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장 외길 반세기 백산 전상규 장인을 만나다

백산 전상규 장인

‘그림’과 ‘글’은 모두 ‘긋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다. 실제로 서예나 그림은 예외 없이 ‘획을 긋는’ 행위에서 시작한다. 붓의 발명이 종이의 기원보다 앞섰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모든 미술작품은 붓끝에서 시작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붓을 만드는 일을 예술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백운동에서 시작한 47년 붓장 외길

전상규 장인은 붓 제작의 성지와도 같은 전라남도 광주시 백운동에서 태어났다. 세필(가는 붓)을 만드는 아버지와 한문을 좋아하시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붓을 가까이했다. 1967년, 약관의 나이. 부모님 허락을 받고 양모붓 창시자 박순 선생의 제자로 들어가 붓 제작을 시작했다. 수련과정이 대개 그렇듯 처음에는 잔심부름과 어깨너머 공부가 전부였다. 스승이 자리를 잠깐 비웠을 때 호기심에 붓을 만져보다가 혼이 나기도 여러 번이었다. 지나가며 한마디씩 던져주었던 스승의 조언들을 마음에 아로새기며 전상규 장인은 붓 공예를 익히고 수련했다.
“5년이 되었을 때 스승님께서 처음으로 작품을 만들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처음 붓촉을 달았던 붓이 한글붓 소, 8mm였죠. 반응이 굉장했어요.”
그가 만든 한글붓은 그야말로 호평을 받았다. 전국의 붓이 서울로 모인 후 다시 전국 곳곳으로 유통되던 시절이었다. 붓을 만든 사람을 직접 보기 위해 서울에서 백운동까지 찾아오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1979년에는 백운동을 떠나 서울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 지금까지 붓 매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백산 전상규 장인
백산 전상규 장인
 
값싼 중국 붓과 경쟁해도 질적 하락은 용납 못해

과거에는 인사동의 모든 붓이 국내에서 생산되었다. 1980년대 말 전국 학교에서 서예반이 크게 유행하면서 붓의 수요가 많아졌다. 국내산 붓만으로는 공급이 달리게 되면서 중국산 붓이 국내에 들어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약품 처리를 하는 중국 붓에 비해 우리 붓은 왕겨 속 고운 입자를 이용해 기름을 빼는 등 과정 대부분이 친환경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가격 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붓촉의 재료가 되는 털 공급이 줄어드는 것도 붓 가격이 비싸지는 이유 중 하나다. 털이 흰 염소보다는 흑염소가 약발이 더 잘 받는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흰 염소 목축이 줄어들었다. 대가라 불리는 화가들의 작품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된 것도 붓 수요가 줄어든 이유가 되었다. 이처럼 재료수급이 어려워지고 수요가 줄어들어도 전상규 명인에게 붓의 질적 하락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붓의 수요를 높일 수 있을까 장인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연구할 뿐이다.
“어떻게 하면 실용성을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뚜껑이 있는 휴대용 붓을 개발했습니다. 먹물을 묻혀서 쓰고, 뚜껑을 덮어서 호주머니나 가방에 넣고 이동할 수 있죠.”
전상규 장인은 지금까지 공개한 적이 없다는 휴대용 붓을 꺼내보였다. 전통 붓의 품질과 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사용자의 실용성을 고려한 세심한 변화가 돋보였다.

뜨거운 민화 열풍, 전통 붓 부흥 계기될 것

백산 전상규 장인전상규 장인은 춘천, 광주, 전주, 서울 등 전국에 11명의 제자를 수하에 두었다. 그중 두 명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선정되기도 했으니 더 이상 제자 교육에는 미련이 없다. 그는 이제 좋은 작품붓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전통 붓 공예를 널리 알리고 유지시키는 일에 큰 뜻을 품고 있다. 그 실천의 일환으로 붓 장인으로는 최초로 개인전을 열고 다른 분야의 공예인들과 합동전을 하는 등 기회가 닿을 때마다 대중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최근 운현궁 전시에서는 단순히 완성된 붓을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람객들이 직접 붓을 사용해보는 체험의 장을 열기도 했다. 붓 공예 전승의 꿈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으로 동국대학교 대학원 문화재지도학과에서 수학 중인 그는 그곳에서 만난 민화인들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제가 아무리 자신 있게 만들었어도 붓을 직접 사용하시는 분들의 의견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붓을 만들면서 알게 된 작가들의 이야기를 결코 허투루 흘려듣지 않죠. 작가와 붓 장인은 함께 성장해나갈 수밖에 없어요.”
전상규 장인은 요즘 부쩍 늘어나고 있는 민화의 인기를 체감한다. 그는 민화의 부흥이 전통 붓 전승과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 말한다. 또한 좋은 붓을 만드는 것이 민화의 발전에도 도움을 주어야한다는 사명감을 밝혔다.
한평생 붓을 만들며 살아온 그의 마지막 꿈은 국내 최초 붓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그의 연구소에는 이미 전시관을 연상케 할 만큼 많은 자료가 모여 있다. 전상규 장인이 그의 마지막 꿈을 이뤄 붓 공예 전승과 부흥에 있어 새로운 획을 그을 것을 기대한다.

 

글 : 박인혁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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