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희 문화캐스터가 전하는 전승공예의 가치 ③
아름다운 돌, 옥玉을 만나다




옥은 매우 질기고, 강한 응집력을 가지고 있어 어려운 위기마다 빛을 발했던 한국인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많은 위기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옥에 대한 애정을 저버리지 않고, 묵묵히 옥공예의 길을 걸어온 엄익평 장인과 그 가족의 삶은 옥이 가진 아름다움과 가치를 오롯이 느낄 수 있게 한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7호 옥장 엄익평 장인과 그의 가족 이야기를 전한다.(편집자주)

글·사진 서주희 (문화캐스터)


우리가 살면서 땅에 발 디디는 모든 것에 돌[石]이 필요하듯, 돌은 인간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돌이 땅의 기운을 감싸 모은다고 여겨 다양한 건축기법을 활용해 돌탑을 쌓고 석불을 만들어 돌에 생명을 불어 넣었다. 눈에 흔히 보이는 것이 ‘돌’이지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돌은 따로 있었기에 선조들은 옥玉 돌로 다양한 장신구와 생활용품을 만들어 삶의 희로애락을 전했다.
예로부터 옥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름다운 재질을 가지고 있지만, 돌과 섞여 있어 어떤 이를 만나느냐에 따라 한낱 돌덩어리로 버려지는가 하면, 당대의 아름다운 보석으로 빛나기도 한다고 말이다.

(왼쪽) 대삼작 노리개(엄익평作) / (오른쪽) 백옥 문방구류(엄익평作)

열여섯, 옥공예에 인생을 걸다

삼국시대에 옥으로 만든 쌍가락지 하나를 쌀 한 가마니와 맞바꿀 정도로 예부터 옥은 동양의 대표 보석이었으며, 신분을 상징하는 보석이었다. 무엇보다 옥은 깨지거나 균열이 가기 쉬운 예민한 물질이기에 작업 초기 단계부터 정확한 쓰임새를 예측해야 하며, 섬세한 형태와 정교한 조각을 위해 숙련된 손기술과 예술성을 요구하는 것이 옥공예다. 이렇게 까다로운 옥을 처음 마주했을 때 엄익평 장인의 나이는 열여섯이었다. 충청남도 논산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가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옥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바로 가족의 생계를 위한 선택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7남매를 홀로 키우셨어요.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 2학년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둘째 형의 친구가 운영하는 옥 공방에 취직을 했죠. 그렇게 옥과의 인연이 시작된 겁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선택한 길이 그의 운명이 되었고, 옥이 간직한 오묘하고 영롱한 아름다움에 매료돼 50여 년 가까이 옥공예와 함께 하고 있다. 다이아몬드나 사파이어 같은 서양의 보석이 빛을 외부로 발산하며 자태를 뽐낸다면, 옥은 빛을 흡수하여 마치 달빛처럼 은은하고 소박한 미를 발산한다. 그뿐만 아니라 루비, 사파이어 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옥은 매우 질기고, 강한 응집력을 가지고 있어 어려운 위기마다 더욱 빛을 발했던 우리 한국인의 정서를 담고 있는 돌石이기도 하다.

백옥 매화문 주전자 및 잔대(엄익평作)

화마火魔 속 옥을 품은 장인

장인의 나이 열아홉, 취직한 공방에서 홀로서기를 한 그가 공구를 직접 제작해 가며 옥공예에 매진하던 어느 날, 수년간 공들인 작품과 손때 묻은 도구, 그리고 살림집 겸 공방이 모두 전소全燒되는 시련이 찾아왔다.
“1995년 1월 20일 밤 11시쯤이었어요. 뒷집에서 시작된 불이 우리 집까지 옮겨 붙어서 그만…….”
장인의 공방은 일순간 잿더미로 변했고, 그가 옥공예를 시작한 지 20여 년 만에 맞은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때 상황을 떠올리며 엄익평 장인의 아내, 김정희 작가는 말했다.
“그때가 상도동 달동네 살 때였는데, 불이 나니까 집안 살림살이는 뒤로하고 고무대야에 정신없이 옥이랑 옥 작품만 챙기더라고요. 옥에 대한 남편의 욕심과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때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사고가 난 살림집 겸 공방은 보상조차 받지 못했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손으로 천막생활을 하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때만큼 고민이 많았던 적이 없었다는 엄익평 장인은 ‘불이 나면 더 잘 되는 법이다’라고 하는 어른들의 말을 위로 삼아 불굴의 의지로 그 어려운 시기를 묵묵히 이겨냈다. 화마火魔 속에서 피어난 옥공예에 대한 그의 강한 의지와 신념은 ‘1998년 제23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을 비롯한 각종 공예 공모전에서 상을 휩쓸면서 더욱 확고해졌고, 그는 마침내 ‘2006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7호 옥장玉匠’으로 선정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옥장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왼쪽) 다양한 옥玉 원석 / (오른쪽) 옥비녀 연마 작업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가족을 위해 엄익평 장인이 옥공예의 길로 들어선 것처럼 그의 아내와 두 딸, 그리고 큰 사위 역시 운명처럼 옥공예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아내인 김정희 작가는 남편이 만든 ‘향갑 노리개’를 보며 원석에 따라 달라지는 색상과 견고한 무늬에 어울리는 매듭을 만들고 싶어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매듭 장인에게 매듭공예를 배워 남편의 작품에 매듭으로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금속공예를 전공한 두 딸(엄홍주, 엄가원)과 큰 사위(김태완)는 자신들의 전공 분야에 맞게 옥을 활용하여 전통 옥공예 기술을 이어가고 있다.
“어릴 적엔 아버지가 하는 이 일이 어려운 일인 줄 미처 몰랐어요. 저도 결혼해 아이를 낳고 보니 아버지가 해 오신 이 일이 정말 힘들고 고된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자식을 낳아 키워 봐야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절실하게 깨달은 큰딸 엄홍주 작가처럼 둘째 딸 엄가원 작가는 고등학교 때부터 호주에서 유학하며 전통공예에 관심을 두고 금속공예로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와 자연스레 아버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옥공예를 배우면서 오랜 세월 동안 이 일을 해 오신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더 깊어졌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사명감도 생겼고요.”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으로 똘똘 뭉친 두 딸처럼 큰 사위 김태완 작가가 장인에게 전통 옥공예를 배우게 된 계기는 장인이 평생 업으로 삼은 옥공예를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대학에서 전공한 금속공예는 금속을 붙여가며 작업하는 것이라면, 이 작업은 돌덩어리를 쪼개서 하는 조각이다 보니 처음에는 많이 헤맸었죠. 지금도 물론 헤매고 있긴 합니다만 조금씩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너무나 가까워 더 어려운 사이가 가족이라는 말처럼 때때로 장인과의 의견충돌로 마음의 갈등도 있었다는 김태완 작가, 이제는 친아버지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말들도 스스럼없이 터놓고 이야기할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전통 향갑과 옥 장신구(김태완作)

옥공예는 자신自身과의 싸움이다

지구상에 3천여 종이 있는 옥은 크게 ‘연옥(백옥)’과 ‘경옥(비취)’으로 나뉘는데, 이 중 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 옥은 불과 50~60여 종에 불과하다.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70퍼센트 정도가 옥공예 작품일 정도로 옥은 서민보다 왕실이나 양반가에서 주로 사용했던 고급 공예품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옥이 가지고 있는 단아함과 우아함보다는 화려한 보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예전보다 옥 장신구의 위상이 현저히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한복을 입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비녀, 노리개, 가락지 등 주로 한복차림에 어울리는 옥 장신구를 찾는 수요도 낮아져 옥공예에 종사하던 이들도 하나둘씩 일터를 떠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엄익평 장인은 자식들에게 늘 ‘옥을 다루기 전, 나 자신부터 세우라’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옥돌은 겉으로 보기에는 한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미묘하게 강도가 다른 여러 광물이 섞여 하나로 모여진 원석이기에 옥돌을 가리켜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돌’이라고 한다. 보통 작가가 작품을 만들 때 작품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고 재료를 고른다면 옥 장인은 그 반대로 옥돌이 품고 있는 ‘결’을 보고 작품의 이미지를 구상하고 결정한다. 다시 말해 옥돌 스스로가 자기 운명을 정하기 때문에, 만약 장인이 옥돌로 섬세한 조각기법을 사용해야 하는 ‘향로’를 만들고 싶다고 해도 그 역량이 될 만한 옥돌이 없으면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옥공예는 통옥(원석)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원석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옥의 질감이나 그 결을 살피는 감각이 필수적이에요. 비싼 원석을 쪼갰을 때 결이 좋지 않아 내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지 못했던 경우도 있어요. 이럴 때 좌절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과 인내심이 꼭 필요합니다.”
옥돌의 결을 보는 세심한 안목과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은 용기, 그리고 자신에게 지지 않는 용기가 옥공예를 하기 위한 필수 덕목인 것처럼 우리의 삶도 수많은 연단의 과정을 거쳐야 성장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옥돌에도 결이 있는 것처럼 모든 사물에는 결이 있다. 사람도 저마다의 결이 있고 계절이나 바람, 비 등에서도 결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가족을 위해 선택한 길을 삶의 지표로 삼아 그 길을 운명처럼 걸어 온 엄익평 장인과 그 길을 한마음 한뜻으로 걸어가고 있는 이 가족의 삶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가족에 대한 헌신과 사랑, 그리고 전통문화를 지키겠다는 사명감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결이 고운 이 가족이 지켜가고 있는 옥공예가 더욱 더 아름답게 빛나기를 바란다.

서주희 | 문화캐스터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유산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6년부터 국립무형유산원의 무형문화재 대담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해왔으며
KBS 라디오방송을 통해 장인의 작품세계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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