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중흥 이끈 민화계 대부, 윤열수

20주년 맞이한 가회민화아카데미,
새로운 20년을 내다보며

월간민화 창간 9주년을 기념해 월간민화 초대 발행인이자 민화계 대표 학자로 손꼽히는 윤열수 관장을 인터뷰했다.
가회민화박물관에서 만난 그는 오는 5월 가회민화아카데미 20주년 기념 회원전을 준비하랴 민화 인생 50주년을 갈무리하랴 분주한, 그래서 행복한 모습이었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우인재 기자


설립 20주년 맞이한 최초의 민화 이론 아카데미

튼튼한 뿌리 없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법, 최근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민화계의 기저에는 민화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해온 연구자들의 값진 노력이 자리한다. ‘민화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화두 아래 2004년 민화계 최초로 민화 이론 교육을 체계적으로 진행해온 가회민화박물관(관장 윤열수)의 부속 연구기관 가회민화아카데미(원장 이상국)가 설립 20주년을 맞이해 오는 5월 10일(수)부터 5월 16일(화)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20주년 기념 회원전 <광화문 네거리에 민화를 날리다>를 개최한다. 가회민화아카데미를 설립한 윤열수 관장은 각별한 소회를 내비쳤다.
“그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하루하루 가회민화아카데미를 운영해나간 거지, 애초 원대한 포부를 갖고 시작한 건 아녜요. 그래도 어느새 20주년이 됐다고 하니 뿌듯합니다. 이쯤에서 지난 시간들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기획전을 마련하게 됐지요.”
이번 전시에서는 가회민화아카데미 회원 1기부터 20기의 민화 작품 500여 점과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유물 등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친숙한 미감의 민화 작품들을 펼쳐낼 예정이다.


윤열수 | 가회민화박물관 관장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조선후기 산신탱화 연구>로 석사 학위를, <문자도를 통해 본 민화의 지역적 특성과 작가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에밀레박물관 학예실장, 삼성출판박물관 학예실장, 문화관광부 문화재 전문위원 및 문화재위원, (사)한국박물관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사립박물관 운영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부 장관 표창장(1992), 한국민화를 해외에서 활발히 전시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2014)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호랑이》, 《알고 보면 반할 민화》 등이 있다.


우수한 강사진과 뜻깊은 행사로 차근히 성장

가회민화아카데미는 대학을 비롯해 여타 아카데미에서도 민화 이론을 접하기 쉽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부터 민화 이론 전문 수업을 진행하며 뜻깊은 행보를 이어왔다. 민화에 관심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매년 3월 신입 회원 45여명을 모집, 상반기 봄 학기와 하반기 가을 학기로 구성된 1년 단위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총 20회차로 구성된 수업에서는 민화의 개론은 물론 궁중장식화, 근대미술사, 동서양 회화, 화제와 낙관까지 한국 미술사 전반을 아우르는 심도 있는 내용을 다룬다. 작업과 직결되는 실용적 내용부터 혜안을 틔워줄 배경 지식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루다보니 작가들 사이에서도 호평이 자자하다. 뭐니 뭐니 해도 핵심 저력은 우수한 강사진이다. 설립 당시부터 안휘준, 허균 등 유명한 원로 미술사가부터 현재 대학에서 활발히 강의하는 3세대 미술사학자 및 연구자들이 총출동해 매회 알찬 강연을 진행해왔다. 현재 가회민화아카데미 4기 출신이자 2012년부터 가회민화아카데미에서 호렵도 관련 강의를 진행해 온 이상국 박사가 가회민화아카데미 원장이다. 운영에 관한 사안은 회장단 회의를 거쳐 결정하며 박물관과 협의해 회원들의 요청 사항 등을 반영하기도 한다. 회원 대부분이 민화작가들이기에 기수별 전시를 여는 경우가 많지만 가회민화아카데미가 특히나 큰 자부심을 갖는 대목은 단순히 친목을 위해 전시나 행사를 도모하는 것이 아닌, 아카데미의 이름을 내걸고 의미 있는 행사를 개최한다는 점이다. 그중 윤열수 관장이 손꼽는 행사는 가회민화아카데미가 주관하고 가회민화박물관이 주최하는 어린이 민화 공모전이다. 올해로 20회차를 맞이한 ‘세계 어린이 민화 그리기 공모전’은 어린이들에게 우리 민화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가슴 깊이 심어주고자 하는 취지로 매해 열리고 있다.
“제1회 어린이 민화 공모전에서 수상한 아이가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으니 이제 30대가 되었겠네요. 어린 시절 민화를 즐기고, 상 받은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도 민화를 잊을 수 있을까요? 어린이 민화 공모전을 연 것이야말로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민화계 매머드 축제인 대갈문화축제에서 정기적으로 회원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지난해 8월에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로에서 열리는 초대전을 성료했다. 이처럼 가회민화아카데미는 다채로운 행사와 전시를 주도함으로써 단순한 이론 교육에서 그치지 않고 민화계 성장과 발전을 적극적으로 견인해왔던 것이다.


윤열수 관장이 70년대부터 촬영했던 민화 및 민속 자료 슬라이드 필름을 꺼내들었다. 소장 중인 슬라이드 필름만 96,000여 장. 최근 윤 관장은 그간 수집해온 자료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해외전시·학술·교육 등 전방위에서 활약

원로 미술사학자 안휘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는 ’윤열수 관장이 없었다면 현재처럼 민화가 융성할 순 없었을 것’이라 평한다. 윤열수 관장이 민화계 중 시조 故 조자용 박사를 위시한 제1세대 민화 연구자와 현 세대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기 때문. 1973년 조자용 박사가 운영하는 에밀레박물관에서 학예연구원으로 민화계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반 세기 동안 민화 외길을 걸어온 그는 한국 민화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연구·수집·전시·교육 활동 등 전방위에 걸쳐 고군분투해왔다.
“뭐 아는 게 있었나. 에밀레박물관에 갓 입사했을 때만하더라도 못 그린 민화를 왜 저렇게 애지중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요. 그런데, 곁에 두고 한 해 두 해 지내다 보니 서서히 알겠더군요. 우리 민화만큼 민중의 삶을 진솔히 드러낸 그림이 없다는 걸 말이죠.”
그길로 민화에 빠져든 그는 부인인 최진옥 전 정신문화원 교수의 월급까지 그러모아 틈만 나면 전국을 돌며 민화와 부적, 기타 전적류와 서찰 등을 수집했고 2002년 서울 북촌에 민화 전문 박물관인 가회민화박물관을 설립했다. 맨손으로 일궈낸 작은 민화 박물관이지만 해외 각국의 박물관, 미술관의 초청을 받을 만큼 그 저력은 매우 놀랍다. 2004년 옹기민속박물관과 함께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한 <쭈글이 옹기와 빼뚤이 민화展>으로 몽골 울란바토르 자나바라르 박물관의 초청을 받아 2006년 첫 해외전을 개최한 이래 일본 니시노미야 오오타니 기념미술관, 프랑스한국문화원,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동양미술관, 벨라루스국립미술관 등 세계 각지에서 민화전시를 활발히 개최했다. 2014년에는 해외 전시로 한국 민화를 널리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민화계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연구 부문에도 남다른 공을 들였다. 당시에 전무하다시피 한 민화 전문가를 양성하고자 2008년부터 5년 동안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직을 도맡아 민화 전공자를 배출해냈으며 같은 해 뜻을 같이 하던 민화연구자들과 ‘한국민화학회’를 창립, 초대 회장에 취임해 학술대회 개최·학술지 발간·해외답사 등을 실시했다. 한국민화학회가 발행하는 《한국민화》는 지난해 한국연구재단의 2022년 등재후보학술지로 선정돼 민화 연구의 학술적 가치를 공증받기도 했다.
이 같은 일련의 활동들이 전통민화를 주축으로 삼고 있긴 하나 윤열수 관장은 민화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대’에 대중화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2013년 조자용기념사업회를 발족해 조자용 박사의 업적을 기리고 민화계 대표 축제 대갈문화축제를 열었으며 축제 기간에 맞춰 ‘현대민화 공모전’을 열어 민화 작가들의 창작열을 장려했다. 2014년에는 국내 최초의 민화 전문잡지인 월간민화의 발행인으로 취임하여 민화계 외연을 대폭 확장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늘 민화를 모으다 보니 현대의 민화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민중의 마음을 담은 것이 민화라면 21세기의 민화는 어때야 하는가? 지금도 다들 잘 하고 있지만, 전통에 바탕을 둔 사회풍자적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난해 11월 가회민화박물관에서 개최한 제 19기 회원의 졸업식 단체사진. 2004년 설립된 최초의 민화 이론 전문 아카데미인 가회민화아카데미가 올해 20주년을 맞이했다.


변화 모색하되 ‘전통’ 잊어선 안돼

최근 윤열수 관장은 ‘정리’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50년간 모아온 주요 유물 및 자료만 하더라도 민화 2,700여점을 포함해 각종 서찰, 전적류 등 3,500여점, 70년대부터 민화 및 민속 자료를 촬영해둔 슬라이드 필름 96,000여장에 달한다. 올해부터 4명의 학예 연구원들과 유물 및 그간 박물관에서 발간했던 전시 도록 등을 대대적으로 분석, 분류하여 정리 중이다.
“정말로 ‘미치지 않고서야’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돈만 생겼다하면 물불 안 가리고 민화를 사 모으기에 바빴으니까. 이렇게 나이가 들고 보니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슬슬 정리를 해야겠구나 싶더군요. 골동품 가게에서 민화랑 싸잡아 산 서찰을 최근에서야 찬찬히 분석하다보니 친구인 이병연의 쾌유를 빌며 <인왕제색도>를 그린 겸재 정선의 편지도 있었고, 정약용 아버지가 쓴 편지도 나왔지요. 살 땐 그 내용을 전혀 몰랐어요. 이제 와서 보니 ‘그동안 정말 재밌게 살았다’ 싶어요(웃음).”
저술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일평생 모아 온 한국 호랑이 자료를 집대성해 《민화 호랑이》 발간하여 유홍준 미술사학자로부터 “향토문화연구가 김두하가 쓴 장승 전문 서적 못지않은 호랑이 명저”란 호평을 받았으며 지난해 6월에는 민화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 개론서 《민화이야기》를 30여년 만에 보완하여 개정판 《알고 보면 반할 민화》를 발간, 초판 5,500권을 순시에 판매하며 2쇄를 펴냈다.
“최근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발전시켜가려는 노력에 힘입어 민화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는 추세지요. 민화는 이제 세계에서 사랑받는 그림이 되었습니다. 여기엔 월간민화의 공로도 매우 크지요. 월간민화의 창간 9주년을 축하드립니다. 급변해가는 시대에 발맞춰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길 당부합니다. 단, 전통에 바탕을 두고서 말이지요.”

<가회민화아카데미 20주년 기념 회원전>
5월 10일(수)~5월 16일(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 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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