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시원과 관련된 또 다른 실마리,
〈비형랑 설화〉

– 글 김용권 (겸재정선미술관 관장)


신라시대의 ‘비형랑鼻邢郞 설화’ 역시 역신疫神을 막아 주는 문배 풍속으로, 민화 시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이에 대한 기록을 《삼국유사》에서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다.

(전략) 이 때문에 귀신들은 비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겁을 먹고 달아났다.
당시 사람들이 이를 두고 노래를 지었다.
임금의 혼이 낳으신 아들 비형랑이 있는 방이 여기라오.
날고뛰는 온갖 귀신들아 아예 이곳에 얼씬도 하지 마라. (후략)

물론 위 기록만으로는 문배로 사용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비형랑 형상이 어떠했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문배의 시원으로 성정해 놓는 것에 대해서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조선시대 성현의 《용재총화》에 비형랑과 처용랑이 나란히 등장하고 있어서, 비형랑 설화와 처용랑 설화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풍속에 입춘날 여항의 인가에서 글[詞]을 붙여 귀신을 물리치고,
그림[像]을 붙여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것은 신라 시대부터 시작되었으니,
《삼국유사》의 비형랑鼻荊郞과 처용랑處容郞이 그것이다.
이는 진실로 우리나라의 고유한 풍속이었다.

위와 같이 신라시대부터 이미 <비형랑 그림>과 <처용 그림>을 붙여 사악한 것을 물리쳤으며 이는 우리나라 고유한 풍속이라 말하고 있다. 이로 미뤄보아 비형랑 설화 역시 우리 민화 시원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간주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한 <단군 그림>과 <처용 그림>과 함께 <비형랑 그림>도 문배로서의 제작 목적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민화 시원에 대한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료라 할 수 있겠다. 끝으로 꼭 짚어야 할 것은, 민화 속에 포함된 벽사용 그림들은 중국 문신과 관련된 인물들이 많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단군 그림>, <처용 그림>, <비형랑 그림> 등의 제재들은 한국인이 만들어 낸 인물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참고문헌
一然, 《三國遺事》桃花女鼻邢郞條.
李能和 저, 《朝鮮 巫俗考》.
홍석모 저·진경환 역, 《서울·세시·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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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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