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노래하다, 화조도 초본

화조도 초본

이번 시간에 소개할 초본은 화조도 초본이다. 현재 남아있는 민화의 70%가 화조도임을 고려한다면 응당 남아있는 초본의 수량도 많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까지 발견되어 공개된 화조도 초본의 수량은 여기에 소개하는 초본에 불과할 만큼 매우 미미하다.

한자 실력이 필요한 화조도 초본

이 초본에 등장하는 새와 꽃은 정확히 어떤 종류인지 알기 쉽지 않다. 거기에다 다른 초본에 비해 붓질이 거칠게 묘사되어 있어 어디가 꽃이고 어디가 잎인지조차 확인이 어렵다. 그러나 각 부분마다 칠해야 하는 색의 이름을 써놓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하였다. 다만 이 그림에서 설명하는 대로 채색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만 했다. 색이름이 전부 한문으로 쓰여있기 때문이다. 만일 여기 소개된 초본 그대로 작품을 제작하기 원하는 분이 있다면 자신의 한자 실력을 생각해보고 도전하길 바란다.

수요 증가와 종이의 질적 하락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초본의 상태는 좋은 편이 아니다. 가장자리는 헤져 있으며 전반적으로 화면이 거무스름하다. 이런 경우는 보관을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그만큼 초본을 많이 사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본이 그려진 종이는 서예 연습용으로 많이 쓰는 화선지로 그림 그리기에 적당한 소재는 아니지만, 쓰던 초본이 헤지면 미련 없이 버리고 새 초본을 제작할 수 있는 값싼 종이라는 점에서 널리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전에 본지를 통해 소개했던 책가도 초본 또한 같은 종류의 화선지에 그려진 것이다.
종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줄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줄은 종이 섬유를 발로 떠서 한지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발에 눌린 자국이 남아있는 것으로, 이 자국은 조선 초기에서 후기로 넘어갈수록 그 간격이 넓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품질보다 양을 중요시할 만큼 종이의 수요가 증가하였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 종이에 줄 간격이 넓다는 것은 그만큼 이 종이가 질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창의성 발현의 토대, 초본

지금까지 발견된 화조도의 수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화조도 초본을 바탕으로 그렸으리라 추정되는 화조도는 아직 단 한 점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만큼 화조도가 다양한 초본을 바탕으로 많이 생산되었으며, 초본 또한 그에 따라 많이 사용되고 버려졌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색이 곱고 장식성이 강한 우리 민화의 채본과 비교하면, 먹선으로 그려진 초본은 골동품계에서도 무시당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법고창신法古創新라는 말이 있듯이 초본이라는 일정한 법 위에서 우리 민화의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고, 초본의 가치에 대해서 무시해서는 안될 일이다.

 

글 : 이다정(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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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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