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그림 만병과 암석화생

문자도 8폭, 각 99x33cm

*문자도 8폭, 각 99x33cm

만병과 암석화생

지금까지 만병에 대하여는 충분히 설명했지만, 암반이나 괴석, 암석, 바위 등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개인소장 ‘화조문자도花鳥文字圖’는 그냥 화조문자도가 아니라, 만병화생滿甁化生과 암석화생도巖石化生圖이다. 즉 폭마다 아래에는 암반이 있어서 암반에서 만물이 화생하는 광경이며, 위에는 만병이 있어서 만병에서 만물이 화생하는 광경을 표현했다. 우리는 만병과 암반의 상징을 몰랐으므로 이 민화의 상징을 읽어낼 수 없었다. 만병과 암석화생이 잘 나타난 개인소장 작품을 살펴보자.

바위틈에서 만물이 화생하는 관경

암반이나 괴석, 암석, 바위 등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는데, 이들을 통칭하여 암석이나 우리말인 바위로 부르기로 한다. 바위가 중요한 것은 바위 밑 부분이나 바위틈에 정화淨化된 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흙으로 된 동산이라고 여길지도 모르나, 흙에는 항상 물을 주어야만 식물이 자란다. 그렇다고 바위에서 아무 식물이 자라는 것은 아니다. 특히 소나무는 바위에서 자라는 경우가 많다. 그 외에 수많은 나무나 풀이 바위틈에서 자란다. 기암괴석뿐인 금강산에는 소나무가 잘 자란다. 바위가 암봉巖峰이든 바닥의 암반이든 바위에는 물이 흐르고 있어서 바위의 물로부터 만물이 화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형예술에서 표현해왔다. 흔히 모란 병풍 밑에는 반드시 괴석이 있는데 그것은 단지 괴석이 아니라 영암靈巖으로, 영기꽃이 영암에서 화생하고 있는 광경이지 부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이 모란도는 후에 자세히 다루겠다.

자라는 것이 아닌 화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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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폭의 하단은 암반을 상징하는 곳에서 세 가지 식물이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화생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즉 짧은 갈대 같은 풀, 그리고 소나무 같은 나무, 그리고 비교적 굉장히 큰 꽃나무 등이 암반화생하고 있다.(도 1) 그런데 향좌向左 나무는 언뜻 보면 소나무 같지만, 자세히 보면 ‘보주 나무’다. 둥근 보주가 열리고 보주에서 영기가 발산하고 있는 조형이다. 물이 가득 찬 만병에서 보주 나무가 화생하는 조형들은 이미 많이 보아왔다. 만병과 암석은 모두 물을 품고 있어서 같은 상징을 띤다. 가운데 높은 나무에서는 큰 꽃들이 피어 있고 나뭇잎은 흔히 볼 수 없는 기이한 모양이어서 그 잎이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잎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낸다. 꽃도 중심에 큰 원, 즉 ‘씨앗=보주’를 나타내는 ‘영기꽃’이다. 필자는 이미 보주를 발산하는 꽃을 영기꽃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처럼 암반에서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세 가지 나무를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다른 나무들을 자라게 함으로써 ‘만물의 암석 화생’을 상징하고 있다. 예부터 암석 신앙이 성했는데 이것은 암석이 품은 만물생성의 근원, 즉 ‘정화된 물’에 대한 경배이기도 하다. ‘정화된 물’은 ‘성화된 물’이기도 하고 ‘영화된 물’이기도 하다. 즉 정수淨水, 성수聖水, 영수靈水 등은 모두 같은 말이므로 어떤 용어든 써도 무방하다.
바로 위의 만병화생의 광경을 살펴보자. 우리는 수많은 형태의 만병을 살펴보았지만, 이렇게 사각으로 즉 육면체로 표현하고, 다리는 영기문으로 표현한 것은 처음 보았다. 필자는 육면체란 것은 보주의 원형原形이란 것을 이미 풀어냈으나, 본 연재에서는 아직 밝히지 않았다. 육면체六面體가 구체球體가 되는 과정은 설명이 길어지므로 다음으로 미루자. 이 그림에서 만병을 육면체로 표현했다. 이 그림에서는 정면에서 바라보아 사각의 평면으로 나타냈으니 과감한 조형이 아닐 수 없다. 같은 조형을 작게 만들어 위에 두었는데 바로 만병의 입이 아닌가. 즉 짧은 원통형의 입을 이처럼 표현하다니 도대체 어떤 사람이 그렸을까? 수십 년 걸려 육면체가 어떻게 구체, 즉 보주가 되는지 추구해왔는데, 20세기 초 한국에서 그 원형을 보게 되니 뜻밖의 일이다. 육면체의 각 면에 베푼 영기문은 아직 충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만병이므로 표면에 영기문을 표현해야 하므로 직선으로 된 영기문임은 틀림없다. 바로 그 만병에서 소우주인 ‘집’이 화생하고 있다! 만병에서 영기꽃과 영기잎이 솟아나오고 바로 그 위에 기단이 생기고 그 기단 위에 집이 화생한다. 그런데 집의 사방으로부터 영기꽃과 영기잎이 무수히 발산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집은 소우주인 사당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흔히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에 나타나는 사당일지도 모른다. 사당에서도 사방으로 영기문이 발산하기 때문이다. 사당에 봉안된 공적 많은 인물로부터 발산하는 영기이기도 하다. 건축의 지붕은 용마루와 추녀마루 끝은 모두 제1영기싹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그런 생각이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봉오리는 보주를 나타내므로 매우 특이한 조형을 보인다. 현실에서 보는 꽃과 잎이 아니다. 아마도 그 맨 위에 나비가 날고 있으므로 세간에서 화조도라고 부른 것 같다. 그러나 만병에서 무량한 보주가 생겨나므로 결국 만병은 만물생성의 근원이 되므로 나비는 만물을 대표하는 셈일 뿐이다. 화조도가 아니다.

영조靈鳥와 일월, 대우주의 암반화생

제2폭을 보자. 둥근 암반이 있고 암반층이 있다. 대개 물은 암반층을 뚫고 솟아 나온다. 등산하다가 목이 마르면 물을 찾기 마련인데 물은 반드시 바위틈에서 나온다. 이 그림에서는 암반 바로 위에 두 영조靈鳥가 날고 있다. 아니 화생하고 있다.(도 2) 이 두 영조는 물론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해와 달이 있는데 향우向右에 있는 것이 ‘해’다. 두 영조와 해와 달, 바로 이런 표현으로 대우주를 상징하고 있으니 대우주의 암반화생이다. 사람들은 이런 허접해 보이는 그림에 이렇게 엄청난 상징이 깃들어 있는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우리 자신이 환골탈퇴換骨脫退해야 한다. 그 위에는 제1폭에서와 같은 만병이 있고, 만병에서 매우 큰 소나무가 나오고 있다. 이 소나무 역시 보주에서 발산하는 영기를 나타내는 모양들을 나타낸다. 일종의 ‘우주목=보주목’이다. 향좌에 기단이 있는 집이 있는데 역시 만병에서 화생한 소우주의 건축이다. 역시 용마루와 추녀마루 끝이 제1영기싹으로 되어 있다. 향우에는 조금 떨어져서 만물생성의 근원인 암산이 화생하고 있다. 참으로 기막힌 그림이다.
제3폭을 살펴보자. 암반이 맨 아래에 있으며 속에는 붉은 영기가 응집되어 있다. 마치 지구의 내부를 보는 것 같은데 강력한 붉은 영기를 품은 암반이다. 암반에서 몇 줄기 영기풀이 화생하여 영기꽃과 영기잎이 표현되어 있는데 모두가 현실에서 본 적이 없는 조형이다.(도 3) 특히 영기꽃의 조형이 흥미롭고 봉오리가 보주다. 상단에는 역시 육면체로 혹은 사각으로 된 만병에서 우주목이 화생하고 있다. 다섯 군데에 엄청나게 영기가 부풀어 나온 큰 영기꽃이 있고(모란이 아니다), 그 영기꽃 주변에서 잎모양 영기문이 발산하는데 길고 뾰족한 부분이 오른쪽으로 모두 향하고 있다. 즉 영기꽃에서 발산하는 영기문들이 순환하고 있다. 이런 때에는 자연과학에서 쓰는 ‘회전’이란 말을 쓰기보다는 우주에 대생명력이 ‘순환’한다는 상징적인 말을 쓰는 것이 좋다. 큰 영기꽃 사이사이마다 작은 영기꽃이 발산하고 있으며, 향좌에는 봉오리가 있는데 역시 ‘씨앗=보주’가 표현되어 있다. 향우의 큰 영기꽃 위에 영화된 나비가 앉아 있다. 더듬이는 두 개여야 하는데 세 개이며 제1영기싹으로 되어 있고, 꼬리도 제1영기싹 영기문이다. 현실에서 보는 나비와 같은 듯하나 영화된 존재이고 영기꽃에서 화생하는 것이므로 현실의 나비가 아니다. 역시 만물생성의 대표격이다.

영원한 생명 상징하는 수壽와 영기문

다음엔 제4폭을 살펴보자.(도 4) 맨 밑은 중층의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맨 밑 암반은 빨갛다. 그 암반으로부터 두 줄기에는 연꽃에서 보는 가시가 아니고 그저 평행으로 줄을 그은 줄기가 올라가다가 아래로 꼬부라져 연잎 모양이 아래로 향하였다. 모양이 각 지어져 있으며 영기잎 아랫부분은 여래의 옷주름처럼 표현되어 있는데 제1영기싹이 이어져 있다. 양쪽으로 긴 줄기가 올라가 연꽃 모양이 피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연꽃잎 모양들이 물고기 모양이 아닌가! 물고기는 물을 상징하며 물고기 입에서 용이 화생하여 나오듯 만물생성의 근원임을 안다면, 영기꽃잎 하나하나가 물고기가 된들 놀랄 것이 없지만, 옛사람들이 그린 상징의 세계에 놀랄 뿐이다. 그 사이사이에 봉오리가 세 줄기 올라가는데 역시 영기꽃 봉오리로 ‘씨앗=보주’가 표현되어 있으며 가운데 봉오리 위에 나비가 앉아 있다. 나비의 씨앗=보주 화생이다. 영화된 나비다. 역시 더듬이는 세 개로 되어 있다. 나비의 머리는 보주다. 그러니까 보주에서 세 개의 영기싹이 발산하는 형국이다. 연꽃은 이미 연꽃이 아니라는 것을 곳곳에서 언급하여 왔는데 마치 필자의 주장에 화답하듯 연잎과 연꽃, 그리고 연잎도 변형시켜 영화된 조형으로 만들고, 만물이 화생하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그 상단에는 영기문으로 구성한 壽자가 표현되어 있다. 목숨을 뜻하는 것이니 결국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글자다. 글자 아랫부분의 가로의 긴 획을 영기문으로 만들고 그로부터 가운데에서 영기꽃이 맺히고 그 영기꽃으로부터 사방으로 영기잎과 영기꽃들이 화생한다. 중심으로부터는 만개한 영기꽃이 피었는데 잎마다 물고기로 변한다. 양쪽은 크게 보아 제3영기싹인데, 향좌에서는 영기잎 사이에서 영기꽃이 화생하고, 향우에서는 두 영기잎 사이에서 ‘씨앗=보주’인 봉오리가 화생한다. 영기꽃 바로 위에는 물이 가득 찬 만병 대신에 물이 가득 찬 암반이 있다. 암반 아랫부분에 물결무늬가 있어서 암반과 물의 관계와 그 실체가 여기서 확실히 드러난다. 암반 양쪽에서 영기잎과 영기꽃이 세 줄기 화생하고 있다. 그리고 가운데서 영조靈鳥가 화생하고 있다. 그 만물생성의 근원인 영조로부터 굵은 줄기 다발인 죽순竹筍이 올라가고 역시 만물생성의 근원인 물고기가 화생한다. 물고기의 입에서 가는 두 줄기가 나오고 끝에 무량보주가 달려있다. 우리가 꽃이라고 알고 있는 모양은 모두 무량보주이니 물고기로부터 무량보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壽라는 글자를 여러 가지 영기문으로 조합하여 영원한 생명생성의 조형으로 만든 것은 그 의도가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물고기와 죽순이 있어서 효孝로 읽는다고 하지만 이 전체 조형은 도저히 孝의 조형이 아니다. 문자도文字圖가 해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기와 보주의 상징 가득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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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폭은 간단하다.(도 5) 맨 밑의 암반으로부터 여섯 줄기의 영기꽃이나 봉오리 등 갖가지 형태의 영기꽃들이 피어나는데, 결국 보주와 관련이 있다. 중심에서 피어난 영기꽃은 제3영기싹 영기문이 넓이를 가지는데, 그 사이사이에서 다시 꽃잎이 나오며 그 큰 영기꽃에서 위로 다시 작은 영기꽃이 나오며 중심에서 보주가 나오며 연이어 다시 더 작은 보주가 나온다. 독자 여러분은 이 무슨 이야기인가 의문을 품을지 모른다. 그러나 보주의 개념을 알면 이해할 수 있으나 보주의 개념을 알아내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꽃봉오리를 그려서 분석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상단에는 이미 보아왔던 육면체의 만병이 있으며, 그 만병으로부터 갖가지 영기꽃들과 갖가지 봉오리 등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발산하고 있다. 즉 무량한 보주가 발산하고 있다. 중앙의 영기꽃 위에는 나비가 화생하고 있다. 역시 얼굴인 보주에서 제1영기싹 세 개가 발산하고 꼬리에는 하나의 제1영기싹 있다. 이 화폭은 비록 간단하지만, 암반과 만병이 똑같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는 중요한 그림이다. 만물생성의 광경을 화려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6폭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도 6) 암반 위로 우주목 세 나무가 화생하고 있다. 향우의 나무는 암반에서 다시 나온 바위에서 생겨나고 있다. 버드나무 같기도 하지만, 이미 역설하였듯이 모든 나무는 만물생성의 우주목으로 보주를 발산하는 나무임을 상징하고 있다. 향좌의 우주목 위에는 영조가 화생하고 있다. 영조 역시 만물생성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영기화생이란 현상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말해주는 새로운 진리를 배우게 된다. 상단에는 육면체 만병이 있으며 굵은 우주목이 화생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매우 큰 영기꽃이 피어있다. 이런 붕긋붕긋한 모양들로 구성된 영기꽃에는 ‘씨앗=보주’가 보이지는 않으나 그 안에 품고 있으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위로 줄기가 뻗어 올라가 작은 영기꽃이 피며 함께 ‘씨앗=보주’의 조형을 나타내고 있다. 그 큰 우주목 아래쪽에서는 좌우로 줄기가 늘어져 큰 영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잎 모양 영기문은 사방으로 뻗어 나가되 모두 오른쪽으로 순환하고 있다. 또한, 중앙의 영기꽃으로부터 양쪽으로 줄기가 나와서 위로 올라가 맨 끝에 각각 큰 영기꽃이 피었는데 역시 영기잎이 오른쪽으로 순환하고 있다. 우주의 대 생명력이 순환하고 있는 것을 이처럼 아름다운 만병과 우주목에 핀 영기꽃들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양쪽으로 작은 영기꽃과 봉오리가 각각 뻗어 나가고 있다.

석류나무 아닌 보주 나오는 우주목

그러면 제7폭을 보기로 하자.(도 7) 하단에 여러 바위가 모여 암봉을 이루고 있는데 세 우주목이 화생하고 있다. 가운데 우주목은 양쪽의 나무에 비하여 매우 크고 우람하다. 언뜻 보면 모두를 석류나무로 부르기 쉬우나 특정한 나무가 아니라 ‘씨방=보주 나무’다. 즉 씨방들에서 각각 무량한 보주가 나오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이런 씨방=보주 나무가 가장 확실한 보주목, 즉 우주목이 된다. 상단에는 육면체 만병 두 개가 함께 있다. 향좌 만병에는 표면에 구름모양 영기문이 표현되어 있는데 구름이라고 인식해서는 안 된다. 두 만병은 하나는 화려하게, 다른 하나는 먹으로만 표현해 대비를 이룬다. 향우의 만병으로부터는 구불구불 굴곡진 굵은 영기문 나무가 화생하는데 그 조형이 바로 영기문이다. 그 위로 두 줄기 가지가 수직으로 평행을 이루며 뻗어 올라가며 각각 양쪽으로 보주꽃=영기꽃을 피운다. 만일 필자가 이런 꽃 모양을 무량보주로 파악하지 못했다면 이런 조형을 올바로 해석하지 못했을 것이다. 향좌 만병에서도 역시 같은 모양의 두 줄기 가지가 직접 평행으로 뻗어 올라가며 갖가지 영기꽃을 피우고 있다. 꽃이든 씨방 모양이든 모두가 무량한 보주를 발산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가운데 두 줄기에서, 즉 향우의 우주목과 향좌의 우주목에서 각각 영조가 화생하여 마주 보고 있다. 이 그림은 저 문명의 발상기 때 이루어진 우주목을 사이에 두고 영조나 영수가 마주 보는, 즉 우주목이 만물생성의 근원임을 상징하는 조형의 20세기 버전이다. 5000년의 우주관을 관통하는 조형이 끊임없이 시대에 따른 변형을 일으키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은 전통은 끊임없이 축적하여 온다는 것을 의미하며 바로 그 점이 전통의 위대함을 웅변한다. 그런데 이것은 신信이라는 글자를 이렇게 조형화시킨 것이다.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나 수복강녕부귀다남壽福康寧富貴多男 등 문자도가 성행했는데, 이 그림에서는 분명치 않다.

만물생성의 상징 담은 마지막 폭

마지막으로 제8폭을 보기로 한다.(도 8) 하단에는 역시 암반이 있고 여러 개의 우주목이 풀처럼 화생하고 영기꽃과 봉오리 보주와 영기잎들이 활짝 펼쳐지며 전개하고 있다. 마치 연꽃 같기도 하지만, 만일 연꽃이라면 연잎이 이상하지 않은가. 무릇 민화에 나타난 꽃들은 특정한 꽃이 없다. 비록 현실의 꽃과 같다고 하여도 영화된 것이어서 차원이 다른 영기꽃으로 변한다. 상단에는 만병이 하나 있고 그 위에 작은 만병이 중첩되어 있다. 그것은 각각 따로따로 우주목이 화생하고 있어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우주목에서는 각각 영기꽃을 피우는데 줄기에서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조형이 엇갈리며 나오는데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다. 이렇게 처음 보는 조형은 무어라고 설명하지 못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영기문일 것이다. 만병 바로 옆에 달이 표현되어 있다. 초승달인데 안쪽에서 토끼가 무엇을 쥐고 있으나 방아를 찧는 모습과는 다른데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 위에는 용이 그려져 있는데 형태가 밑의 초승달과 대응하고 있으며 두 발로 보주를 붙들고 있다. 용의 모양은 얼굴도 처음 보는 모양이며 목까지는 용이 틀림없고 다리와 발의 발톱은 용의 모습과 틀림없지만, 그 이하는 물고기 모양이다. 즉 위 절반은 용이고 아래 절반은 물고기다. 이것은 흔히 표현하는, 물고기의 입에서 훨씬 더 큰 용이 생겨나는 조형을 축약하여 그린 것으로 생각한다. 물고기와 용은 같은 것으로 모두 만물생성의 근원인 물을 상징한다. 그리고 흥미 있는 것은 향우의 끝, 즉 용 위의 구름 모양이다. 그러나 구름이 아니고 제1영기싹 모양들이 모여 있는 영기문 덩어리로 바로 이 영기문에서 용이 화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용과 초승달의 관계는 알 수 없다. 다만 달은 만물생성의 근원으로 동양에서는 달은 생명과 관계가 깊다고 생각해왔고, 실제로 모든 생명현상은 달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용은 두말할 것 없이 만물생성의 근원이다. 즉 비를 내려 생명을 풍요롭게 만든다. 이 조형은 ‘치恥’자로 보기도 하나 알 수 없다.

이렇게 하나의 병풍을 기술하고 보니 이 병풍은 ‘만물생성의 근원으로 시작하여 만물이 생성하는 광경을 동심 어린 솜씨로 나타낸 것’이어서 그 다채롭고 아름다운 그림에 서서히 깊은 감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정교하게 그린 것도 아닌, 직업적 화가가 그린 것도 아닌데, 어떻게 생명생성의 조형을 이렇게 놀랍게 변형시켜 더욱 고차원으로 표현했는지 헤아리기 어렵다. 지금까지 다룬, 화원 출신이나 화승 출신이 그린 정교한 그림과는 전혀 다른 솜씨다. 아, 이른바 민화의 세계의 본질은 갈수록 손에 잡히지 않는구나!

 

글 : 강우방(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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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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