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도 초본②조선시대 초상화 제작 기법과 통通하다

백호도 초본에는 다른 민화 초본에는 없는 모눈이 있다. 또한 조선시대 초상화 초본에서도 백호도 초본과 같은 모눈을 찾을 수 있다. 초상화 초본에는 왜 모눈이 있었을까? 그리고 백호도 초본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 글 이다정(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초상화 제작에 공력을 들이다

18세기 중반 카메라 옵스큐라를 받아들였던 실학자들은 초상화 제작에 서양의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물을 배척하던 사대부들 또한 이 기술을 활용한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이는 초상화에 대한 우리 민족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의 초상화는 초본 제작에서부터 많은 시간과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완성된다. 이렇게 초상화의 완성도를 중요시한 것은, 우리 조상들이 초상화를 그릴 때 ‘터럭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다.’라고 생각하여 실제 인물과 똑같이 그리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사대부들은 초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기꺼이 신문물을 받아들인 것이다.

초본에 모눈을 그린 이유

초상화 제작과 이모(移模, 그림을 그대로 본떠 그리는 것)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윤증 초상>을 들 수 있다. <윤증 초상>은 다섯 점의 전신상 외에 여덟 점의 초본, 초상 제작과 이모 과정을 기록한 책이 남아있다.
그중 두 점의 초본을 살펴보자. 사진 2는 가로 8칸에 세로 10칸의 모눈을, 사진 3은 가로 8칸에 세로 12칸의 모눈을 그린 후 인물을 그렸다. 이 격자문은 한자로 전자격(田字格) 또는 수방용(收放用) 구궁격법(九宮格法)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서예 연습용으로 이용했던 기법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기법은 그림을 비례에 맞추어 축소·확대해서 그릴 때 이용되었다.
우리가 찾던 백호도 초본의 모눈이 바로 이 기법이다. 윤증 초상의 초본을 정확하게 확대해서 그리기 위해 전자격을 이용했던 것처럼, 백호도 초본의 모눈 또한 그림을 확대해서 그릴 때 비율을 정확하게 소장재현하기 위해서 그렸던 것이다. 비록 현대 민화 초본이기는 하지만 모눈종이에 초본을 그리는 방식이 민화 제작에 활용되었다는 것은, 그 이전 시기에 제작된 민화에서도 이 기법이 활용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백호도 초본은 어떻게 제작되었나

그렇다면 1970년도에 작품인 백호도 초본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우선 종이에 모눈을 그린다. 그리고 모눈을 그린 종이 밑에 백호도 사진을 놓고 그대로 베껴 그리면 초본이 완성된다. 초본의 크기를 보면, 도록에 실린 사진을 활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초본을 가지고 실제 그림을 그릴 종이에 작은 종이에 그려진 모눈의 비율에 맞춰 큰 모눈을 그린다. 그 후 모눈의 비례에 맞춰 작은 그림을 크게 그려 밑그림을 그린 뒤 채색과정을 거쳐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다.
요즘은 촬영한 사진을 필요에 따라 확대/축소 복사한 뒤, 그 위에 종이를 대고 그대로 그려 민화를 그린다. 참 좋은 세상이다. 그러나 과거에 선배들이 민화를 어떻게 그렸는지에 대해서, 그 노고를 아는 것은 우리가 민화를 계승하고 창조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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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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