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남 작가의 채색화-민화에 천연염색법을 응용하다

40여년 이상을 작품활동에 매진해온 채운 배영남 작가는 전통채색화 기법을 변용하고 천연염색 기법 등을 민화에 적용해 개성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배영남 작가의 작품세계와 작품에 담긴 의미, 작업과정 등을 배영남 작가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어보도록 하자. (편집자주)


어느 예술장르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신만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창의적인 사람은 없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모방을 통해 기본기를 충분히 익혔을 때 창의성은 비로소 빛을 발한다. 민화도 다르지 않다. 필자는 민화의 기본을 충실히 익히기 위해 <조일선관도>, <호피장막도>, <삼국지도> 등의 전통민화를 모사했다. 특히 한국채색화의 채색기법에 집중해 화면이 견고해지도록 색층을 반복해서 올리는 기술 등을 익히는 데에 오랜 시간을 보냈다. 또한 민화의 제작은 각 재료들의 물리적 성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최적의 안료顔料를 찾는 일에서 시작하는 만큼, 색층을 여러 겹 올려도 본연의 색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분채와 석채의 물리적 성질에 대해 연구했고, 대기의 습도와 온도차에 따라 가감加減하여 사용하는 아교의 성질을 공부했으며, 색의 중첩을 견뎌야 하는 순지 등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이처럼 민화의 기본기를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하고 학습한 후에, 필자는 비로소 민화의 변용을 적극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만의 민화’를 위해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다


필자가 머무는 안동은 천연염색이 무척 활성화 되어 있다. 천연의 색이 주는 미묘한 아름다움에 매료된 필자는 순지 대신에 면, 광목, 인견, 비단 등을 바탕지로 활용하는 시도를 했다. 다양한 질감의 천에 감염, 먹염, 애기똥풀염, 소목염, 황토염, 호두껍질염, 쪽염, 감염 등을 하고, 염색된 천을 소금뿌리기, 비틀어 먹물 뿌리기, 농담을 달리한 먹물에 차례대로 담그기 등으로 재차 염색한 다음에 ‘나만의 민화’를 제작했다.
그렇게 태어난 작품 중 하나가 <미인도>(도1)다. 안동의 전통 미인상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앞면 채색에는 중색重色 효과를 줬고, 색의 선명도를 높이기 위해 비단의 뒷면도 채색했다. 그리고 화면의 변색과 얼룩이 지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 색층을 반복해서 올렸다.


<모란과 노닐다>(도2)에서는 인견에 먹염을 해 모란이 흩날리는 공룡시대를 표현했다. 영화 등 미디어의 영향탓에 백악기 하면 흔히들 난폭한 공룡이 여기저기에 있어 다소 폭력적이며 혼란한 모습을 떠올린다. 이 작품은 ‘우리의 편견이나 상상과는 달리, 백악기는 사실 평화롭지 않았을까?’ 하는 발상에서 비롯됐다. 필자는 이러한 발상을 토대로 물질문명과 분리된 또 다른 형태의 ‘태평성대’를 상상하며 공룡과 부귀의 상징인 모란을 접목했다. 먼저 공룡이 살던 시기의 배경을 상상했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불순물을 뺀 인견을 물에 적신 후 비틀어 먹물을 붓고 6개월을 말렸다. 그 다음 화면의 구도를 생각하면서 먹물을 부분적으로 여러 번 수세水洗해 바탕을 그렸다. 물감은 두께감을 전달하기 위해 주로 분채를 사용했다.
<초충도>(도3)는 베란다 방충망에 붙어있던 사마귀를 보고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오래된 고목의 거친 껍질을 표현하기 위해 먼저 인견을 감물로 염색하고, 감색이 깊어진 후에 천을 구기고 쪽염을 더해 붉은 모란과 함께 배치했다. 사마귀 등껍질에는 분채와 금분으로 모란문양을 넣어 통일감을 주고자 했다.
<초충도>(도4)는 무당벌레 떼가 흩날리고 있는 꽃가루를 향해 모여드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무당벌레는 민화에서 흔히 이용되는 곤충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자연에서 무당벌레는 꽃이나 풀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또한 꽃만큼이나 예쁘기 때문에 소재로 삼아보고자 했다. 먼저 면에 감물에 젖은 천을 구기고 비틀었다. 다음 구겨진 천에 먹물을 뿌리고 다림질한 후 분채로 채색했다. 면은 두께가 얇아 다루기 힘들며, 특히 물감이 쉽게 번지기 때문에 채색이 까다롭다. 그러므로 면으로 작업할 경우에는 평소보다 빠르게 붓질을 하고, 붓에 물도 적게 먹여야 한다.
<모란도>(도5)에서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화면과 색채를 자유롭게 구성하려 노력했다. 하늘을 향해 위로 올라가는 식물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화면을 눕혔다. 화면의 상단을 잘라 작품에 긴장감을 주었고, 반대로 화면 하단에는 여백을 두어 시선이 중심을 향하도록 의도했다. 색채는 보다 밝고 명쾌하게 구성하기 위해 오방색을 중심으로 다양한 색을 배합했다.


소중한 우리 민화, 계속 연구할 것

우리 민화에는 중국화나 공필화(工筆畵,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리는 중국의 전통회화 기법중 하나) 혹은 일본화에서 볼 수 없는 우리만의 색이 담겨 있다. 한국 민화의 이러한 독창성과 고유성은 앞으로도 잘 보존해서 지켜나가야 할 문화유산이다. 다행히도 많은 작가와 학자들이 우리 고유의 색에 녹아있는 정신의 해석, 상징적 의미 등을 다양하게 연구하고 있다. 필자도 작품 활동을 한 지 어언 40년이 됐다. 녹록치만은 않았지만, 색의 중첩으로 점차 견고해지는 화면을 보며 기다림을 배웠고, 언제 끝날지 모를 만큼 수많은 붓질을 하면서 평온함을 알았다. 민족적으로도,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소중한 우리의 채색화가 풍성하게 꽃피울 수 있도록 필자는 앞으로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민화 채색화를 계속 연구할 것이다.


글·그림 배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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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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