰 충격에 휩싸였을 때도 손에서 양태 짜는 일을 놓지 않은 어머니였다. 자식을 잃은 슬픔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그녀의 어머니는 어쩌면 더욱 양태 일에 매달린 것인지도 모른다. 손톱으로 대나무 마디마디의 눈금을 짚어가며 엄격하게 양태 일을 가르쳐 주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3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어머니가 지냈던 방에서 어머니를 떠올리며 연습했다. 홀로 고군분투하며 양태를 엮어온 지난 세월은 대나무에서 나오는 독으로 생긴 거칠어진 그의 손이 대신 말해주었다.
“대나무를 5시간 동안 찌고 말려서 20시간 동안 물에 담그고, 다시 가마솥에 찌고… 또 대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손톱으로 가늘게 대나무 살을 뽑아내 하나하나 엮는 과정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하니까… 어떤 날엔 너무 힘이 들어 태어난 걸 후회한 적도 있었어.”
누군가는 해야만 했고, 양태를 이어받을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에 한 때 삶을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게다가 다른 장인들보다 마흔두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시작한 탓에 외할머니에 이어 어머니의 대를 잇는 일은 그야말로 녹록지 않은 고난의 시간이었다.

① 대나무 안쪽의 연한 부분을 깎아 내고 가마솥에 쪄 잘 말린 대나무 대를 20시간 정도 물에 담근다.
② 물에 불린 대나무 살을 0.1센티가량으로 가늘게 쪼갠다.
③ 대나무를 실처럼 가늘게 쪼갠 죽사竹絲
④ 양태 짜기
⑤ 양태 한개를 만들기 까지 10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⑥ 장인이 만든 태극양태 / ⑦ 어머니가 물려주신 칼 / ⑧ 양태판

대나무로 실을 만들어 짜는 갓 양태

갓 제작은 하나의 공정이 아니라 여러 공정을 아우르는 종합 기능이다. 앞서서도 이야기했듯 하나의 갓은 양태장, 총모자장, 입자장까지 세 장인의 기능을 모아 이루어지는 예술품이다. 갓모자는 말총으로 만드는 데 비하여 갓 양태는 섬세한 죽세공의 기능이다. 원래 제주도는 말을 많이 길러서 말총의 산지로 알려졌지만 갓 양태는 말총으로 만드는 갓모자와는 상관이 없다.
양태의 제작과정은 대나무를 5시간가량 삶고 뜸을 들이며 건조시키는 작업과 뻣뻣한 대줄기를 명주실보다 더 가느다란 대실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대나무가 부드러워진다. 다음은 대칼을 이용해 윤이 나는 대껍질만 남을 때까지 그 속을 후벼 파는 작업이다. 말하자면 알맹이를 완전히 제거하고 얇은 껍데기만 발라내는 일인데, 일명 ‘안 긁은 대’에서 ‘긁은 대’로의 공정을 말한다. 이 과정은 그야말로 기계화할 수 없는 장인의 손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안 긁은 대’에서 ‘긁은 대’로의 공정이 끝나면 다시 20시간 정도 물에 담근 뒤에 대나무에서 실을 뽑아내는 마지막 공정에 들어간다.
“이 과정이 제일 중요해. 잠자리 날개보다도 얇아 보이는 대를 얇게 쪼개는 게 관건이지.”
우리가 텔레비전 등에서 보는 갓 양태는 먹물을 들이고 그 위에 옻칠을 해 새까맣게 윤이 나지만, 촘촘하게 짜여진 것이 사실은 대나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대나무에서 뽑아낸 가는 실로 하는 방직술은 우리나라 말고는 세상천지에 아마 없을 거야.”
양태 짜는 일에서 원시적인 도구의 도움 이외에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장인의 손 기술이다. 양태판은 레코드 회전판과 비슷하게 생긴 모양이다. 양태가 도넛 모양이기 때문에 원심圓心 부분은 나중에 총모자를 얹도록 비워놓고(양태판의 그 부분을 ‘에옥’이라 한다) 양태를 짜나가는 것이다. 마치 소반과 비슷하게 생긴 ‘텅에 구덕’에 이 양태판을 올려놓고 간격을 맞추어 손으로 짜는 것이 양태 작업의 주요 과정이다.

제주 갓 전시관 내부

3천 평 감귤 밭 팔아, 갓 전시관을 세우다

“외할머니 때부터 친정엄마, 나, 그리고 우리 딸까지 이어 하고 있으니까 나이만 합쳐도 몇 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 거야.”
1976년 제주에서 태어난 장인의 둘째 딸, 양금미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012년 갓일 양태장 이수자로 지정돼 현재 갓 전시관 체험 및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가 3천 평이나 되는 감귤농장을 팔아 우리나라 최초로 갓 전시관을 세울 만큼 전통을 잇기 위해 고군분투 해오신 걸 잘 알기에 그 길을 함께 걷기로 결심했죠.”
사재를 털어 갓 전시관을 세울 만큼 갓에 대한 그의 열정과 헌신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무엇보다 ‘갓’의 역사를 지키겠다는 신념과 전통을 계속 잇는다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한 장인의 믿음과 노력이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갈수록 잊혀져 가는 우리의 갓을 꼭 붙잡고 있는 이유는,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되풀이된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역사를 과거의 지나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정확하게 오늘을 꿰뚫어 볼 수 없기 때문에 사명감을 갖고 갓의 명맥을 잇게 되었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나서 이 일을 또 하게 된다면 그때도 마찬가지로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지, 돈이 되든 안 되든 이 양태는 내 할머니고, 엄마고, 우리 제주 여자들의 삶이 담겨 있으니까.”
그는 훗날 자식들과 제자들을 위해 틈틈이 대나무 살을 쪼개어 철 지난 달력 종이에 보관한다. 미래는 현재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의 손이 세상 그 어떤 손보다 귀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서주희 | 문화캐스터/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대학 겸임교수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유산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6년부터 국립무형유산원의 무형문화재 대담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해왔으며
KBS World Radio(국제 방송)를 통해 해외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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