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낙원도와 민화




19세기에는 전통적인 화제를 포함해 길상화가 크게 유행하여 왕실의 가례, 연향 등에 활발히 사용되었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서수낙원도>를 중심으로 궁중회화인 서수도가 민간으로 확산되고, 변모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글 이재은 (독립기념관 학예연구사)


조선 후기는 양난 이후 회복된 경제력과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조선 왕실이 안정된 시기로 이 시기에 탄생한 궁중회화 역시 다채로운 모습으로 꽃피어난다. 특히 궁중장식화에서는 십장생, 모란 등 전통적인 화제뿐 아니라 요지연도, 곽분양행락도와 같은 중국의 화제가 유입되어 조선식으로 정착되기도 하였다. 19세기에는 이러한 화제를 포함한 길상화吉祥畵가 크게 유행하여 왕실의 가례, 연향 등에 활발히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그림들은 기복호사祈福豪奢 풍조가 일반화되면서 왕실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수요가 증가하였다.

도2 <십장생도> 10첩 병풍, 19세기, 견본채색, 208.5×389.0㎝,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서수낙원도>, 서수·길상 도상의 절충

19세기에는 상품경제의 발달과 부의 축재로 사대부는 물론 민간에까지 사치풍조가 유행하였다. 다양한 사치품 중에는 집안을 치장하는 장식화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늦어도 19세기 초부터는 광통교에서 다양한 그림을 사고팔기 시작했으며, 그 중 도화서 화원의 것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서화 매매의 발달과 장식화의 유행, 여기에 당시 팽배했던 기복적인 사회 분위기가 맞물려 특히 길상화가 크게 유행하였다.
이 시기에는 궁에서도 곽분양행락도, 백자도와 같은 새로운 화제의 장식화가 가례에 사용되었다. 당나라의 명장 곽분양(郭子儀, 697~781)은 조선 전기까지는 주로 감계적인 성격의 초상화로 그려졌으나, 후기에 이르러 만복과 장수를 누린 인물로 묘사되며 곽분양행락도라는 장식화로 정착되었고 19세기 궁중 가례에 빠짐없이 배설되었다. 이처럼 장수와 다자다손을 누린 실존인물이나 수많은 남자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길상화는 자연물에 빗대어 길상을 표현한 화조화나 영모화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복에 대한 염원을 드러낸다. 사회 전반적으로 기복풍조가 만연해지면서 그림에서도 길상에 대한 바람이 심화되었던 것이다.
일례로 기존에는 함께 그려지지 않던 소재나 도상이 절충되는 현상이 주목된다. 궁중장식화의 경우 이러한 양상은 백자도에서 두드러지며, 서수도 중에서는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서수낙원도> 병풍이 대표적이다.(도1) 이 그림은 청록산수를 배경으로 다양한 동식물을 그린 화원화풍의 10첩 연폭병풍이다. 용·봉황·기린·난조와 같은 다양한 서수가 한 화면에 그려진 것도 이례적인데 여기에 다양한 동물이 추가되면서 새로운 유형의 영모화가 등장했다.
화면은 크게 학·사슴·기린이 위치한 우측 네 폭, 봉황·오리·공작·난조가 있는 중앙의 네 폭, 마지막으로 용과 거북이 자리한 좌측의 두 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물들뿐 아니라 소나무, 복숭아나무, 대나무, 오동나무, 모란, 연꽃, 바위, 폭포, 구름 등 등장하는 모든 자연물은 궁중장식화에서 길상을 나타내는 주요 소재들인데 이 중 대부분은 장수를 의미하는 십장생도와 관련이 있다.

도3 <서수낙원도> 오리 부분

십장생도와의 연관성은 구도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서수낙원도>의 구도는 크게 화면 좌측의 연지蓮池와 하늘, 중앙의 육지 그리고 우측 원경의 폭포수로부터 이어지는 계류로 구분된다. 이러한 구도는 화면 한 쪽의 넓은 수면이 반대편 육지와 대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십장생도와 유사하다. 특히 계류 왼쪽에 위치한 청록의 바위, 그로부터 뻗어 나온 복숭아나무가 그려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본과는 더욱 밀접해 보인다(도2).
전형적인 십장생도에 새로운 조수와 화초가 추가되어 화면에 변화가 생겼다. 가장 왼쪽에 용이 배치되면서 연못의 위치가 화면 안쪽으로 들어왔고, 연꽃과 오리가 등장했다. 본래 화면 중앙의 육지를 차지하고 있던 소나무와 사슴은 새롭게 등장한 봉황과 오동 그리고 기린으로 인해 우측으로 밀려났으며, 소나무 가지에 깃들던 학 역시 자리를 옮겼다. 결과적으로는 중앙의 육지가 축소된 꼴이다. 새로운 도상이 추가되었을 뿐 십장생의 구성물 중 빠진 것은 없다.
<서수낙원도>에는 서수, 십장생과 더불어 다자다손을 기원하는 오리·공작·연꽃 등도 등장한다(도3). 사실 이 그림이 담고 있는 다양한 의미 중 가장 노골적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다남의 의미를 내포한 길상문이다.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조수는 새끼를 대동하고 있는데, 새끼와 함께 그려진 암수 한 쌍의 동물은 부부화합과 다남을 의미한다.
이 그림에서 용·봉황·기린·난조는 내전과 별궁을 장식했던 서수도의 경우처럼 왕실의 득남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된 제재라고 생각된다. 상서의 표상이자 왕실을 상징하는 서수에 다남의 길상을 덧입힌 것이다. 따라서 <서수낙원도>는 장수길상을 의미하는 대표적 화제인 십장생도, 다자다손을 상징하여 궁중에서 즐겨 그려진 화조도, 그리고 상서와 길상이 중첩된 서수도가 절충된 형태로 볼 수 있다. 다양한 도상 간의 결합은 결국 길상적인 성격이 심화된 것을 의미한다.
<서수낙원도>에 보이는 길상의 심화는 유독 9종류의 동물을 함께 그린 점에서도 드러난다. 예로부터 중국에서 숫자 9는 양陽의 수로서, 길하게 여겨져 왔다. 때문에 길상 도안 가운데에도 ‘구추봉’, ‘용구자龍九子’, ‘구여九如’ 등 숫자 9를 사용한 예가 많다. <서수낙원도>에는 9종류의 동물들이 11마리씩 그려져 있어, 총 99마리로서 길상의 의미가 극대화되어 있으며 특히 다남의 길상이 강조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궁중장식화 중 <서수낙원도>와 동일한 유형은 아직 확인된 바가 없으나,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의 <십장생 나전주칠 농>, <십장생 나전주칠 문갑> 등에는 사슴, 거북, 학의 장생물과 봉황, 기린 등이 함께 시문되어 있어 이러한 조합이 왕실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4 <서수도> 8첩 병풍, 19세기 이후, 지본채색, 각 111.0×54.5㎝, 개인 소장

서수 도상, 궁중에서 민간으로 확산

19세기에는 다양한 통로로 궁중회화가 민간으로 퍼져나갔다. 관원들이 주문한 계병은 도화서 화원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이는 궁중 양식의 회화가 상류층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민간에서 서화매매가 활발해진 점이나, 1894년 도화서의 혁파는 화원들이 민간의 수요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동기가 되었다. 수요의 대부분은 가내를 치장하는 장식화였다고 생각되며 그 중에서도 특히 길상화가 큰 부분을 차지했다.
서수도 역시 민간에까지 확산되었는데, 감계적 성격의 서수도보다는 새끼들과 함께 그려지거나 다른 길상물과 절충된 유형의 서수도가 제작되었다. 민간의 서수도는 왕실을 상징하던 상서의 의미가 퇴색되면서, 단순히 궁중화풍을 모방·답습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개인 소장의 <서수도> 8첩 병풍은 상류층으로 확산된 궁중화풍을 잘 보여준다(도4). 각 폭에 용, 봉황, 사슴과 거북 등을 그린 이 병풍은 연폭은 아니지만 역시 서수와 장생 소재가 결합되어 있다.
그중 거북이 연잎 위에 올라가있는 모습이 특이한데, 이 도상은 민화에서는 자주 보이지만 궁중장식화에서는 <서수낙원도>에서만 발견되는 도상이어서 더욱 주목된다(도5). <서수낙원도>와 개인 소장 <서수도> 병풍 그리고 다수의 민화에서 발견되는 특정 도상의 모습은 궁중회화가 민간으로 저변화된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 소장의 <서수도> 병풍이 상류층으로 확산된 서수도의 일례를 보여준다면 민화 <십장생도> 12첩 병풍은 서수도가 일반계층으로까지 넓게 저변화된 양상을 보여준다(도6). 십장생이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전형적인 십장생도와는 다르게 1~3폭에는 사슴·소나무·학의 장생물, 4~5폭에는 물 위를 헤엄치는 거북과 잉어, 6~9폭에는 괴석과 산을 배경으로 피어난 각종 꽃과 영지, 10~12폭에는 기린·봉황·대나무가 그려져 있다. 하나의 연폭병풍은 아니지만 <서수낙원도>처럼 장생도, 화조도, 서수도 등이 절충된 유형으로서 궁중회화가 민간으로 전이되면서 어떻게 민화화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민화에서 서수 도상은 십장생뿐 아니라 화조영모도, 책가도, 호렵도에도 등장하였다. 궁중장식화의 도상을 차용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는 모습이다. 서수의 본래 성격과 상관없이 책가도의 기물과 함께 배치되거나 호렵도에서 사냥의 대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본래 상서를 상징하여 왕실 고유의 주제였던 서수가 길상적인 성격으로 변모하였고, 궁중장식화의 저변화와 함께 민화로까지 확산되어 다양하게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도5 <서수낙원도> 거북 부분

왕실을 상징하던 서수, 민간에서 길상적 성격으로 변모돼

서수는 전통적으로 상서의 대표 제재였으며, 오랫동안 왕실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시각화되어 왔다. 19세기 서수도에 대한 가장 풍부한 기록을 담고 있는 규장각 차비대령화원 녹취재의 화제를 살펴보면, 화제의 대부분은 상서로서의 서수를 강조하는 내용이며, 제왕의 본분을 상기시키는 감계적인 성격과 함께 왕실을 美化하는 성격을 띤다. 반면 장식화로 그려진 서수도는 새끼들과 함께 그려지거나 복숭아, 불수감 등의 소재를 추가하여 길상적인 성격을 보인다. 본래 서수가 갖는 상서의 성격에 길상이 중첩된 것으로, 서수는 왕실의 번영과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데 가장 적합한 소재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서수낙원도> 병풍은 용·봉황·기린·난의 서수에 십장생과 화조도가 결합된 독특한 형태의 장식병풍으로, 다양한 도상의 절충을 통해 길상적인 성격이 심화되어 있다. 등장하는 아홉 종류의 동물들은 모두 아홉 마리의 새끼를 대동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유행했던 구추봉 도상의 영향으로, 이 그림에는 특히 다자다손에 대한 염원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현재 궁중장식화 중 <서수낙원도>와 동일한 유형은 확인된 바가 없지만 서수와 장생 도상이 습합된 모습이 민화에서도 발견되어, 이러한 유형이 확산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민간에서 서수도는 왕실을 상징하던 상서의 의미가 퇴색되면서, 단순히 궁중화풍을 모방·답습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한편 책가도나 호렵도 등에 등장하는 서수는 궁중장식화의 도상을 차용하는 단계에서 나아가 새로운 형태로 변용되는 모습인데, 결국 서수는 더 이상 상서의 제재가 아닌 길상적인 성격으로 완전히 변모한 것이다. 궁중 서수도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민화로 확산되어 갔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다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도6 <십장생도> 12첩 병풍, 19세기 이후, 지본수묵채색, 각 91.0×31.0㎝, 개인 소장


[참고문헌]
박정혜 외, 《조선 궁궐의 그림》
이재은, <19세기 궁중 서수도의 양상과 특징>, 《미술사학연구》(2016)



이재은 | 독립기념관 학예연구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미술사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한양대학교박물관 학예연구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독립기념관 학예연구사이다.
궁중회화와 민화와의 관련성을 다룬 연구에 대해 관심이 많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