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할 수 없는 상상력과 자유미, 우리 민화 세계화를 논하다

우리 민화 세계화를 논하다

조선시대 민화가들은 도대체 어떤 태도로 민화를 그려냈기에 그들의 작품이 오늘날 이렇게까지 세계인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더듬어 봄으로써 오늘날의 창작민화가가 작업할 때 붙잡아야 할 창작 요인이 감 잡히리라 믿으면서 이번 호의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앞에서 우리는 조선 민화가 세계적으로 크게 주목받게 된 것은 우리 현대민화가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적 문화 역사의 흐름의 궤적을 따라 저절로 찾아든 우연 때문이었음을 확인했다. 그렇게 됐던 것은 조선 민화야말로 우리 민족 미술을 대표할 수 있는 특별한 미술이었기 때문이라는 뜻도 된다. 우리 현대민화가들은 그저 조상 덕에 목에 힘주고 사는, 참으로 조상 복을 많이 타고난 이들이다. 그러나 이젠 우리도 선조 민화가들의 후예다운 능력이 있음을 세계만방에 뽐내 보여야만 할 때이다. 그러려면 선진님들의 창작정신의 중심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캐내어 내 것으로 삼아야 그 맥을 명쾌히 잇는 창작을 기대할 수 있겠다.

민화, 우리 민족 특유의 포괄적 실용미술

의심의 여지없이 민화는 어제나 오늘이나 그 유례가 없을 만큼 보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탁월한 미술이다. 이 점은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봐도 대단하다. 이 점을 사실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옷깃을 여미며 한 번 더 골똘히 생각해봐야 한다.
사실, 오늘의 현대민화가들은 나를 포함하여 재현민화가나 창작민화가를 망라해 모두가 아직껏 명확한 ‘현대민화 패러다임’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점은 정말 많이 근심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만한 실력은 없는 것 같아 점점 더 안타까움의 종종걸음만 바뻐진다. 현대민화 패러다임 조성은 민화 종사자의 저변이 이만큼까지 양적 확장된 것에 비한다면 늦었어도 너무 늦었다.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민화는 우리 민족의 신앙과 생활과 예술을 함께 녹여 넣어 만들어낸 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조선시대의 지배계층미술, 즉 사대부 미술이 고졸한 예술로서의 가치만을 논하며 당시 민중의 삶에 대하여는 일종의 직무유기(?)를 하고 있었을 때 민화는 한편으로 사대부 미술과 같은 예술 표현 방식을 흡수 사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에는 민중의 삶을 신앙과 예술까지 합하여 질적 향상을 위한 방법론까지를 품어 안고 미술이 할 수 있는 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다 보니 미술은 같은 미술이로되 사대부 미술보다 더 많이 우리 삶에 가깝고 친근하게 자리하게 된 것이고, 실제로 민중의 삶에 긍정적 역할을 많이 하는 미술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민화를 실용미술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민간의 삶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다소 공예적인 모습으로 변화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점 때문에 민화를 ‘공예’로 규정하는 건 무리라고 할 수 있다. 민화는 공예미술과 가까운 듯 하지만 그 자체로 독특한 미술 형태를 갖춘 순수미술의 성격을 지닌 우리 민족 특유의 포괄적 실용미술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민화는 공예미술적 방법론까지도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삼으면서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순수 미술의 외양적 모습에 잇대고 있기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민화는 각종 공예품의 부분 면面에 그려지더라도 그 자체에서 구상미술적 차원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렇지만 사대부 미술의 미학적 기준에 대해서는 재료 사용법 등 최소의 부분만 받아들이고 그 이외의 것들은 절대 따르지 않았다. 지금 필자는 눈에 보이는 결과론적 현상 자체만으로 민화의 모습을 평하는 중이다. 만약에 민화를 당시 사회적 신분계급 간의 갈등 측면을 앞세운 논리나 지적 또는 문화사적 열세의 입장에 대한 차원을 앞세워 평가하려 한다면, 우리는 민화의 깊은 예술적 진가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많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지금까지 저술된 대부분의 미술사에 대해 안타까움이 지극히 크다. 이 부분에 대한 전문 학자들의 적확한 연구가 속히 이루어지길 간절하게 바라는 바이다.

민봉기 - 해품달
민봉기 - 모란도
이정동 - 장생
이정동 - 봉황
 
대중과의 교감을 위한 상상력과 자유미

사실, 민화에 기상천외하다고 할 만큼의 ‘민화다운 민화’의 양상이 발생하게 되었던 원인의 일면으로 당시 사대부와 민중 간의 계급적 대립 갈등 때문에 생긴 이유가 크긴 하다. 이 부분을 민중 화가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당시의 최고 신분 계층인 사대부가 누리는 고급문화에 대해 전 국민과 똑같이 부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신분상으로 회복될 수 없는 기층민이 된 운명이었더라도, 문화만큼은 사대부와 똑같이 누리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당시에는 시장 경제의 새로운 주역이 된 서민 중에 상당수가 이미 신흥 부자로 이름을 내었고, 그 외에도 많은 수의 서민들이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안정권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배부르고 등이 따듯하게 되면 그 다음엔 본능에 따라 문화에 마음 가게 마련이다. 신분 이외의 것으로는 양반 부러울 것이 없게 된 이들에게 사대부가 독점하는 고급문화를 누리고 싶은 마음은 걷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민중의 위대함은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여 좌절하는 경우가 없었다는 데 있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지독한 가난의 세월에도 오히려 그 가난의 조각들을 모아 조선식 조각보 예술이라는 어마어마하게 찬란한 실용미술을 만들어냈던 민중이 아니던가.
아마도 당시 민화가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에게도 사대부들끼리 누리는 미학 추구에 대한 욕망이 없지는 않지만, 그 욕망을 따른다고 해도 불평등한 사회제도 안에서는 신분적 한계에 밀려 원천적으로 일신 양명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 차라리 다른 편을 택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모르겠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예업藝業의 도道에 통달하여 그 정도의 욕망쯤은 아예 내려놓은 채 온전한 대중 미술적 미학으로만 무장된 멋진 분들인지도. 어쨌든 그들은 사대부 미학보다는 대중적 공감대 표현을 위해 자신들의 재능을 쏟아 붓는다. 그러므로 해서 민화의 그 끝 간데없는 상상력과 자유미自由美는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이었으리라고 믿어진다. 구태여 고급스러운 필치와 정형의 구도법에 메일 필요까지도 없었다. 우리는 그 당시 민화들을 감상하면서 우리 마음을 감동시키는 척도는 작품의 테크닉 수준 정도에 따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오히려 다른 화가들의 것보다 더 재미있으면서도 특이하며 대중적 공감대를 크게 부르는 그림을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이었을 것이다.
단지 작품 제작에 우선하여 따라붙는 것은 우수한 대중적 공감대 표현 능력, 그것뿐이다. 만일 저들이 자신의 신분 상승을 위해 굳건하게 틀 잡힌 사대부 미술의 미학적 세련미를 흉내 내느라고 테크닉에만 정신 팔았었다면 조선 민화는 어떤 모양이 되었을까? 분명히 특색도, 재미도 없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림들이 민화 시장에 펼쳐졌다가 인기도 못 끌고 무관심 속에 버려지지 않았을까 싶어서 아찔해진다.
그게 사실일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면 창작민화가인 내 마음 안에 어떤 작업관이 장전돼 있어야 할지가 명쾌해진다. 화가 개개인의 민화가다운 창작정신 함양과 개성적 연마의 필요성은 물론 그에 더하여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으니 화단의 전체 인구가 같은 패러다임과 목적 속에서 한뜻으로 연대하는 것도 효율성을 높일수 있다. 단, 요즘에 행해지고 있는 대다수의 단체전처럼, 미술적 목적이 뚜렷하지 않고 단지 다수 인원으로서의 친목적親睦的 성향을 이용하려는 전람회는 미술계를 병들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겠다.

전통의 맥을 유지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민화 필요

대체로 오늘의 현대인도 아직은 과거 시대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 정도로 자신의 생활이나 신분 상승을 갈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로 인해 생기는 낭패감을 크게 맛보며 살아간다. 바꿔 말하면 오늘의 현대인들에게도 우리 창작민화가의 위로와 격려가 끝없이 많이 필요함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성 화단 미술에 대한 미학적 편승의 유혹에서 철저하게 벗어나 민중의 삶을 위한 위로와 격려, 또는 그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울만한 대리체험(카타르시스Catharsis)을 공급하려는 자세에서 창출되는 미술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필요하다. 참고하자면, 이런 미술 양식은 이전엔 없었던 전혀 새로운 장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발소 미술이라 할 싸구려 상업미술로써 이와 용도면에서는 비슷하게 제작되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아무런 시대적 당위성도 없고, 더욱이 아무런 진취적 미술철학을 갖추지 못한 그저 단순히 싸구려 그림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자신의 욕망이나 취미만을 목적으로 하는 그림이거나 기득권 미술의 눈치나 살피면서 만들어 내는 그림으로는 선조들이 기지 발랄한 해학미와 넘치는 자유미自由美 표현으로서 절정을 이루던 때의 그 창작정신 차원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만,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진정한 민화가다운 민화가로서의 자유의지를 불태우는 민화창작가가 더 없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산다. 민화의 놀랄 만큼 재기발랄한 상상력의 특별함은 특히 민중을 위한 민화들에서 주로 보인다. 반면 궁중 장식화는 구성면에서는 그만 못하더라도 오방색五方色 중심의 채색이 주는 강한 감동적 분위기의 스케일감과 함께 또한 그것들과 동반하는 장엄함, 그리고 앞선 테크닉이 압도적이어서 서민 민화나 궁중 장식화의 각각의 특성 중 어느 한 편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오늘의 사회 여건이 선조 민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던 때처럼 창작 재료 구매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모든 채색이나 도구들이 종류별로 또는 급수별로 지천이어서 구하고자 하면 어떤 거라도 골라서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서민 민화의 특성과 궁중 장식화적 민화의 특성을 고루 갖춘 표현까지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단, 그림이 뻔한 내용이면 안 된다. 뻔한 것은 이미 창작이 아니다. 뭔가 전통적인 맥을 유지하면서도 완전히 새롭고, 새로우면서도 전통에 연결된 긴장감이 설득력 있게 느껴져야 한다. 이 부분을 직접 강의하면 일대일로 마주 앉아 토론과 실습으로 빠른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반면, 이렇게 글로만 디테일한 내용을 전달하려니 많은 제약이 느껴져 아쉬운 점이 많다.

마음 속 감동을 노골적으로 좇는 것이 민화

민화는 다른 어느 장르의 그림보다 설득력이 풍부한 것이 장점 중에도 큰 장점이다. 지금까지의 미니멀리즘적 현대미술은 머리를 써서 그리는 그림, 다른 말로 말하자면 남에게 감동을 줄 필요 없이 논리만 설명하면 되는 그림인데 반反해 우리 민화는 철저하게 가슴을 써서 만들어내는 실용미술이다. 일정 궤도미학軌度美學 논리를 설명하려는 태도보다는 가슴에 일어나는 감동을 가장 노골적으로 좇아야 하는 미술인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미니멀리즘 시대의 끝 지점쯤에서 찾아낸 보석이라 할 미술적 대안이 바로 우리 민화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리적 그림에 지친 관람객들은 이제 뭔가 진한 감동의 그림에 마음을 기대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하다. 음악계의 실용음악(대중음악)은 이 점을 창작의 기반으로 하여 보기 좋게 성공해낸 예술의 성공적 사례다.멀지 않은 앞날에 케이아트
K-arts로서의 민화가 오늘의 케이팝 K-pop 음악처럼 세계를 누비며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눈부신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선하다. (계속)

“ 이젠 우리도 선조 민화가들의
후예다운 능력이 있음을 세계만방에
뽐내 보여야만 할 때이다. 선진님들의
창작정신의 중심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캐내어 내 것으로 삼아야 그 맥을
명쾌히 잇는 창작을 기대할 수 있겠다 ”

 

글 : 정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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