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공명, 한낱 꿈이로다 구운몽도(九雲夢圖)

구운몽도

《구운몽》은 한글장편소설로는 이른 시기라 할 수 있는 17세기 말에 창작되어 많은 인기를 누린 작품으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소설이다. 《구운몽》의 인기와 더불어 <구운몽도>는 그림으로 애호되었다. 또, 현대에 이르러서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그 내용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운몽》은 환상적인 내용과 교훈적인 내용을 모두 갖춘 소설이다.

홍진 털고 불가에 귀의한 이야기

이번에는 조선 후기 숙종 때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1637~1692)이 지은 환상소설인 《구운몽九雲夢》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구운몽도>를 소개하고자 한다. 《구운몽》은 성진性眞이라는 젊은 승려가 꾼 하룻밤의 파란만장한 꿈을 풀어나가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성진은 남악南岳 형산衡山의 연화봉蓮花峰 아래에 도승 육관대사六觀大師 아래에서 불도를 닦는 승려였다. 스승의 심부름으로 동정호 용왕의 잔치에 방문했다 돌아오는 길, 백옥교에서의 팔선녀와의 만남에서 성진은 내면에 잠들어 있던 세속적 욕망이 피어오르게 되었다. 이를 눈치챈 육관대사가 성진을 연화도량에서 추방하여 성진은 속세, 즉 인간세상에서 환생하여 양소유의 삶을 살게 된다. 속세에서 시골처사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계속 승승장구하며 욕망과 이상을 성취하면서 천하의 주인공이 되어간다. 그 과정에서 팔선녀 모두와 기이하고 절묘하게 인연을 맺게 된다. 여덟 명의 처첩이 받드는 가운데 양소유는 태평성대를 누리고, 그 모든 것이 완성된 시점에서 그는 인생을 반추하며 성진으로 돌아갈 계기를 찾게 되어 팔선녀와 함께 불도에 귀의한다. 성진에게 모든 것을 맡긴 육관대사는 서역으로 떠나고 성진과 팔선녀는 도를 닦아 극락세계로 간다.

 
성진과 팔선녀의 그림같은 만남

《구운몽》은 전장 16회로 나뉘어 쓰였으나, 그림으로 그린 <구운몽도>는 여덟 폭이나 열 폭의 병풍으로 그려졌다. 이 중에서 맨 처음 성진과 팔선녀가 백옥교에서 만나는 《구운몽》의 대표 장면을 그린 세 점을 소개하겠다.
성진은 스승의 명을 받들어 칠근가사七斤袈裟를 걸치고 육환장六環杖을 끌고 동정호로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스승인 육관대사께 문안하고 돌아가는 길에 백옥교 위에서 쉬고 있던 남악南嶽 위부인魏夫人의 제자 팔선녀와 만나게 되었다. 용왕이 내린 술을 거절하지 못하고 자못 취기가 올라 있던 성진이 길을 지나가기 위해 선녀들에게 길을 비켜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선녀들은 갈잎을 타고 망망대해를 건넌 달마존자의 예를 들며, 육관대사의 제자라면서 신통술로 해결하면 되지 길 하나를 가지고 여자들과 다투느냐고 꾸짖었다. 이에 성진은 길 값을 내겠다며 복숭아꽃 한 가지 꺾어 팔선녀에게 던지니, 이 여덟 꽃봉오리는 모두 여덟 개의 명주明珠로 바뀌어 8선녀 각기 한 개씩 받아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날아갔다. 이 장면의 정경묘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이때가 바로 춘삼월이라 백화는 만발하고 운무雲霧는 자욱한데, 봄 새소리 생황笙篁을 주奏하는 듯하니 봄기운이 사람의 마음을 태탕케 하더라. 팔선녀도 자연 마음이 들뜨는지라, 돌다리 위에 앉아 시냇물을 굽어보니 광릉廣陵 땅 보패의 새 거울이 걸린 듯 푸른 눈썹과 붉은 단장이 비치어 한 폭 주방周昉의 미인도라, 스스로 그 그림자를 희롱하여 이내 일어나지 못하고 은은하게 울리는 작은 소리로 봄날의 시름을 서로 풀면서 해가 저무는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구운몽>, 엮은이 구인환, (주)신원문화사, 2002

가회가 소장한 구운몽도 3점

첫 번째 그림을 먼저 보도록 하겠다. 성진은 백옥교 끝 부분에, 팔선녀들은 오색찬란 구름 속에 휘감겨 다리 위에 떠 있다. 이로 보아 성진으로부터 명주를 받고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8선녀들은 머리에 금빛 보관을 두르고 두 손을 소맷자락 안에 모아 쥐고 성진을 내려다보고 있다. 성진은 금빛 육환장을 들고 선녀들 쪽을 비스듬히 보고 있는데 그 표정이 의미심장하다. 이들 주변은 꽃이 만발하고, 깊은 산골짜기에는 굽이굽이 거친 계곡물이 돌다리 아래로 휘몰아치며 흐르고 있다. 그 위로 자욱한 안개 너머 육관대사의 암자와 석탑, 그리고 가파라 보이는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이는 보통 사람은 쉽게 들어갈 수 없는, 현실과는 분리된 천상의 공간을 암시하는 것이다. 성진이 기거하던 남악의 형산 연화도량이 세상 한 편에 속한 공간이면서도 현실계보다는 초월계의 면모를 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그림은 삼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단에는 성진이 다리 위에 앉아 있고 선녀들은 복숭아 가지를 하나씩 들고 서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성진이 던진 복숭아 가지에서 화한 명주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구운몽의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그린 것으로 보인다. 성진의 앉아있는 모습과 손동작에서 보이는 어색함은 작가가 신체구조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았음을 알려주는데, 팔선녀의 신체 일부는 생략되어있기까지 하다. 팔선녀의 시선과 행동이 성진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재미있다. 다리 아래에는 백옥교의 다리 대신에 기암괴석이 그려져 있다. 인물들 윗부분인 중단에는 천상의 세계를 암시하는 봉우리들이 붉은 운무 사이로 겹겹이 겹쳐 있고, 육관대사의 암자와 석탑이 보인다. 다만 상단에는 험준한 산봉우리보다 커다란 매화나무와 나비, ‘석교상성진 달팔선녀石橋上性眞 達八仙女’라는 화제가 적혀 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인 초봄을 나타내고 보여주는 동시에, 다른 구운몽 병풍과 비교하여 장식적 기능이 강조된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 번째 그림은 머리에 진주장식을 하고 성진을 바라보는 팔선녀들과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성진을 하단에 그렸다. 그 뒤 큰 소나무를 경계로 암자들과 석탑이 그려져 있다. 육관대사의 암자와 다리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실 이 그림에서 위로 갈수록 작아지며 첩첩이 쌓이는 집들은 암자가 아니라 큰 절처럼 보인다. 그리고 성진과 팔선녀가 서 있는 다리와 아주 가까운,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재미와 교훈을 모두 갖춘 소설

《구운몽》은 한글장편소설로는 이른 시기라 할 수 있는 17세기 말에 창작되어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린 작품으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소설이다. <구운몽도>는 《구운몽》의 인기와 더불어 그림으로 애호되었던 소재로, 1844년에 지어진 서울의 풍물을 노래한 《한양가》에서 나타나있다. 또한 《구운몽》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그 내용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구운몽》이 한 인간의 욕망과 이상이 순탄하게 이루어지는 완전한 판타지를 담고 있는 동시에 그것이 덧없는 한순간의 꿈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옛날 우리 선조들이나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나 현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글 : 박혜진(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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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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