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문화 잇는 융합적 사고 갖춰야




정병모 미술사학자가 지난 3월 경주대학교 교수직을 퇴임하고, 온라인 민화교육기관 한국민화학교 교장으로서 민화인생 제2막을 연다. 국내외에서의 온라인 민화특강, 《한국의 채색화》 두 번째 시리즈 출간, 국내외 민화 순회전 준비 등으로 더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요즘이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민화계 스타 이론가 정병모 미술사학자가 지난 3월 경주대학교에서 퇴임식을 가졌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보낸 8년(1983-1990)과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28년(1993-2021)의 시간까지, 학자와 연구자로서 걸어온 36년여의 삶을 일단락 지은 것. 그의 말을 빌어 ‘민화만 죽어라고 했던’ 나날이었다. 일찍이 민화가 지닌 엄청난 잠재력을 가늠하고, 90년대 중반 경주대학교에 문화재학과 대학원 과정 내 민화 강좌를 개설하여 민화 박사 14명을 양성했다. 한국민화학회와 (사)한국민화센터 창립에도 기여했으며 한국민화학회 회장 및 (사)한국민화센터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방학마다 전 세계 박물관, 미술관을 다니곤 했는데, 2001년 프랑스 기메동양박물관에서 개최한 이우환 기증 민화전 <한국의 향수>을 보고 나서 확신했습니다. ‘민화야말로 세계적인 콘텐츠구나.’ 민화 전시가 대성황을 이룬데다 해외 큐레이터들 역시 ‘한국적인’ 민화에 대해 큰 호평을 하더군요.”
처음부터 민화를 세계무대의 선상에 놓고 보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는 중국, 베트남, 일본 등 동아시아 및 유럽까지 세계 각국의 전통미술과 우리 민화를 교차 연구하여 여러 편의 논문을 저술했고 민화와 관련해 국제 규모의 세미나를 유치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2005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일본민예관과 함께 연 기획전 <반갑다! 우리민화>의 학술대회, 이듬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최한 동아시아 민화 세미나 등이 그 예다. 민화와 관련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보고 듣고 연구하길 수십 년, 3시간짜리 민화강좌를 맡는다면 각기 다른 주제로 3년 동안 강의할 수 있을 정도로 콘텐츠도 두둑하다.

민화계 미네르바스쿨 향해

앞으로는 온라인 민화교육기관인 한국민화학교(The School Of Minhwa, 이하 TSOM) 교장으로서 민화인생의 새 장章을 열어간다. 경주대에 몸담은 동안 각종 강의며 행사 일로 수도권을 오가며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몸소 체험했기에 진작부터 지역, 인원에 구애받지 않는 온라인 사업에 관심을 가져왔다. 지난 3월 문을 연 TSOM은 민화의 실기와 이론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에 그치지 않고, 온라인 민화 갤러리, 민화 옥션, 민화 아카데미, 민화 아카이브 등 종합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추구한다. 이 과정에서 정병모 교장이 롤모델로 삼은 곳이 바로 ‘미네르바스쿨’이다.
미네르바스쿨은 별도의 캠퍼스 없이 100% 온라인 방식으로 강의와 토론 등을 진행하고 해외 곳곳에서의 현장 실습형 교육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의 인재를 양성하는 곳으로 유명한 명문 대학이다.
“미네르바스쿨을 조사하며 눈여겨 본 지점이 바로 ‘문화 연결 운동’이예요. 온라인 학교이지만 기숙사는 7개국에 있지요. 학생들은 7개국의 문화를 경험하고 이를 서로 연결시키는 방법을 터득하며 글로벌 리더로 성장합니다. 민화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민화뿐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유럽 민화 등을 꾸준히 연구하고 관련 지식을 상호 융합할 수 있을 때 뛰어난 화가, 이론가, 기획자로 성장할 수 있어요. 우리만의 리그에만 치중하면 민화붐도 사그라들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TSOM은 정병모 교장이 주창해온 ‘민화의 세계화’를 위한 전초기지인 셈. 일단 그부터가 최근 온라인 줌강의를 연 프린스턴 대학교를 포함해 칠레 카톨릭 대학교, 일본 도시샤 대학, 중국 남경 대학교, 영국 소아스 런던대학교 등 외국 곳곳에서 민화 강의를 진행했으며 해외 민화전을 기획하는 등 외국과 활발히 교류 중이다.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기 전에는 해외 답사 프로젝트인 ‘민화를 세계로’를 기획하여 참가자들과 아시아, 미국 등에 위치한 민화 관련 유적지, 미술관 등을 함께 답사하기도 했다. 이제까지 총 4회를 진행했는데, 참가자들의 평이 좋아 신청자 모집 공지를 띄우면 금세 정원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팬데믹 상황이 진정되면 ‘민화를 세계로’ 또한 재개할 예정이다.

그림만 그리다간 한계에 부딪쳐

현재 TSOM에는 원데이 클래스를 포함해 2년 과정의 프라임 클래스 등 수준별, 주제별 다양한 실기 강좌가 마련돼 있다. 강사진의 경우 소위 민화 1세대로 불리는 작가부터 창작민화로 주목받는 현대 민화 작가까지 폭넓은 라인업을 자랑한다. 온라인 수업의 특성상 수강생은 수강 기간 내 언제든 강의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영상을 통해 붓을 쥐는 법이나 물감을 개는 법과 같은 기본은 물론, 작가들의 실기 노하우까지 상세히 배울 수 있다. 미술사학, 회화 문화재 복원 전문가들로 구성된 강사진의 이론 강좌도 대대적으로 개설할 예정이며 추후 민화뿐 아니라 인문학 강의까지도 두루 선보일 계획이다.
“미술대학교만 하더라도 한 명의 화가를 배출하기 위해 동서양 회화사, 색채론, 미학 등 다양한 지식을 가르칩니다. 화가 역시 세계 미술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객들에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지요. 그림만 그리다가는 결국 한계에 부딪칩니다. 민화 교육기관이 필요한 이유예요.”

《한국의 채색화》 두 번째 시리즈 발간 예정

정병모 교장은 올 여름 조선시대 궁중회화와 민화 걸작을 집대성한 《한국의 채색화》시리즈도 새로이 발간할 예정이다. 그가 2015년 펴낸 《한국의 채색화》는 국내외 유명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 엄선한 명작 900여점이 실린 도록이다. 민화 작가들 사이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본 교재’로 통하며 2015년 국립중앙도서관이 엄선한 천만 권 장서에 들기도 했다. 이는 국내에서 일고 있는 민화붐뿐만이 아니라 최근 경매시장에서 낙찰액 순위 1, 2위를 다투는 고미술품이 궁중화, 혹은 민화와 같은 전통 채색화라는 점과도 궤를 같이 한다.
“한국 회화사에서 이렇게 놀라운 작품들을 어떻게 단 한 점도 다루지 않았는지…. 과거 문인화, 수묵화에 편중된 시각 때문에 작품의 진가를 미처 알아보지 못한 거죠. 최근 채색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작들이 대거 시장으로 나오는 추세예요. 한 경매사 관계자는 ‘이 책 덕분에 전통채색화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며 감사인사를 전하더군요. 과거 속화로 폄훼되던 그림의 위상을 높이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게 돼 보람을 느낍니다.”

서로 다른 문화 연결할 줄 알아야 세계적인 인재로 성장

기획자로서도 바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19년 월간민화와 손잡고 개최한 <책거리Today>가 큰 반향을 일으킨 데 이어 오는 5월 프랑스 낭뜨에서 개최되는 ‘한국의 봄’ 축제에서 메인 전시로 초대받아 그 열기를 새로이 이어갈 예정이다. 이후 6월~10월까지 프랑스 한국문화원, 11월 스페인 마드리드 한국문화원에서 순회전을 진행한다. 지난 2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진행한 <책거리Today> 앵콜전 <책에서 피어난 그림 책거리 展> 또한 호평일색이다. 해당 전시를 관람한 전국각지의 도서관, 공기관 관계자들로부터 ‘여기에서도 책거리 전시를 열어 달라’는 러브콜이 쏟아져 국내 도서관 순회전 또한 별도로 구상 중이다.
한류붐을 타고 외국에서 민화를 찾는 빈도 또한 부쩍 늘었다. 일례로 최근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럿거스대학교를 비롯해 스투니브룩대학교 등 미국에서 한국어학과 전공 등 한국 관련 학과를 마련하며 민화강좌도 함께 개설하는 분위기다. 학교측에서 가장 한국적인 문화 콘텐츠로 민화를 택한 것. 이같은 분위기에서 정병모 교장은 해외 대학에서 민화강의와 더불어 민화 걸기 운동도 펼치고 있다. 그의 주선으로 미국 남가주대학교 동아시아 도서관에 송규태 화백의 <까치호랑이>,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고 캠퍼스에 남정예 작가의 <책거리> 작품, 칠레 카톨릭대학에 최용순 작가의 <까치호랑이> 등 외국 내 수많은 학교에서 민화를 내걸었으며 최근에는 프린스턴 대학교가 동아시아학과 건물에 문선영 작가의 책거리 작품을 전시했다. 전방위에서 민화를 알리는 정병모 교장, 역설적이게도 민화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고 거듭 당부한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시야를 넓혀 국내외 문화, 현대의 미술과 민화를 서로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것만이 민화가 진정 발전할 수 있는 길입니다.”
민화의 세계화를 위해 오늘도 내달리는 정병모 교장, 그의 폭넓은 행보는 멀지 않은 시기에 도래할 민화계의 또 다른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