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희 문화캐스터가 만난 문화예술인 ②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한경구

한경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현재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우수한 평가를 받기까지 한경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의 역할이 컸다.
문화인류학자이기도 한 그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우리 문화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 써왔다.
한국학전문가, 국제이해교육전문가, 무형문화유산전문가, 기록유산전문가 등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인생이야기를 전한다.

글·사진 서주희 (문화캐스터)


2019년 6월 이태리 유네스코 창의도시 ‘Fabriano’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제13회 연례대회 참석 중

우리나라에서 유네스코(UNESCO) 하면 주로 세계문화유산을 매개로 대중에게 인지된다. 유네스코(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는 세계평화를 위해 만들어진 국제연합전문기구를 말하며, 교육과 과학, 문화, 정보,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국제협력을 촉진해 세계평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유엔의 전문기구다. 우리나라는 1950년 6월 14일, 55번째 회원국으로 유네스코에 가입했으며 이는 일본, 베트남, 독일, 스페인, 핀란드 등 보다 앞선 것이었다. 북한은 1974년에야 유네스코에 가입했다. 유엔 기구 중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이 회원국에 유네스코 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국가위원회를 두고 있다.
유네스코 가입 후 열하루 만에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우리나라는 인적과 물적 자원의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불안정한 상황을 맞이한 우리나라를 위해 유네스코는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용 교과서를 인쇄해 공급할 인쇄시설 건립자금과 교육지원 활동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가장 힘들고 참혹했던 시기에 유네스코는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현재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전 세계 199개 유네스코 국가위원회 중 가장 활발하고 모범적인 조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우수한 평가를 받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두루 섭렵하고 폭넓은 사고와 창의력으로 문화경쟁력을 갖춘 한경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의 역할이 컸다. 문화인류학자이기도 한 그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우리 문화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 써왔다. 한국학전문가, 국제이해교육전문가, 무형문화유산전문가, 기록유산전문가 등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인생이야기를 전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 문화인류학의 첫걸음이다

“저는 호기심 많고 공학적인 성격을 지녔어요.”
어려서부터 만들기를 좋아해 고등학교 1학년 무렵까지 무언가 창조하는 건축가가 될 꿈을 꾸고 있던 그는 이과를 지망했었다.
“우연히 미국의 정치학자 라스웰의 정치 동태의 분석이란 책을 봤는데, 당시 어렵기는 했지만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거였나? 하는 사회문화 현상에 대한 내용이 재밌게 느껴졌어요.”
그 책을 읽고 그는 사회를 더욱 알고 싶다는 생각에 문과로 이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진학해 인류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아버님의 반대가 심했어요. 당시 사회적인 풍토로 볼 때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비인기학과에 가서 뭐 할 거냐는 거였죠.”
군 입대 전에 고등고시, 회계사 시험 중 국가고시의 한 가지를 꼭 합격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간신히 아버지의 허락을 맡은 그는 서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다른 학과에 비해 모든 여건이 열악했죠. 신생학과에 비인기학과였으니까요. 그리고 학과에는 두 교수님(이광복, 한상복)만 계셔서 한 과목 수업 끝나면 똑같은 교수님이 쉬는 시간 후 다시 강의실에 들어오시고… 마치 초등학교 수업시간을 연상케 했죠. 학부생인데 인원이 적은 대학원을 다니는 느낌이기도 했고요. 신생학과라 개척자 정신도 생겨나고 자부심도 생겨서 동기끼리 전우애 비슷하게 동지애가 있었어요.”
아버지와의 약속대로 그는 문화인류학과 재학시절 외무고등고시에 도전해 제14회 외무고등고시 수석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당시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쟁쟁한 집안의 학생들이 많았거든요. 외교학과 학생이 2등을 하고, 비인기학과인 제가 수석합격을 해서 학과 교수님들이 너무 기쁘셨던지 당시 교수 휴게실에서 한 잔씩 술잔을 돌리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1년 여쯤 근무했던 외교부에 사표를 내고 그는 인류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해외 유학 준비에 들어갔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낸 거니까 유학자금 때문에 손 벌릴 수도 없었고…. 당시 한국고등교육재단의 해외유학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한다는 자부심이 그를 더욱더 문화인류학에 심취하게 만들었다. 일본 동경대학교,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한 그는 강원대학교, 국민대학교 국제학부,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를 지내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분과위원 등으로 활동한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지난 2021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우리나라가 가난을 딛고 일어서는 데 유네스코의 교과서 제작지원의 역할이 컸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유네스코가 원조한 교과서로 공부한 가난한 나라의 소년이 사무총장이 됐다며 전 세계의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네스코와 한국의 관계를 대변해주는 국정교과서


교육 문제를 주축으로 결성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우리나라와 유네스코의 관계는 전쟁으로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시절에 유네스코가 우리나라 초등교육의 발전과 문해력 교육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한경구 사무총장이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활동을 하며 국제이해교육을 위한 교재를 3권 만들었다. 그 중 축구를 주제로 초등학교 교재를 만들었다.

그의 말대로 여러 가지 면에서 열악했던 우리나라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네스코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교과서 제작지원과 도서기증, 교육 기자재 원조 등 교육 분야에 관한 절대적인 지원이 우리나라가 가난을 딛고 일어서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올해가 유네스코 설치령으로 보면 70주년이 되는 해거든요. 일본은 문부과학성 안의 고참 되는 국장이 유네스코위원회 사무총장을 했어요. 초창기에 우리나라는 당시 교육이 가장 큰 문제였기에 문교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이고요.”
전 세계 199개 유네스코 국가위원회 중 자국의 수도首都에 위치한 번화가 지역에 위원회 소유의 빌딩을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그는 말했다.
“다른 나라의 위원회 건물은 대부분 임대 건물이거나 정부 안에 속해있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나라처럼 자국의 도심, 번화가에 자가 빌딩을 가진 위원회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그래서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 가면 우리나라가 가장 규모가 크고 역동적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아요.”
우리나라가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국가가 됐음을 여러 번 강조하며 그는 오래된 책 한 권을 펼쳐 보였다. 유네스코와 운크라(UNKRA)에서 인쇄 기계의 기증을 받아 설치된 국정교과서 인쇄공장에서 인쇄된 교과서였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 가서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만든 책으로 공부한 가난한 나라의 소년이 유엔사무총장이 됐습니다. 여러분 교육이 중요합니다’라며 교육 캠페인을 할 때 들고 다닌 책이에요.”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도 같은 책이 전시되어 있다.

K-culture의 힘은 호소력에 있다

“우리나라가 치열하게 살았잖아요. 요즘 말하는 K-culture의 힘은 우리 문화가 보편적인 호소력을 갖기 시작한 결과라 할 수 있어요.”
호소력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깊은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이다. 가난에서 벗어나 도시화, 산업화, 전쟁 등 기구한 시간을 보내며 많은 일을 겪었던 우리 문화가 그만큼 호소력 짙은 그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문화의 가치들이 세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해요. 우리나라가 독립하고 얼마 안 됐을 때 평생 무장투쟁을 하셨던 백범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 마지막에 나의 소원이란 짧은 글에서 ‘한없이 갖고 싶은 게 문화다. 문화의 힘이다’ 그런 말씀을 하셨죠. 그리고 ‘한국으로 말미암아 세계평화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도 하셨고요.”
우리나라가 해외선진국 문화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우리의 문화를 해외에 소개하고 다양한 문화정책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유네스코의 역할이 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가 6.25전쟁 직전 유네스코 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된 일은 신의 한 수였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무엇보다 키워야 할 일은 우리의 생각을 말하고 함께 논의하는 일이에요. 즉, 담론하는 일이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선 말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다시 말해, 그의 말은 일등능제천년암一燈能除千年暗. 하나의 등불이 천년의 어둠을 이긴다는 말처럼, 말의 힘이 등불과 같다는 것을 일깨운다.
전쟁의 폐허 속, 모든 분야에서 도움받기에 급급했던 우리나라가 이제 유네스코의 많은 분담금을 내는 나라 중 하나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달라진 만큼 말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 잘하는 능력을 키우기보단, 사리를 바르게 판단하고 일을 잘 처리해 내는 재능을 갖춘 말하기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서주희 | 문화캐스터/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대학 겸임교수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유산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6년부터 국립무형유산원의 무형문화재 대담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해왔으며
KBS World Radio(국제 방송)를 통해 해외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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