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희 문화캐스터가 전하는 전승공예의 가치 ⑰ 상주명주 김천우 장인

인생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명주明紬를 만나다

흔히 명주길쌈은 ‘몸 안에 사리가 생기는 일’이라고 할 만큼 힘들고 더딘 일이다.
끝없이 손이 가야 제대로 된 명주가 나온다는 것이다.
경상북도 상주에서 조상 대대로 ‘명주길쌈’을 하고 있는 김천우 장인을 만났다.

글·사진 서주희 (문화캐스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따르면 경상북도 상주는 본래 사벌국沙伐國으로 신라 첨해왕 때 신라에 병합되어 주州가 되었고, 법흥왕 때 지명을 상주尙州로 고쳤다고 전해진다. 신라 시대, 신라의 명주는 중국보다 품질이 우수했다고 전해질 만큼 예로부터 상주시 함창읍에는 양잠과 명주길쌈의 전통이 오래도록 이어져 오고 있다.
명주길쌈은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명주를 짜는 전 과정을 말하며, 뽕나무를 기르는 재상栽桑과 누에를 기르는 양잠養蠶은 명주길쌈과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누에는 봄과 가을에 뽕잎을 먹고 실을 토해내어 고치를 짓는다. 누에가 지은 고치에서 뽑은 실을 명주실이라 하고, 명주실로 직조한 직물이 바로 ‘명주’를 말한다. 따라서 ‘명주 길쌈’의 역사는 ‘양잠의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지역 명주산업의 역사는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경재敬齋 하연(河演, 1376~1453)이 1425년 경상 감사로 있을 때 편찬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서 확인된다.
《경상도지리지》 <상주도尙州道 상주목관尙州牧官>편에 국가에 바치는 공물을 의미하는 공부(貢賦, 지방의 특산물을 나라에 물납物納하던 현물세)의 첫 번째로 명주의 옛 명칭인 면주綿紬가 기재되어 있다. 또한 뽕나무와 삼을 의미하는 상마桑麻, 목면木綿, 백미白米와 전미田米 등도 있다. 예로부터 상주는 하얀 것 세 가지인 쌀·누에고치·면화綿花가 많이 난다 하여 ‘삼백의 고장’이라 불렀다. 면화는 1970년대에 곶감으로 대체되었다고 전해진다. 《경상도지리지》에 상주의 특산물로 면주綿紬와 목면木綿과 백미白米가 기재된 것은 상주 삼백三百의 3대 특산품이 15세기에도 상주 지역의 주요 산물이었음을 나타낸다.
이렇듯 품질 좋은 특산품이 가득한 경상북도 상주에서 조상 대대로 ‘명주길쌈’을 하고 있는 김천우 장인을 만났다.


(좌) 김천우 장인의 아내(백현주 씨)가 남편이 짠 명주로 옷을 짓고 있다.
(우) 장인의 아내(백현주 씨)가 지은 누비배냇저고리


안정적인 공무원직을 뒤로하고 가업을 잇기까지

1896년 증조할머니부터 시작해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4대째 집안의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김천우 장인은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일이지만 가업을 잇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제가 증손인 이유도 있습니다만, 어릴 때부터 힘들게 연탄가스 마셔가며 누에고치에서 실 뽑아 길쌈하는 이 일이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았어요.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기도 했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고민 끝에 가업을 이어가야겠다고 결심했죠.”
청와대 공무원 최종 면접시험까지 합격한 그였지만 가업을 잇기 위해 힘든 결정을 내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상주비단의 명맥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가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가족들의 응원과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아내 백현주 씨는 남편이 짠 명주 천으로 한복을 비롯해 수의, 그리고 다양한 규방 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시집와서야 알게 되었어요. 명주길쌈 하는 집안이란 것을요. 가업을 잇기까지 남편이 오랜 시간 고민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어떤 선택을 하든 믿고 따르기로 결심했죠. 저 또한 시부모님 곁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이 일이 지금은 생업이 되었네요.”


1970년대 초반에 상주 함창읍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전기 모터를 활용한 자동화 베틀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위) 날틀에 실을 감기 위한 얼레 / (아래) 얼레에 실을 감는 날틀


우주복에도 쓰일 만큼 귀한 옷감, 명주

전통적으로 명주는 고급한복 소재이자 단순한 의복 이상의 문화를 품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 생후 첫 번째로 입는 옷이 배내옷이며, 아이가 성장해 성년으로 인정받는 15~20세에 관례복으로 명주옷을 입혔으며, 혼례할 때도 명주로 지은 혼례복을 입고, 세상을 떠날 때 망자가 입는 고급 수의壽衣도 본래 명주로 만들었다. 이처럼 우리 인생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것이 명주라고 할 수 있다.
1977년 우리나라가 백억 달러 수출을 달성했을 무렵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수출한 명주실 80%가 경상북도 상주에서 수출됐을 만큼 상주에서 생산한 명주실과 명주천의 명성이 높았다.
“아버지께 들은 이야긴데, 1969년 발사된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의 우주복에 들어간 명주솜이 상주에서 생산된 거라고 하더라고요.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겁니다.”
우주복에도 쓰일 만큼 귀한 재료인 명주가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때는 20세기 중반 나일론과 폴리에스터, 아크릴 등의 화학섬유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생활이 변화하면서 명주의 수요가 크게 감소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대의 명주 생산지인 함창의 명주 직조 가구의 수도 1994년 기준 103가구에서 지난해 2021년 기준 6가구 내외로 현격히 줄어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함창의 명주산업이 존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전통문화를 선호하는 애호가 계층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명주로 지은 옷은 일반인의 일상복이 아닌 고전적인 의생활을 선호하는 일명, 전문가집단의 옷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다도, 서예, 고전무용, 고전음악, 규방공예, 천연염색을 직업 또는 취미로 하는 애호가 계층이 보이지 않는 시장의 수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아내도 수의를 만들지만, 마지막 부모님께 하는 효도로 명주수의를 구매하는 수요자들이 명주시장의 주 고객층입니다.”


1 김천우 장인이 짠 비단을 햇볕에 널어 건조하고 있다.
2 덕혜옹주가 입었던 모란꽃문양이 담긴 옷을 복원하기 위해 모란꽃문양의 명주를 기계식 베틀에서 만들어내고 있다.
3 경북 상주의 특산품( 쌀, 누에고치, 곶감) 문양을 넣어 짠 명주
4 장인이 짠 명주


곱삿병을 앓던 아버지의 뜻을 기리며

흔히 명주길쌈은 ‘몸 안에 사리가 생기는 일’이라고 할 만큼 힘들고 더딘 일이다. 끝없이 손이 가야 제대로 된 명주가 나온다는 것이다. 옛날 방식으로 누에를 치고 고치를 짓게 하는 일도 힘들었지만, 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는 일은 오랜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연탄 화덕 불을 피워놓고 했는데 연탄가스 맡는 것도 고통이었지만, 고치에서 실 가닥을 뽑아내려면 60~70℃ 정도로 데워진 물에 고치를 담가놔야 했어요. 뜨거운 물에 불려 놓은 고치에서 실 가닥을 뽑는 일 때문에 손이 마를 틈이 없었죠. 손이 짓물러 가렵고 따갑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어요.”

장인의 아버지 故 김진희 선생

이렇게 고되고 힘든 일을 장인의 아버지는 11살인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해야 했다.
“아버지의 키가 멈춰버린 때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어요. 흔히 구루병이라고 하는 곱삿병 증세가 나타난 거죠. 병 때문에 더는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아버지가 유일하게 선택한 일이 명주 짜는 일이었죠.”
곱삿병 증세가 나타나기 전, 더 어려서 그의 아버지는 결핵을 앓았던 적도 있다. “못살고, 못 먹어서 얻은 병”이라고 말한 아버지가 기댈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 명주길쌈이었던 것이다. 150㎝가 안 되는 왜소한 아버지였지만 그에게 있어 아버지의 존재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누에고치를 건조실에 말리려면 밤낮없이 연탄 화덕 3개에 불을 피워놨어야 했거든요. 밀폐된 공간이라 연탄가스가 지독했죠. 아버지는 그 공간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홀로 작업하셨어요. 한번은 건조실에서 혼자 애쓰는 아버지를 도우러 들어갔다가 쫓겨났었죠.”
그렇게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할 만큼 힘든 그 일을 묵묵히 이어오고 있는 장인은 아버지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고 했다. 힘들 때마다 삶의 가장 큰 힘이 되었던 아버지, 가업을 잇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이젠 아버지의 뜻을 기리며 땀과 눈물로 지은 그의 명주가 삶의 역작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주희 | 문화캐스터/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대학 겸임교수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유산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6년부터 국립무형유산원의 무형문화재 대담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해왔으며
KBS World Radio(국제 방송)를 통해 해외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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