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갓’들을 위하여, 중요무형문화제 제4호 ‘갓일’ 기능보유자 정춘모

‘갓일’ 기능보유자 정춘모
중요무형문화제 제4호 ‘갓일’ 기능보유자 정춘모

한때는 선비정신이요, 자존심이었다. 그 자체가 신분을 나타내고 지위를 의미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렀고, 모든 것이 변했다. 누구도 착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고리타분함의 대명사로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쓰는 사람은 물론이고 만드는 사람도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있다. 갓을 만들며 꿋꿋이 전통을 지켜온 정춘모 장인을 만났다.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일꼬? 전통문화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이라면 갓을 보고 그저 챙이 넓은 검은 모자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갓은 단순한 의복을 넘어 선비의 인격을 그대로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초기에는 햇볕을 가리거나 비를 막는 등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됐지만, 형태와 제작법이 발달하면서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관모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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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자 없던 통영갓 맥 잇다

‘갓일’ 기능보유자 정춘모정춘모 장인은 1957년부터 갓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포목점을 비롯한 도매상이 여럿 들어서있는 대구에서 처음 갓일을 접했다. 대구에 갓을 만드는 공방이 크게 두 곳 있었는데, 그 산하에 통영갓 장인들이 있었다. 그는 김봉주 입자장, 모만환 양태장, 고재구 총모자장 밑에서 갓 만드는 것을 배웠다.
전국의 갓 중에서도 본디 통영갓은 품질이 최고로 꼽히는 명품 갓으로, 조선시대에 대원군이 갓을 맞추려고 통영까지 사람을 보냈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였다. 그가 갓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부에서는 인간문화재 제도를 통해 갓 장인을 지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즈음에는 이미 갓 수요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갓일을 하던 동료들도 하나둘씩 떠나갔다. 조선시대부터 갓 재료를 만들어온 장인들의 나이는 일흔을 훌쩍 넘었고, 후계자가 없는 상황이었다. 정춘모 장인은 이대로는 맥이 끊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통영갓의 원형을 이어가기 위해 갓의 재료를 만드는 분들의 제자로 들어가서 모든 것을 배웠다. 그렇게 분업화돼있던 갓 제작일을 모두 배워서, 맥이 끊어질 뻔했던 통영갓을 계속 만들어왔다.

사극에서도 나일론 갓 쓰는 현실

청춘과 세월을 바쳐 통영갓의 모든 것을 익히고 만들어왔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고 생활이 바뀌었다. 정성들여 만든 갓이지만 이제는 사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전통이 소중하지만 사람들이 억지로 갓을 쓰고 다니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요즘 인기몰이를 하는 사극에는 종종 쓰이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사극에서 쓰는 갓은 모두 가짜야. PVC나 나일론으로 만든 가짜 갓. 기계로 1분에 수십 개씩 찍어내는 거지. 그래서 우리는 사극을 안 봐요. 속상하니까.”
아무리 역사적 고증에 신경쓰는 사극 드라마나 영화도 진짜 갓을 쓰는 경우는 없다고 정춘모 장인은 말한다. 제작비 때문일 것이다. 이해가 가면서도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래도 딱 한번 TV 드라마에 정춘모 장인이 만든 갓이 등장한 적이 있다. KBS TV 문학관에서 소설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를 영상화한 작품이다. 이문열 원작의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는 일평생 갓일을 해온 장인이 만든 마지막 갓에 대한 이야기다. 배우 신구가 주연을 하고 장기오 PD가 연출한 이 작품에서 정춘모 장인은 작품에 나온 갓을 제작한 것은 물론이고, 주인공의 아버지로 잠깐 화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소설도 영상도 몇 번을 다시 봤어요.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을 쏙 담았는지 몰라. 사라지는 것에 대한 집착, 제대로 된 갓을 만들고자 하는 고집이 작품 속에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제대로 된 갓이 등장하는 유일한 드라마가 마지막 갓 장인에 대한 내용이라는 사실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 진짜 현실이다.

통영 12공방에서 시연하며 갓 문화 보존하고파

전통 그대로의 갓을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갓을 조금 더 실용적으로 만들 수 없을까? 아니면 갓을 만드는 기술을 이용해 다른 공예품에 접목시킬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시도인들 안 해봤겠습니까? 하지만 갓을 실용화시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이제는 갓을 판매하려는 생각을 말끔히 포기했어요. 대신 제대로 된 작업 공정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갓에 대한 수요를 미미하게 올리기 위해 전통을 버리고 변형시키느니 본연의 모습을 제대로 알리겠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딸깍발이 정신이 아닐 수 없다. 때마침 통제영 12공방이 복원되고 있다는 점은 그의 꿈에 힘을 실어주는 희소식이다.
통영에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수군의 지휘권을 가지고 다스리는 통제영이 있었다. 처음 통제영이 설치된 한산도에서는 각종 군수품을 만드는 기관이 있었고, 전쟁 후 전국의 공인들이 모여들어 발전하기 시작했다. 실제 통영 12공방은 통제영에서 필요한 각종 물품을 직접 제작하고 공급하기 위해 설치된 관아의 공방이다. 초기에는 군수품 위주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갓, 부채, 옻칠, 장석, 그림, 가죽, 철물, 고리짝, 목가구, 생활용품, 금은제품, 자개 등의 12가지 물품을 생산하는 공방으로 거듭났던 곳이다.
“진작 복원됐어야 했죠. 12공방에 대한 문헌이 많았지만 그동안 정부에서는 복원을 엄두도 내지 않았으니까요. 이제라도 다시 조성되는 것이 다행입니다.”
통영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갓일을 시연하는 일, 장인은 그것이 조금이나마 갓을 알리고 친숙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산대첩축제 날에는 하루에 2천 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갓 시연을 구경한다. 전통 공방을 재현한 공방에서 작업을 하니 도심 빌딩숲에서 갓을 만드는 것보다 큰 의미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평생의 동반자, 아내와 함께하는 갓일

‘갓일’ 기능보유자 정춘모평생 갓을 만들며 살아왔지만 혼자는 아니었다. 정춘모 장인의 곁에는 언제나 소중한 아내가 함께 했다. 올해로 31년 경력을 맞는 도국희 양태장은 전수자 과정을 끝내고 이수자로 등록된 상태다. 처음에는 일을 거드는 수준이었지만, 남편의 거듭되는 부탁을 결국 받아들였고 갈수록 심취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같은 일 하고 싶지 않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남편이 아닌 장인으로서의 진심이 느껴지니 거절할 수 없겠더라고요. 불교에서는 같이 수행하는 사람을 동반이라고 하잖아요. 같이 일하니 좋고, 오랫동안 함께 일하면 행복할 것 같아요.”
최근 <생활의 달인> 등 방송출연 기회가 자주 생기면서, 남편보다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단다. 아들 또한 입자장 전수자 과정을 밟고 있다고 말하는 부부에게서 갓에 대한 집념과 가족의 행복을 엿볼 수 있었다.

 

글 : 박인혁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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