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도 초본 – 큰 그림을 그리다

백호도 초본
큰 그림을 그리다

이번 시간에 소개할 초본은 백호도 초본이다. 이 초본은 1971년도에 제작된 초본으로, 한국 현대 민화작가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송규태 화백이 그린 초본이다. 이 작품의 원본은 18세기에 제작된 청룡백호도 8폭 병풍으로 현재 가나아트센터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초본은 청룡백호도 병풍 중 백호가 그려져 있는 오른쪽 두 폭을 초본으로 제작한 것이다. 이 초본은 양지에 그려져 있으며, 위아래 부분과 왼쪽에 선으로 테두리를 그리고 그 안에 먹으로 호랑이와 소나무, 바위와 폭포를 그려 넣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이 초본에는 다른 초본에는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모눈이다. 이 모눈은 연필로 그려져 있는데, 이 초본을 바탕으로 그렸을 완성작품에는 이 모눈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초본에 모눈이 그려졌을까? 이 문제의 해답을 알기 위해 우리는 우선 이 모눈의 명칭과 사용법에 대해 알아야 한다.


모눈의 이름과 사용방법


이 모눈은 서양의 회화기법에서 시작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을 사용하여 인체와 사물의 정확한 묘사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 중 하나가 그림 3과 같이 격자모양 틀을 그릴 대상과 화가 사이에 두고 틀에 보이는 형상대로 틀과 같은 비례의 모눈이 그려진 종이에 옮겨 그리는 방식으로, 이때 그려진 모눈이 바로 그리드Grid이다.
또한 바늘구멍이 뚫린 어두운 상자 안에서 바늘구멍에서 들어오는 빛이 비치는 부분에 모눈이 그려진 종이를 대고 그대로 따라 그리는 방식도 사용되었는데, 이 때 쓰이는 상자를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라고 하며, 이 방식이 바로 우리가 쓰는 카메라의 기본 원리다. 요즘 학생들은 과학시간에 ‘바늘구멍 사진기’라는 이름으로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를 배우기 때문에, 이해가 안 가시는 분들은 ‘바늘구멍 사진기’라고 검색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카메라 옵스큐라는 크기가 점차 작아졌으며, 그림 4와 같이 화질을 개선하기 위해 바늘구멍 부분에 렌즈를 끼워 넣고, 빛이 비치는 부분에 반사경을 붙여 거꾸로 보이는 이미지를 똑바로 보이게 하였다.


15세기에 서양에서 개발된 카메라 옵스큐라는 중국을 거쳐 18세기에 우리나라에도 전파되었다. 당시 카메라 옵스큐라는 중국에서 침공암상針孔暗箱, 투경암상透鏡暗箱, 회화암상繪畵暗箱, 임화경臨畵鏡, 축용경縮容鏡 등으로 불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약용이 칠실파려안이라 했으며, 박규수는 파려축경이라고 불렀다.
18세기 중반 당시 이 신기술을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실학파 학자들이었는데, 이들은 이 신기술을 사용하면서 많은 기록을 남겼다. 다음 시간에는 이들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그리고 이들이 사용했던 방식이 이 백호도 초본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글 이다정(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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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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