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희 문화캐스터가 전하는 전승공예의 가치 ⑯ 독립시계제작자 현광훈

손끝에서 느끼는 아날로그의 매력, 수제시계를 만나다

모든 것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디지털 세상, 따뜻한 가슴과 사람 냄새에 대한 향수 속에서 아날로그 감성이 조용히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독립시계제작자 현광훈 장인의 수제시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아날로그의 가치를 지켜온 독립시계제작자 현광훈 장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글·사진 서주희 (문화캐스터)


디지털과 아날로그, 꽤 익숙한 말이지만 정작 그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날로그는 연속적으로 변화되는 물리량을 뜻하고 디지털은 자료를 숫자로 나타내는 방식을 말한다.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매우 편리하고 효율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디지털 시대가 모든 면에서 최고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칫 시대에 뒤떨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비효율적이라는 한마디로 치부하기에 아날로그 감성이 갖고 있는 매력이 못내 아까울 따름이다. 모든 것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디지털 세상, 따뜻한 가슴과 사람 냄새에 대한 향수 속에서 아날로그 감성이 조용히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독립시계제작자 현광훈 장인의 수제시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왼쪽부터) 현광훈 장인이 학부과제로 만들었다는 핀홀카메라
학부시절 핀홀카메라 스케치
현광훈 장인이 제작한 첫 수제손목시계

바늘구멍사진기 제작에서 수제시계를 만들기까지

독립시계제작자 일명 ‘워치메이커(Watch maker)’라고 불리는 현광훈 장인은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입자가 서른 명정도 밖에 안 되는, 전 세계 시계를 만드는 장인들의 모임인 ‘독립시계제작협회(AHCI)’의 장인匠人 가운데 한 사람이다. 시계에 들어가는 초침 하나, 나사 하나까지 직접 설계하고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시계를 제작하는 도구까지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그가 수제시계 제작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핀홀카메라’라고 하는 바늘구멍사진기를 제작하면서부터다.
“금속공예를 전공했던 학부시절 교양수업 과제로 일명 ‘바늘구멍사진기’라고 하는, 카메라 렌즈를 사용하지 않고 작은 구멍을 통해 빛을 받아 촬영하는 사진기를 과제물로 제출한 적이 있어요. 2년 동안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계 제작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과제물인 만큼 종이로 제작해도 될법한 핀홀카메라를 그는 금속 물질로 제작해 과제물이라고 하기엔 높은 품질로 지도교수를 놀라게 한 일화도 있다.
“한동안 핀홀카메라에 푹 빠져 있었어요. 을지로 시계 거리에 작업실도 열었었죠. 그러다 석사 졸업 과제를 정할 때 핀홀카메라 업그레이드 버전을 생각했어요. 촬영 때마다 매번 분초를 재고 제때 핀홀을 막아야 하는 불편함이 신경 쓰여서 고민 끝에 타이머 기능이 있는 핀홀카메라를 생각했어요. 다시 말해, 기계식 태엽으로 작동하는 시계 무브먼트 있죠. 그 메커니즘을 핀홀카메라에 적용하면 되겠다 싶었죠.”
핀홀카메라를 연구하면서 그는 2년 동안 시계 공부를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시계 제작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위쪽부터) 현광훈 장인作 탁상시계 / 현광훈 장인作 오토마타 / 현광훈 장인作 수제시계

시계제작시장의 척박함이 나를 만들었다

한 때 ‘시계’ 하면 떠오르는 나라 스위스와 연결된 학교가 있는 일본으로의 유학을 꿈꿨지만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못 가게 되면서 시계제작을 제대로 배우거나 가르쳐 줄 스승 하나 없는 국내시장에서 그를 전진하도록 만든 건 다름 아닌 척박함이었다.
“독학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우선 시계제작자들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검색해 수없이 돌려봤어요. 모조리 외우다시피 머리에 새기는 일부터 시작했죠. 매초마다 화면을 정지시켜놓고 영상 속 장인의 책상에 어떤 장비와 도구가 있는지를 기억했다가 인터넷 구매사이트에서 찾아 구입해 연구했어요.”
그가 해외 구매사이트에서 구입한 도구들은 대부분 1990년대 중·후반의 소위 말하는 빈티지(Vintage) 도구여서 배송받은 뒤에는 하나하나 분해해서 세척하고 수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내하면서도 하나씩 사용법을 익혀왔으니 그의 수제시계가 남다른 멋과 품위를 자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유럽에서도 시계제작을 배우러 온다

시계제작과정을 독학으로 익히는 데만 무려 6년이 걸렸다는 그는 힘들게 깨우치고 익힌 기술을 타인과 공유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제 작업영상을 SNS에 올리거든요. 영상을 보고 호기심으로 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는 분들이 많았어요. 유럽 학생들도 인턴을 해야 학교를 졸업할 수 있다고 해서 여러 명 찾아왔었는데, 유럽의 시계학교에선 시계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시계에 들어가는 부품이나 기본적인 지식만 가르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학생들이 제작방법을 배우러 제게 많이 왔었죠.”
시계제작에 들어가는 작은 부품 하나하나까지 모두 제작해야 하는 그에게 이 어렵고 고된 일에 어떤 매력을 느끼냐고 물었더니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무언가에 대해 본인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희열을 느낀다고 답했다.
“주변에서 그래요. 디지털 시계가 판을 치는 요즘 시대에 아날로그 시계가 무슨 매력이 있냐고요. 직접 제 손으로 제작하는 거니까 손맛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정情을 느낄 수 있잖아요. 저는 그 느낌이 좋아요.”

수제시계 부품인 나사를 제작한 뒤 확인하는 장인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자부심으로

현광훈 장인이 말하기를 수제시계 하나를 제작하는 데 새로운 디자인으로 처음 만드는 건 6개월, 한번 만들어 봤던 건 3~4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지루한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 혼자 하나씩 도전하고, 실패도 해보며 성공하는 과정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희열을 느껴요. 그 느낌 때문에 지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그는 카메라, 시계제작뿐 아니라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기계장치인 ‘오토마타(Automata)’라고 하는 움직이는 자동인형도 제작한다. 그가 만든 수제시계, 그리고 오토마타까지 마치 우주의 규칙처럼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아날로그의 움직임들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장인匠人’은 오랜 경험과 경륜을 가진, 다시 말해 나이가 어느 정도 찬 사람을 떠올릴 수 있지만 현광훈 장인처럼 젊은 나이지만 척박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어느 한 가지 일에 천착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모습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또 다른 장인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손으로 하는 일인 만큼 분명 기계보다 정확하지 않겠지만 그것만의 매력과 정감 그리고 위대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어제와 오늘이 다를 정도로 빠르게 변해가는 디지털 시대인 지금, 아날로그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짙어지고 있는 듯하다. 편리해진 우리의 삶 속에서 한편으로 공허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사람이란 존재가 아날로그적 존재인 탓일 것이다.
사람의 감정, 행동 등을 어떻게 수치화할 수 있을까. 이 본질이 변하지 않는 이상 우리 삶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정정합니다
월간민화 4월호 <한국의 장인들> 기사, p67 아래에서 세 번째 문장 ‘공공기관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를 ‘공공기관의 체계적인 연구와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로 정정합니다.


서주희 | 문화캐스터/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대학 겸임교수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유산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6년부터 국립무형유산원의 무형문화재 대담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해왔으며
KBS World Radio(국제 방송)를 통해 해외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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