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이 쉼과 같다 쉼 박물관

삶과 죽음이 쉼과 같다 쉼 박물관

흔히 인간의 생을 여러 단계로 구분할 때 그 시작에는 생이, 끝에는 죽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의 탄생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으로 여기지만, 죽음은 함부로 언급하기조차 불길한 것으로 치부되는 이유다. 그런데 이 같은 편견에 당당히 맞서는 사립박물관이 있다. 전통장례용품을 관람하며 죽음과 삶의 공존에 대해 되새길 수 있는 쉼 박물관을 찾았다.

━━영혼을 태우는 가마 요여 전시실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는 1층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좌측으로 요여 전시실이 있다. 요여는 영혼이 타는 가마로 애장품과 신주 등을 싣고 상여의 맨 앞에 나간다. 죽음과 동시에 분리된 영적인 것이 육신보다 앞서 움직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시신을 산에 매장하면, 육체는 산에 묻히지만 그 혼은 요여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빈소에 머문다는 것. 요여 전시실에는 죽음을 알리는 서찰인 부고장 등 다른 전통장례물품도 전시되어 있어 전통장례가 어떻게 치러지는지 이해할 수 있다.

쉼 박물관
쉼 박물관

 

━━이승에서 타는 마지막 가마 상여 전시실

요여 전시실을 관람하고 우측으로 가면 상여 전시실이 나온다. 상여는 시신을 운구하는 가마로, 망자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타는 가마다. 상여의 외부는 집의 형태를 본떠 만들었으며 그 규모와 장식을 통해 지위나 권력, 재산을 가늠할 수 있다. 상여 전시실에는 실제 경상도 지방 어느 양반 가문에서 사용했던 목상여가 있다. 시신 운반은 크기에 따라 24명~36명이 들고 옮길 정도로 많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는 상여가 거의 쓰이지 않을 뿐 아니라 구경하기조차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꽃상여는 장지에서 태워서 없애버리는 반면 목상여는 조립식으로 장지에서 가져와서 상여막을 지어 보관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보존이 가능했다.

쉼 박물관
쉼 박물관

 

━━꼭두를 이용한 스토리텔링 테마관

꼭두는 상여에 장식하는 인형의 일종으로 죽은 영혼을 이승으로 모시는 매개체라 할 수 있다. 상여전시실과 이어진 테마관은 일제강점기 이후 꼭두들을 이용해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하여 전시해놓았다. 양장을 입은 꼭두와 일제강점기에 처음 들어온 페인트를 칠한 꼭두 등이 전시되어 있다. 테마관의 꼭두는 ‘이수일과 심순애’, ‘심청전’, ‘오성과 한음’ 등 우리 이야기를 테마로 전시되어 있어 색다른 재미를 준다.

쉼 박물관
쉼 박물관

 

━━상여의 앞뒤에서 악한 기운을 막다 용수판 전시실

용수판 전시실은 테마관과 나란히 있다. 용수판은 상여의 앞뒤를 가로막는 판으로 용, 호랑이, 뱀, 물고기, 도깨비 등 다섯 가지가 조각되어 있다. 도깨비는 상여에 붙어 악한 귀신을 막아주고, 뱀은 불사의 의미를, 호랑이는 충효를 상징한다. 간혹 물고기를 물고 있는 도깨비가 보이는데, 재물을 더 잘 지켜달라는 의미에서 도깨비가 좋아하는 물고기를 입에 물려준 것. 물고기는 눈을 안 감는 생물이기 때문에 창고를 지켜주고 부유하게 한다.

쉼 박물관
쉼 박물관
 
20대부터 수집한 전통장례용품, 남편 죽음 계기로 전시 결심

죽음과 삶 모두 쉼과 같다. 쉼 박물관의 개관은 이 간단한 명제에서 시작됐다. 설립자인 박기옥 관장에게 남편의 죽음은 그동안 접해왔던 죽음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시부모와 친정부모를 잃었을 때에는 죽음이 일종의 사라짐이라 생각했는데, 건장했던 남편이 목사님의 아멘 소리와 함께 잠자듯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보며 차라리 휴식에 가깝다고 느꼈다. 편안히 꿈을 꾸는 듯한 남편의 죽음은 박 관장이 박물관 건립을 결심한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20대부터 모아왔던 상여, 요여, 용수판, 꼭두 등 전통장례용품을 정리해 40년간 생활해오던 자택에 쉼 박물관을 열었다. 물론 남편의 죽음을 겪은 후 하루아침에 박물관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박기옥 관장은 젊었을 적부터 소박한 민속품에 큰 관심을 가지고 수집을 해왔다. 수집품의 가격상승을 기대하거나 박물관을 개관할 목적으로 모았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모든 민속품들을 두루두루 모았다. 그러던 중 상여에 달린 인형(꼭두)들이 좋아서 그와 관련된 물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인사동, 장한평, 굴레방 다리, 황학동 등지를 그야말로 홀린 듯이 돌아다녔다. 지방 여행을 가도 고물상, 엔틱샵부터 방문했다. 일부 수집품을 이용해 집안을 장식하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처음에는 나무라던 남편도 가장 큰 조력자가 되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큰 사이즈로 보실 수 있습니다.

거주 공간과 결합한 전시실, 다채로운 특별 전시까지

쉼박물관은 죽음과 전통장례문화에 대해 다루는 만큼 소장품 자체도 특별하지만, 가장 큰 특징은 박물관 구조에 있다. 실제 살던 가정집을 리모델링했고, 지금도 박 관장이 거주하는 생활공간이기도 하다. 박 관장은 자녀들의 유학 뒷바라지를 하며 외국의 여러 박물관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정집을 개조한 소담한 박물관에 매료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집을 전면 개조해 일반적인 구조의 박물관을 열 수도 있었지만, 보다 차별화된 개성 있는 박물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현재와 같은 형태의 박물관을 만들었다. 지하 1층은 주차장과 학예사실 그리고 갤러리가 있는 공간으로 주로 특별전시가 진행된다. 쉼 박물관의 특별전시는 잊혀져가는 우리 문화를 보존하는 동시에 현대문화예술과 접목시켜 새로운 문화공간이 되고자하는 기획의도로 보다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1층은 실제 사용하는 주방이 분리된 공간으로 있고, 나머지 거실 전체가 상여, 요여, 용수판 전시실 등이 있는 메인 전시실이다. 2층에는 새, 학, 까마귀, 용, 봉황 등 하늘을 나는 꼭두를 전시한 날것 전시실이 있는 동시에 박기옥 관장의 집무실 겸 작업 공간이기도 하다. 박 관장은 이곳에서의 보자기 작업을 통해 매년 곳곳에서 전시회를 여는 등 베테랑 공예작가로서 인정받고 있다.

interwiew. 쉼 박물관 박기옥 관장

“점점 멀어지는 전통장례, 국장과 국민장에서라도 복원해야”
쉼 박물관 박기옥 관장상여와 요여, 꼭두, 부고장 등 쉼 박물관 곳곳의 전통장례용품은 하나같이 낯설게 느껴진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왔는데, 언제부터인가 전통장례와 멀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박기옥 관장은 전통장례에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그럴 여유가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산업화 물결에 떠밀려 바쁘게 살다보니 우리 사회가 상여를 이용한 전통장례와 멀어졌습니다. 운구를 위해 많은 인력이 필요한 전통장례를 이어가기 위한 형편이 여의치 않았지요. 모두가 각박하게 살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박기옥 관장은 인터뷰 도중 반복해서 현재의 국장과 국민장에 유감을 표했다.
“사실 요즘 어느 자리에서건 강조하는 한 가지 주장이 있어요. 국장, 그리고 국민장만이라도 전통장례를 치르자는 이야기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상여가 아닌 국화가 가득한 운구차가 등장했거든요. 하지만 단순히 서양의 장례를 따라한 국화와 리무진에는 우리의 얼이 깃들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저의 작은 주장일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관람시간_하절기(4월~11월) : 화요일~토요일 10:00~18:00 / 일요일 14:00~19:00
  • 관람시간_동절기(12월~3월) : 화요일~토요일 10:00~17:00 / 일요일 14:00~19:00
  • 관람요금 : 대인 10,000원 / 소인 5,000원
  • 문의 : 02-396-9277

 

글 : 박인혁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저자에 관하여

월간 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