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문양 해주백자 순례④ – 백자청화국화문한글명문항아리

봉산지역에서 생산된 항아리의 문양은 화조화 계통이 압도적으로 많고, 그 중에서도 국화문양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항아리에 시문된 국화문은 아마추어의 솜씨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되고 능숙하다. 민화라기 보다는 수묵화나 채색화의 그것에 훨씬 가까울 정도다.


필자 개인 사정으로 잠시 건너뛰었던 민화 문양 해주백자 순례를 다시 시작한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해주백자는 황해도 봉산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이는 큰 옹기형의 백자 항아리이다. 주문양으로 화려한 국화문이 시문되어 있고, 만든 지역과 제조자를 알려주는 명문이 한글과 한문으로 씌여져 여러 가지 정보를 전달해 주는 소중한 유물이다.
먼저 형태를 보면 백자의 구연부에 해당되는 아가리가 수직으로 다소 길게 직립해 있고, 음각으로 두 줄의 어깨띠가 둘러져 있으며 그 밑으로는 분청사기의 인화문印花文처럼 작은 꽃송이 모양의 무늬가 도장으로 눌러진 모양으로 촘촘히 시문되어 있다.
구연부 바로 밑 항아리의 어깨는 청화로 두 줄의 구획을 만들고 그 안에 국화문과 파초문이 어우러진 연속무늬를 둘렀다. 주 문양인 국화무늬는 그 아래 부분, 항아리의 상단부를 차지하도록 배치했다. 두 세 송이의 탐스런 꽃송이를 중앙에 두고 줄기에 달린 수많은 잎사귀가 흡사 바람에 날리듯 유연하게 시문되었다.
명문은 주문양의 오른쪽 하단 부에 세로로 씌여져 있다. 워낙 흘려 쓴 글씨에다 번지기까지 해서 일부 글씨는 정확치 않지만,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봉산군 산수면 청송리 사기흥성 상점 이영백 이 주소로 주문하시오”
여기서 이 항아리가 지난 4월에 소개한 ‘백자청화어문한글항아리’와 같은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임을 알 수 있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봉산군 산수면 청송리에 이영백이라는 사람이 세운 공장은 1800년대 후반에 세워진 유서 깊은 공장으로 1기의 가마, 2기의 물레에 4명의 조기장과 10명의 잡역을 둔, 당시로서는 꽤 큰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 공장의 이름이 ‘사기흥성’이라는 사실은 이 항아리로 처음 알려진 셈이다.
앞서 몇 사례에서 보았듯이 대개 해주 항아리에 시문된 명문은 기복적이거나 교훈이 되는 글이거나 아니면 널리 알려진 시구詩句 등인데, 이 항아리의 명문은 광고 냄새가 물씬 풍기는 홍보문구라는 점이 매우 이색적이다. 이로 미루어 당시 이영백의 공장과 같이 규모가 만만치 않고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던 사기공장들은 이처럼 당당하게 상호와 주소, 제작자를 당당히 밝히면서 홍보를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항아리에 시문된 문양을 보면, 이제까지 보았던 그 어떤 문양보다도 우수하고 세련된 수준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봉산지역에서 생산된 항아리에 시문된 문양은 동식물을 망라해 매우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화조화 계통이 압도적으로 많고, 소재로 보면 국화문양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화는 상징하는 바가 매우 다양한 꽃이다. 사군자의 하나로 꼽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군자의 성품을 닮은 고고한 기개를 상징하기도 하고 장수長壽를 상징하기도 해서 민화 화조도에도 흔히 등장하는 꽃이다.
그런데 이 항아리에 시문된 국화문은 아마추어의 솜씨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되고 능숙하다. 일필휘지로 물 흐르듯 유연하게 그려나간 국화는 민화라기 보다는 수묵화나 채색화의 그것에 훨씬 가까울 정도다.
국화가 상징하는 바를 요약한 화제 대신 공장의 홍보 문구를 써 넣은 자신감도 바로 이런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물론 주문에 의한 생산품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홍보용으로 별도 제작된 상품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글 김상석 (우리한글박물관장)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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