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벽사와 길상을 위한 그림, 세화(歲畵)

조희영 (천향국색)

이 글은 한국진채연구회의 기획 전시 ‘1000년 전통의 부활, 세화’전에 대한 한성대 강관식 교수의 해설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애초 전시회 해설로 쓰여진 글이지만, 세화의 본질과 핵심을 알기 쉽게 정리하고 있어 민화학도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지식을 전달해 주기에 이를 정리 게재한다. (※관련 전시 정보 바로가기)

1천 년 이상 이어온 소중한 전통

예전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긴 뜻 깊은 시간을 맞으면, 경건한 마음을 담은 제의祭儀를 행했다. 제의는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고, 영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삶에 품격을 부여했다. 제의에서 그림은 문화적인 꽃과 같았다. 시각적 효과와 감성적 울림이 큰 그림은 제의를 더욱 뜻 깊고 경건한 시간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그림이 늘 생활 속에서 우리의 삶과 함께 했다.
특히 우주가 새롭게 열리는 새해가 되면, 전국의 집안 곳곳이 살아있는 거대한 그림 전시장으로 변했다. 대문에는 사악한 기운을 막고 액을 제거하는 그림을 붙였다. 그리고 대청과 사랑방, 안방 같은 중요한 생활공간에는 장수를 빌고 상서로운 복을 비는 그림들을 벌려놓았다. 새해를 맞아 집안 곳곳에 붙인 이런 그림들을 “세화歲畵”라 불렀다. 새해 드리는 인사를 “세배歲拜”라 하고, 새해에 먹는 술과 음식을 “세주歲酒”와 “세찬歲饌”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도화서 화원들이 수백 천 장의 세화를 그려냈다. 가장 좋은 것은 대궐과 왕실에서 사용하고, 나머지는 신하들과 귀인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민간에서는 화랑 역할을 했던 청계천의 광통교 지전紙廛에서 그림을 사서 붙였다. 지방의 선비들은 연말에 자손들과 함께 직접 그려 집안 친척들에게 선물로 나누어주기도 했다. 이로 인해 섣달이 되면 전국이 하나의 거대한 그림 선물 축제로 들썩였고, 새해가 되면 집안 곳곳이 그림 전시장으로 변하며 경건하고 화려한 그림 축제가 벌어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0세기 들어 이런 소중한 전통이 단절되고 말았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연하장年賀狀’이라는 형태로 그 자취가 일부 남아있었으나, 근래는 이마저 사라져 세화의 흔적이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9세기 말에 처용處容 그림을 대문에 붙여 역병과 악귀를 쫓던 풍습에서부터 잡아도 최소한 1000년 이상이나 된 소중한 전통이 우리 시대에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저명한 미술관 중심의 고원하고 심각한 현대미술 담론과 작품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일상적 삶과 생활공간 속에서 함께 했던 경건하고 소박한 전통미술 담론과 작품도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생활 공간을 장식한 길상과 벽사의 그림

“1000년 전통의 부활, 세화”전은 우리의 소중한 전통미술 담론과 기법을 올바로 계승하고 현대적으로 재창조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진채연구회’가 연말연시를 맞아 특별히 준비한 기획 전시이다. 세화의 특성과 전통을 가능한 충실히 재현하고 현대화시키기 위해 전시 장소도 한옥의 옛 모습을 그대로 살린 가회동의 ‘갤러리 한옥’으로 잡았다. 그리고 작품도 전통시대의 고전적인 세화를 재현한 것과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했다. 그리하여 전시는 전통시대 “세화”의 내용과 특성에 맞추어 크게 3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사악한 기운을 막고 액을 제거하는 “벽사邪와 제액除厄”을 중심으로 한 작품이다. 이런 그림들은 통상 대문에 많이 붙였기 때문에 “문배門排”라고 불리기도 했다. 용맹하고 신령스런 능력을 갖춘 장군으로 유명해 문신門神으로 널리 사용된 울지공尉遲恭과 진숙보秦叔寶는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신령한 능력을 지닌 용과 호랑이, 해태, 닭, 개의 영수靈獸도 마찬가지이다. 처용處容은 9세기에 시작된 세화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처용의 모습을 고전적으로 재현한 작품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은 더욱 특별한 의미가 담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작품들은 주로 갤러리의 입구와 대문에 전시해 세화의 전통과 특성을 더욱 살리고자 하였다. 전시회 개막식에 처용무處容舞를 추는 특별한 의식을 갖기로 한 것도 세화의 원류인 처용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두 번째는 새해가 되는 2015년이 십이간지十二干支 상 을미년乙未年 ‘양羊의 해’이기 때문에 특별히 양을 소재로 한 그림들로 구성된 작품 군이다. 먼저 고전적인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가운데 양羊을 형상화한 신상을 재현한 그림을 갤러리 입구에 전시하여 벽사와 길상의 뜻을 함께 담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평화와 순종을 상징하는 양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다양한 그림들로 구성했다.
세 번째는 부귀富貴와 강녕康寧, 장수長壽, 희망希望 같은 상서로운 뜻이 담긴 “길상吉祥과 송축頌祝”을 위한 그림이다. 먼저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은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염원이 담긴 그림이고, 송죽매松竹梅로 이루어진 세한삼우歲寒三友는 불변하는 절개의 의미가 담긴 그림이다. 신선神仙과 괴석怪石은 물론, 모란꽃, 연꽃, 명자꽃, 해바라기, 석류, 복숭아 같은 상서로운 뜻이 담긴 식물들과 고양이, 나비, 원앙, 잉어, 금붕어처럼 길상의 뜻이 담긴 소재들을 상상적으로 결합시켜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확장하고 강조한 그림들은 길상과 송축을 위한 가장 대표적인 그림들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길상과 송축의 의미가 담긴 그림들은 통상 대청과 사랑방, 안방처럼 가장 중요한 생활공간에 배치했기 때문에 이를 살려 이런 그림들은 주로 갤러리 중앙의 중심 공간에 전시했다.

 

글 : 강관식(한국진채연구회 회장,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한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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