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사의 주재자부터 선비정신까지 – 호랑이

사람들은 호랑이에 대해 특별한 외경심을 품었다. 민화 속에서 호랑이는 벽사의 주재자로 그려지기도 했고, 은혜를 갚는 존재로 의인화되었으며, 영웅이나 선비정신의 상징이기도 했다. 허균 소장과 함께 호랑이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나아가 옛 그림을 바르게 읽는 법도 고찰해보도록 하자.(편집자주)


호랑이는 초현실적 동물인 용과 달리 실제로 사람과 가축을 해치거나 잡아먹는 맹수다. 때문에 호랑이가 현실에서 기피되고 제거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호환虎患이 심해 한 달 안에 먹혀 죽은 자가 120여명이었다거나, 심지어는 호랑이 피해가 날로 늘어나 농민들이 마음 놓고 출입을 하지 못한다는 등 호랑이 피해와 포획 관련 기록들이 예상 밖으로 많다. 그러나 옛 사람들의 관념 속에서 호랑이는 현실과는 다르게 벽사의 주재자이자 산의 정령이 깃든 신체神體로서 군림했다. 그런가하면 호랑이는 산중재상과 대인군자의 상징으로, 또는 은혜를 갚는 존재나 담배를 피우는 모습 등으로 의인화되기도 했다. 모순이라면 모순인 이 현상들은 여러 계층 사람들이 호랑이의 생태적 속성, 성격, 외형 등을 나름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개념화하고 정의내린데에 기인한다. 즉, 호랑이의 다중적 성격이라는 것은 결국 옛 사람들의 자연관과 가치관, 또한 성정과 욕망의 실상을 여러 방면에서 비춰주는 다면경多面鏡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호랑이에 대한 관념과 상징체계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보는 관점은 신분과 사회적 위치, 입장과 처지에 따라 다르다. 특히 신분의 유동성이 적고 세습적으로 고착화된 전통 유교사회에서는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같은 호랑이를 두고도 일반 서민들이 그의 흉포한 성격을 주시하여 축귀의 주체로 삼은 것(도1)과 달리 문인 사대부들이 관심을 둔 것은 털갈이 후 문채가 더욱 빛나는 모습 그 자체였다.(도2) 호랑이의 자태가 자기 혁신을 이룬 대인大人의 풍모를 닮았기 때문이다.
한편, 대인군자의 상징이었던 호랑이는 어느새 권세를 남용하는 비열한 권력자의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실제로 한 맹호도에는 ‘요즈음 발호횡행하는 자들이 짐승과 똑같은 인간인 줄 누가 알리오 [于今跋扈橫行者誰識人中此類同]’라는 화제가 달려있다.(도3)
호랑이가 가진 다양한 상징적 의미는 여러 계층 사람들이 호랑이의 성격과 외형적 특징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평가한 결과라는 것을 앞서 말한 바 있다. 실재의 호랑이는 관념 속의 호랑이가 되고, 관념 속의 호랑이가 다시 의미상징형으로 개념화된다. 옛 그림을 비롯한 여타 예술 분야에 등장하는 호랑이들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구축된 상징체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옛 호랑이 그림의 진면목을 파악하여 제대로 감상하려면 화가의 신분과 제작 시기 및 동기, 더 나아가서 향유 층의 가치관과 사고구조 등 당대의 인문·사회 환경까지 살펴야만 한다.

호작도 속의 호랑이

사귀를 씹어 소멸시킨다)’, ‘호장축사멸(虎將逐邪滅 : 호랑이 장수가 사악한 것을 물리쳐 없앤다)’ 등 호랑이가 사귀와 삼재를 물리친다는 내용의 화제가 붙은 것이 있고(도4), ‘원단元旦’이라는 관지款識가 표시된 것도 있다. 이를 통해 호작도가 설날을 즈음한 시기에 벽사용으로 그려지는 그림이고 그림의 호랑이는 벽사의 주재자임을 알 수가 있다.
‘설’이라는 말에 이미 그 뜻이 드러나 있듯, 이 시기는 아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낯선 미지의 시간 속으로 막 진입하는 순간이다. 낯설면 두렵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랑이를 앞세워 주변을 정화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새로운 한 해가 무탈하기를 빌었던 것이다.
그런데 호작도 형식의 그림에 나오는 호랑이라 해서 모두 벽사의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일본에서 조선시대 호작도가 발견됐는데 병울지자炳蔚之姿라는 화제가 적혀 있었다. 여기서 ‘병울지자’는 《역경》 혁괘 효사의 의미를 부연 설명한 상사象辭의 한 대목에서 따온 것으로, 혁신을 완성한 대인의 빛나고 성대한 자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화제는 호작도의 호랑이가 벽사의 주체로서 뿐만이 아니라 자기 혁신을 완성한 대인의 상징형으로도 그려졌다는 사실과 호작도가 단순한 벽사화를 넘어 문인 사대부 취향이 반영된 유화儒畵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한편, 현존 호작도 중에는 ‘호소남산군작도회虎嘯南山群鵲都會, 호랑이가 남산을 호령하니 까치 떼가 다 모인다’ 라고 써놓은 것이 있다.(도5) ‘호소’는 흔히 영웅이 세력을 떨쳐 활약함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므로 그림의 호랑이는 호변虎變한 대인의 상징형으로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까치[喜鵲]들이 모여 지저귀는 것은 영웅의 출현에 경하慶賀를 보내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런 면에서 이 그림의 호랑이는 출산호도出山虎圖 또는 출림호도出林虎圖류의 호랑이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출산호도 속 호랑이

출산호도는 호랑이가 산을 나서는 장면을 포착하여 그린 그림이다.(도6) 산은 문인 사대부들에게 인자仁者의 낙이 갖추어진 곳이다. 산 속에 숨어사는 호랑이가 털갈이를 하여 화려한 문채를 자랑하는 모습은 문인들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호랑이의 변화한 모습에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여 아름다움이 더욱 빛나는 대인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호랑이를 이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데에는 그들의 필독서이자 철학서라 할 수 있는 《역경》의 영향이 컸다.
《역경》 64괘 중 49번째 괘인 혁괘의 의미를 설명하는 내용 중에 ‘대인호변大人虎變’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리에 밝고 인격이 빛나는 대인이 천하를 혁신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변혁함을 털갈이한 호랑이에 비유한 것이다. 따라서 호랑이의 빛나는 풍모가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기에 문인 사대부들은 출산호도出山虎圖, 출림호도出林虎圖 형식의 그림을 생활 속에 향유했다. 그리고 그 사상적 바탕은 출처지의出處之義를 중시하는 선비정신이었다.
출처지의란 세상에 나아가서는 관인官人으로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힘쓰다가 세상이 자신의 이상을 받아주지 않고 도의가 땅에 떨어지면 과감히 사임하고 은둔하면서 명분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세상에 나갈 때와 물러날 때를 명분에 맞게 가려서 처신하는 선비 된 자의 도리인 것이다. 숨는다고 해서 반드시 고상하고 나아간다고 해서 반드시 구차한 것은 아니다. 마땅히 나아가야할 명분이 있으면 은거지에서 나와 새롭고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가는 것 또한 선비의 도리다. 출산호도는 산중에서 은둔하다가 세속을 향해 나서는 선비의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을 호랑이로 표현한 그림인 것이다.

호랑이와 표범

옛 사람들이 관용어구처럼 사용한 말 중에 ‘호표의 위엄’, ‘호표의 문채’, ‘호표의 자리’라는 것이 있다. 이때 ‘호표’는 단순한 복합명칭이 아니라 호랑이와 표범이 하나의 상相으로 통합된 개념이다. 이는 밝음의 대표적 상징을 ‘일월日月의 밝음’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대상을 분석적, 논리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서양 사람들과 달리 동양 사람들은 분류나 논리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신 각 개체의 속성보다 전체 개념과의 관련성 속에서 개체를 인식하는 특성을 보인다. 그래서 점무늬 표범가죽 장막을 그린 그림(도7)을 ‘호피장막도’라 불러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점은 호랑이와 표범을 소재로 한 그림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호표를 소재로 한 그림들을 둘러보면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①호랑이, 표범 중 어느 하나를 단독 또는 둘을 함께 그린 것, ②호랑이와 표범을 한 몸에 통합해 묘사한 것, ③호랑이 자리에 표범을 그려 놓은 것 등이 그것이다.
①의 경우와 관련된 내용을 알아보자. 앞서 언급한 《역경》혁괘 효사의 해설 내용을 보면 한 문장 속에서 ‘대인호변大人虎變’ ‘군자표변君子豹變’이라는 말을 함께 쓰고 있다. ‘혁革’의 의미를 가을에 털갈이 하여 빛나는 문채를 드러내는 호랑이와 표범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주목할 것은 호랑이와 표범이 대인군자의 상징형에 통합돼 있다는 점이다. 호랑이와 표범이 대인군자의 상징으로 통합되어 있는 이상 두 동물을 구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림에 나타난 호랑이, 표범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도8,9)
②의 경우는 조선시대 무관이나 공신功臣 초상 흉배에서 해당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예컨대 권응수(1546∼1608) 초상의 흉배(도10)를 보면 호랑이가 점무늬(머리)와 줄무늬(몸)가 혼합된 형태로 묘사돼 있다. 호랑이와 표범이 하나의 전체로 결합된 양상이다. 이와 같은 예는 선승의 영정에서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③과 관련된 사례는 흔하지는 않지만 산신도에서 종종 찾아진다. 산신도에는 산의 정령이 깃든 신체인 호랑이가 있어야 하지만 이 그림에는 호랑이 대신에 표범이 그려져 있다.(도11) 그러나 개체를 통합된 개념 속에서 인식하는 옛 사람들에게 이것은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림 속 진의 파악하려면 옛 사람들의 인식 공유해야

옛 호랑이그림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 아니면 평자評者가 썼을 화제가 뜻하는 바를 정확히 읽어 내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주된 향유층이 누구인지, 제작 시기와 용도 등 작품 주변의 상황도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그림 역시 그 사회와 그 시대의 적자嫡子이기 때문이다. 한때 국내외 일부 민화 연구자가 호작도의 호랑이와 까치 관계를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갈등관계로 보고 까치가 호랑이를 놀리는 장면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해석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실재의 두 동물을 어떻게 보고 무슨 생각을 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보는 사람의 자유지만 옛 호랑이 그림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주관적 관점만을 가져서는 안 되고 당시 사람들과 경험과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긴요하다. 그래야 호랑이그림의 진면목에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육박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글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한국민화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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