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풍경화 40.0×32.5cm. 실크스크린. 1970년대. 근현대디자인박물관 소장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동의 순수함 간직한 풍경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서름의 날을 참고 견디면 / 멀지 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 마음은 항상 미래에 살고 모든 것은 순간이다 / 그리고 지난 것은 그리워하느니라

젊은 시절 한번쯤 읊조려 봤을 알렉산드르 세레게예비치 푸쉬킨(1799~1837)의 대표적인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다. 38세에 요절한 러시아 작가의 시로서 고난과 좌절에 쌓여 힘겹게 사는 삶을 위로하고 희망을 북돋우는 시구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평소 서민과 농민의 고달픈 삶을 노래했던 시인의 시에 어울리게 이 이발소그림은 붉은 해가 지는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소를 몰아 쟁기로 농사짓는 농부를 묘사하고 있다. 이런 풍경을 예전엔 도심 근교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지만, 각종 기계와 트랙터로 농사짓는 일이 잦아지면서 소를 모는 농부의 한가로운 모습은 이제 이발소그림에서나 보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나라 이발소그림은 당시의 시대배경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잘 알다시피 원래 서양화 속에는 글이 없으며 동양화 속에는 반드시 글이 함께한다. 그러나 이 이발소그림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농촌 풍경을 담은 반면 제작기법은 서양식 실크스크린이다. 거기다 화면 위쪽에는 서양의 시가 빼곡히 들어가 있다. 해방공간의 미군정을 거치면서 발발한 6.25 이후 혼란한 정세는 계속되고 미군 주둔의 영향력으로 동서양의 문화혼재가 다반사로 일어나던 혼란한 시대의 흐름이 이 이발소그림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하단의 붉은색 노을과 상단의 파란색 바탕은 보색대비로 어설프다. 거기다 싸구려 하늘색 액자가 키치의 전형적인 느낌을 더한다. 모든 것이 부조화한 시대배경이 그대로 녹아 있는 70년대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컴퓨터와 첨단기기로 대변되는 요즈음 이런 노동과 느림의 가치가 새삼 높게 평가되는 시점에 눈길을 끄는 이발소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글 : 박암종(근현대디자인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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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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