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통옻칠외길 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 칠장 정수화

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 칠장 정수화 장인
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 칠장 정수화

정수화 칠장의 공방에 들어서자 화려하게 수놓아진 자개들의 영롱한 빛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칠장은 옻나무 수액을 용도에 따라 정제하는 장인을 말한다. 오랜 기간 숙련된 이만이 해낼 수 있는 까다롭고 인내를 요하는 작업이다. 200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 칠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정수화 씨는 전통옻칠은 물론 나전칠기까지 마스터해낸 진정한 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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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자개, 그 위를 감싸는 영롱한 빛

화려하게 수놓아진 자개 위를 영롱한 빛으로 감싸는 옻칠. 정수화 칠장의 공방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한 풍경이다. 칠장은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을 수분, 이물질을 제거해 광택을 높이고 용도에 따라 정제하는 장인을 말한다. 예부터 옻칠은 칠장만이 할 수 있는 까다롭고 섬세한 작업으로 여겨졌다. 옻칠은 주로 기물을 보호하고 광택을 내는 데 쓰인다. 건조 후에는 다른 것들과 섞이지 않기 때문에 보존성에 있어 지구상의 그 어떤 도료보다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뛰어난 성질을 가진 옻칠은 친환경적인 도료로 여겨지며, 한국, 중국, 일본에서 사용되어 왔다. 옻은 각국에서 특색 있게 발달해 왔다. 우리나라에서 옻이 사용된 흔적은 기원전부터 발견된다. 칠기는 신라시대를 거치며 크게 발전했고, 고려시대에는 나전과 결합하며 나전칠기란 새로운 기법을 선보인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칠이 대중화되며 많은 칠기가 제작되기도 했다. 최근엔 회화의 재료로 사용되는 등 도료를 넘어 안료로서의 가능성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50년간 걸어온 전통옻칠과 나전의 길

정수화 칠장은 5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전통옻칠과 나전칠기의 외길을 걸어왔다. 옻 문양 그리기부터 나전 제작 기법, 마감칠 작업까지 완벽하게 구사해 내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칠장인이다. 정수화 칠장은 어린시절 나전칠기 공방에서 칠과 나전을 함께 전수받았다. 1967년 입문한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다 1992년 전국기능경진대회 나전칠기 부문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1994년에는 나전장 기능보유자인 심부길 선생의 전수교육조교가 되었고, 1995년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됐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동안 꾸준히 우리 옻칠문화를 발전시켜 온 장인정신을 인정받아 2001년 중요무형문화제 제113호 칠장 기능보유자로도 지정됐다.
장인으로서 한 길을 걸어온 정수화 칠장. 그 꾸준함만큼이나 나전칠기의 제작과정 또한 끈덕진 노력과 인내를 요구한다. 우선, 원자재 백골에 옻칠한 후 삼베를 바른다. 삼베를 바르는 건 환경에 따라 수축, 팽창하는 나무의 습성을 잡아주기 위함이다. 그 후 삼베의 눈을 메우기 위해 칠을 하고 갈아내는 과정을 서너 번하여 평면을 만들어준다. 백골과 나전 사이에 층을 둠으로써 자개의 접합력을 높여주는 것.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자개를 놓을 수 있다. 나전이란 조개껍데기를 잘라 나무, 칠기 등에 붙이거나 끼워 넣어 광택을 내는 장식기법을 말한다. 바로 이 나전문양에 많이 활용되는 것 중 하나가 민화 속 소재다. 정수화 칠장의 작업실만 한 바퀴 둘러봐도 곳곳에 민화적인 요소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효제도, 호랑이, 화조도 등 화폭 위를 수놓던 그림들이 옻칠과 어우러져 영롱한 빛을 내는 나전칠기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정수화 칠장은 최근 많이 시도되고 있는 옻칠회화에 대해서도 무척 반가운 일이라며 화색을 표했다.
“옻에서는 7가지 색이 나와요. 배합하면 어떤 컬러든 다 나오는 거죠. 예를 들어 초충도를 화폭에 그리면 민화가 되지만, 이를 나전화시키면 문양이 되는 거죠. 저는 문양을 그릴 때 책을 보고 많이 응용하는 편이에요. 사실 옻은 보존을 위한 도료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림을 그리는 안료로 사용된다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입니다.”

좋은 옻칠 공예를 위한 끝없는 연구

옻이 보존성이 뛰어난 친환경적인 도료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수화 칠장은 옻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었다. 옻이 ‘왜’ 뛰어난 도료인지에 대해 이론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칠장인으로 살며 한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주경야독晝耕夜讀 공부를 이어왔다. 오랜 시간 연구와 경험을 통해 터득한 좋은 옻칠의 조건 중 하나는 좋은 원료를 고르는 것이라고 했다.
“위도 36℃ 이상에서 자란 옻나무 액이 좋습니다. 우리나라 원주칠이나 북한 태천칠이 좋은 이유죠. 미얀마, 베트남, 중국 남방 등지에서 자란 옻나무의 액은 수분이 40%인데, 원주산은 18%거든요. 수분을 날려서 만든 것이 정제칠입니다. 위도 36℃ 이상에서 자란 옻나무의 액은 칠을 해놓으면 확실히 단단해요. 이는 옻칠 안에 고무질이 결정합니다. 옻을 정제할 때 그 비율을 잘 맞춰야 하는 이유죠.”
칠장인들이 비싸더라도 원주칠을 사용하는 이유다. 땅속에서 천년만년 가는 옻칠이지만, 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자외선이다. 햇볕 아래 깨지고 푸석해지는 것은 옻칠의 큰 단점 중 하나. 정수화 장인은 옻칠에 자외선을 차단하는 성분을 더하고자 연구 중이라고 했다. 최근엔 부분적으로 이를 한옥에 사용하기도 하는 등 꽤 성과가 있는 편이라고.

문화명품으로 재탄생될 날을 기대하며

정수화 칠장은 장인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을 문화상품이 아닌 문화명품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외국 유명 브랜드에서 만든 가방은 명품이라 부르면서, 왜 우리장인들이 만든 작품은 문화상품으로 여기냐는 설명이다.
“장인의 세계와 작가의 세계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장인은 판매를 목적으로 물건을 만들지 않아요.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만들어 놓으면 시간이 지나 누군가 보관할 거라 믿을 뿐이죠. 때문에 장인이라면 재료는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주변 장인들에게도 충분한 재료를 가지고 끊임없이 스스로의 세계를 추구하라고 말합니다.”
다른 이를 배려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각자 맡은 바를 열심히 하면, 세상은 물 흐르듯 흘러갈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올해로 정수화 칠장이 칠의 세계에 입문한 지 49년이 됐다. 내년이면 반세기가 흐른 셈이다. 아직도 칠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며 겸손하게 말하는 그이지만, 그가 탄생시킨 작품은 그가 누구보다도 뛰어난 장인임을 증명한다.
“예를 들어 새를 표현한다고 했을 때 말입니다. 몸통 부분은 영롱한 소라껍데기를 쓰고, 또 그 옆을 받쳐주는 색은 오색찬란한 전복 껍데기를 쓰는 식이에요. 이제는 재료와 기물을 두고 눈을 감으면 완성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예전엔 다 만들어 놓고 제 실수를 깨닫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실수가 없어요. 반세기 됐잖아요, 이제.”
나전만이 가진 영롱한 광채와 옻이 지닌 단단한 색감이 어우러져 하나의 명품으로 재탄생하는 것. 장인이기에 가능한 경지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 반세기. 하지만 그의 깊은 작품정신은 앞으로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많은 공예인들의 귀감이 되지 않을까.

 

글 : 최민지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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