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희 문화캐스터가 전하는 전승공예의 가치 ⑱
국가무형문화재 제53호 채상장彩箱匠 서신정

왼쪽부터 김승우 이수자, 2대 채상장 故서한규, 3대 채상장 서신정, 김영관 전승교육사


귀한 물건을 담는 채상彩箱을 만나다

채상은 겉 상자와 속 상자 2중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이 겉 상자라면, 속 상자는 안에서 튼튼하게 지탱해주는 역할을 한다. 즉, ‘화려한 겉모습에 신경 쓰기보다 속을 꽉 채워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가 이 대나무 상자 안에 깃들어 있는 셈이다. 1975년 국가무형문화재 1대 채상장 故김동연金東蓮을 시작으로 2대 채상장 故서한규 장인의 뒤를 이어 올해로 43년째 채상장의 길을 걷고 있는 서신정 장인을 만났다.

글·사진 서주희 (문화캐스터)


채상彩箱은 《규합총서》에 나타나는 ‘채죽상자彩竹箱子’의 준말로 대나무를 가늘게 오린 대오리(가늘게 쪼개 놓은 댓개비)에 여러 무늬를 수놓듯 다양한 색과 문양을 넣어 만든 상자다. 재료로 쓰이는 대나무는 단단하면서도 견고하고, 방수와 유연성을 지니고 있어 예로부터 자주 애용되었다. 《경국대전》에도 죽장竹匠, 죽소장竹梳匠, 상자장箱子匠, 선자장扇子匠 등 빗, 부채, 양태, 우산, 화살, 등거리나 채상 등 대나무를 다루는 전문장인들이 세분화되어 있어 죽공예의 기나긴 역사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특히 채상은 통풍이 잘 되고 습기나 곰팡이가 생기지 않아 오래 넣어두어도 냄새가 배지 않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궁중과 사대부의 여성이 즐겨 사용하던 공예품이었다. 딸을 시집보낼 때 혼수품을 담거나 여인들의 반지 그릇, 보석함, 옷을 담아두는 상자로 사용되었으며 옛 선비들이 궁중에서 야근을 할 때 입을 옷을 담아 가는 용도로도 활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임금이 승하했을 때 봉물(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바치는 물건)을 담아 보내는 용도로도 사용했는데, 잘 만들어진 채상을 진상하면 그 대가로 벼슬까지 내렸다고 하니 그만큼 채상이 귀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채상의 매끄러운 결과 고운 빛깔을 칭송하며 무늬 ‘채彩’ 자 대신 비단 ‘채綵’ 자를 붙여 ‘비단 같은 상자’로 불렀다. 조선 후기부터 채상은 장시의 활성화로 인해 민가에 유통되는 동시에 기술이 발달하였으며 색색의 대오리로 표현되는 화려한 문양 기술 또한 이때 발전하게 되면서 점진적으로 명성을 쌓아나갔다. 《규합총서》에서도 담양潭陽의 특산품으로 채상을 꼽았으며 통영 12공방 중 하나로 상자방箱子房을 두거나, 진상용 전복을 담는 채상 전문 장인으로 진상생열복죽롱장進上生熱鰒竹籠匠을 줄 정도로 채상의 쓰임새가 상당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5년 국가무형문화재 1대 채상장 故김동연金東蓮을 시작으로 2대 채상장 故서한규 장인의 뒤를 이어 올해로 43년째 채상장의 길을 걷고 있는 서신정 장인을 만났다.


(위) 채상 짜는 서신정 장인의 손 / (아래) 아버지(故서한규)가 채상 일을 하게 된 동기였던 외할머니의 유품


열아홉 살 꽃다운 시절에 만난 채상

서신정 장인이 채상을 처음 시작한 때는 1979년 가을이었다. 일곱 자매 가운데 둘째 딸이었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지만 몸이 아파 3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딸 일곱이 어릴 때부터 아버지 하는 채상은 거들 떠도 안 봤어요. 워낙 가난해서 돈도 안 되는 이 일을 하는 아버지가 못마땅했으니까.”
피아노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고 싶었던 꿈 많던 그였기에 묵묵히 당신 할 일만 하는 가난한 아버지가 마땅치 않았다. 한때 담양에서 대 ‘죽竹’ 자가 죽 ‘죽鬻’ 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나무 일을 해서는 죽만 먹지 밥은 못 먹는다’는 말이 있었다. 대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기까지 꼬박 5년 걸리는데 어려운 형편이지만 대나무처럼 기다림에 대한 자세로 아버지 서한규 장인은 묵묵히 채상 일을 해왔다.
“11월이면 보통 쓸쓸한 날씨인데 그날따라 햇살이 좋아서 그랬는지… 아버지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작업하는 모습이 짠하더라고요.”
그날부터 채상 일을 돕기 시작한 그는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고 각종 공예대전에서 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한때 담양에서 서신정이 때문에 상 하나도 못 받는다”고 할 정도로 그는 독특한 아이디어와 다양한 색감을 넣어 수십 가지의 문양이 담긴 채상 작품을 만들어냈다.


채상장 서신정


외할머니의 유품이 채상의 씨앗이 되어

한때 플라스틱 그릇의 등장으로 죽제품 수요가 줄면서 채상기술이 단절될 위기에 놓인 적도 있었지만 그는 사명감을 가지고 묵묵히 채상기술의 명맥을 잇기 위해 노력했다. 옛 채상 작업이 단순한 상자나 바구니에 그쳤다면 그는 채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핸드백, 도시락, 모빌, 벤치나 의자 등 현대적 기물에 접목하는 일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치자·쪽·잇꽃·갈매 등으로 자연 염색을 하며 태극 문양, 수壽, 복福 등 다양한 문양을 넣어 작업한다.
“대나무 다루는 솜씨로는 담양에서도 손꼽히는 아버지였지만 그때만 해도 자세히 가르쳐주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아버지가 제대로 채상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해야만 했었답니다.”
그의 공방 한켠에 낡은 채상 하나가 눈에 띄어 물었더니 아버지의 외할머니가 시집올 때 해온 상자라고 한다.
“100년도 넘은 귀한 물건이에요. 아버지가 채상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동기죠. 이 상자가 없었다면 아버지도 지금의 저도 채상 일을 안 했었을지도 모르죠.”
채상을 짜는 방식은 바닥을 이루는 부분을 먼저 짠 뒤 이를 토대로 상자 옆면을 접고 상자의 귀 부분을 엮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겉 상자와 달리 속 상자는 바탕무늬와 어울리는 색깔의 비단으로 테두리를 감싸 붙여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특징이다. 속 상자 안쪽에는 두 겹으로 한지를 붙이는데 그 이유는 대나무 올에 긁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또한 상자의 네 귀퉁이에도 비단을 붙여 귀퉁이가 쉽게 닳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 멋스러움을 더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는 작업이 채상 짜기다.


1 채죽옻칠나비장(전북무형문화재 제13호 옻칠장 박강용과 협업)
2 채상으로 만든 겉상자와 속상자
3 채상의자와 모빌(가구디자이너 하지훈과 협업)
4 채상으로 만든 도시락
5 채죽찻상
6 채상으로 만든 찬합


화려한 겉모습보다 속을 꽉 채워야 진짜 채상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채상은 겉 상자와 속 상자 2중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이 겉 상자라면, 속 상자는 안에서 튼튼하게 지탱해주는 역할을 한다. 즉, ‘화려한 겉모습에 신경 쓰기보다 속을 꽉 채워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가 이 대나무 상자 안에 깃들어 있는 셈이다. 좋은 그림은 현란한 색상으로 본래의 모습을 치장하지 않는 것처럼, 속이 꽉 찬 사람도 화려한 겉모습으로 상대방을 현혹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겉치레로 자신의 부족한 면을 보상받으려고 하지 않고, 비싼 옷보다 부패한 냄새가 나지 않는 옷이 진정한 명품이라는 것을 대나무로 엮은 채상을 만나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채상 짜기는 대나무를 이기려고 하면 안 돼요. 다시 말해, 나를 낮추라는 말이에요.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내려놔야 잘 짜진다… 이 말이에요.”
우리의 인생도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비로소 가득 채워지는 것처럼 채상 짜는 일 역시 우리의 인생살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현재 서신정 장인은 남편(김영관 전승교육사), 아들(김승우 이수자)과 함께 전라남도 담양 죽녹원에 있는 채상장전수교육관에서 묵묵히 채상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서주희 | 문화캐스터/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대학 겸임교수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유산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6년부터 국립무형유산원의 무형문화재 대담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해왔으며
KBS World Radio(국제 방송)를 통해 해외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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